2012.03.10 23:13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박석진, 일과건강 2007년 10월호
“한국사회포럼이 있는데 왜 또 따로 하나?”
“그렇고 그런 뻔한 사람들이 또 끼리끼리 모이는 행사 아니냐?”
“한번 만난다고 해서 소통과 연대가 되겠나?”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는 5~6개월 동안 준비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행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자신이 없었다. 위 질문들은 사회운동포럼을 지켜보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말잔치’로만 끝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없이 자신의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포럼을 넘어 진짜로 소통과 연대, 변혁을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운동 내부로부터의 혁신에서 시작하는 운동의 전망 모색에 절실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 포럼에 동참할 활동가들은 얼마나 있을까? 이것저것 도무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놓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운동’이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기 보다는 절망을 주는 때가 많았고, 함께 싸우는 ‘동지’가 나의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뿌리친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포럼을 시작하게 된 문제의식은 바로 ‘내’가 운동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희망’이기도 했다.
“입으로만 연대 연대하면 뭐해. 성명서에 이름 하나 올리고 얼굴 잠깐 내미는 연대로 어떻게 세상을 바꿔?”
“걔넨 무슨 정파,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고 등 돌리면서 소통은 무슨 소통이야?”
“다른 건 몰라도 운동 안에서 상처받을 때가 제일 힘들더라. 이 사람들 믿고 과연 운동을 계속할 수 있나…….”
위와 같은 여러 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들으면서, 지금부터라도 운동이 바뀌지 않으면 나의 운동에도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절박함을 안고 사회운동포럼에 뛰어들게 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 안에서도 사회운동포럼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한 번의 포럼으로 무언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통과 연대는 한 번의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과정’이자 그 자체가 ‘운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회운동포럼 역시 소통과 연대를 통해 변혁의 상을 그려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는 한 계기일 뿐임을 준비하는 내내 서로를 통해 확인하곤 했다. 포럼이 영역과 영역간, 그리고 운동과 운동간 소통의 ‘과정’이 되도록 각 워크숍 주제별로 독자적인 기획단을 꾸렸다. 뿐만 아니라 운동의 소통, 연대, 변혁을 모색하기 위한 공통의 주제를 놓고 모든 참가자들과 함께 길을 찾아보고자 공동의제로 사회운동대토론회와 네 가지 열쇠말 워크숍을 준비했다.
각각의 토론회와 워크숍들은 수차례의 사전 준비모임과 사전 워크숍을 통해 서로의 생각들을 미리 가다듬고 이야기할 꺼리들을 좁혀나갔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단지 ‘언어의 차이’를 놓고 대립하기 보다는 주장하고자 하는 의미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은 ‘사회운동포럼’이라는 과정에서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합리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서로의 생각과 말들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서로의 차이들이 좀더 명확해졌으며 이러한 차이들이 때로는 논쟁을 통해 넘어서야 하는 것으로, 때로는 서로 인정하며 공존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사회운동포럼은 준비의 시간적인 한계로 이러한 차이들을 확인하는 데만도 충분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나마 그 성과는 포럼 전 과정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다. 포럼 본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사전 논의를 충실히 진행한 워크숍과 그렇지 않은 워크숍이 내용적으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워크숍에 단순히 참가하는 사람들이 절감할 정도였으니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얼마나 크게 느꼈을까.
사회운동대토론회 1부는 ‘전쟁과 빈곤의 시대, 사회운동의 대안이념과 변혁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87년 이후의 사회운동을 반성적으로 평가해보면서 현재 사회운동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나갈 것인가에 진지한 토론이 오갔다. 특히 사회운동 평가에서 기존 평가가 노동자운동이나 대학생운동, 농민운동 등과 같은 ‘주류’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평가되어온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장애인운동, 인권운동, 문화운동 등의 시각에서는 사회운동의 평가 항목들이 새롭게 정리될 수 있음이 제기되었다. 현재 사회운동이 전체적으로는 위기 상황으로 보이더라도 2000년대 이후 불붙기 시작한 장애인운동의 경우에는 현재 상황을 굳이 ‘위기’ 상황으로 진단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여성운동·소수자운동 등 여러 운동의 조건이 다름을 인정하는 속에서 이러한 운동이 부차화되지 않고 현재 운동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할 필요성이 있다는 제안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했다.
사회운동대토론회 2부는 ‘사회운동의 소통과 연대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사회운동 내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이야기 손님’들이 나와 솔직한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놓는 가운데, 현재 사회운동을 질곡하는 여러 지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여러 운동이 각자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고립, 분산되어 가는 상황, 연대 연대 말은 많지만 결국 이름걸기 식의 상층 연대밖에 진행되지 못하는 현실, 소통의 부족 혹은 왜곡으로 여성 등의 소수자가 조직 내에서 소외되고 억압당하면서 연대를 질곡시키는 과정 등의 이야기들이 솔직하게 터져나왔다.
이 외에도 △미래를 돌아보라, 새로운 사회운동 활동양식 △사회공공성의 의미와 과제 △사회변혁적 노동운동 어떻게 가능한가 △지역운동의 평가와 전망 모색 등 네 가지 열쇠말을 주제로 공동의제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인권·생태·평화·여성·이주노동자 등과 같은 10여개의 주제별 사회운동 전략과제 워크숍들뿐만 아니라 빈곤심판 민중법정, 여성대회, 피터 워터만 특별 강연 등과 같은 특별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소통/연대/변혁을 모토로 한 사회운동포럼에 걸맞게 준비되고 진행된 워크숍은 다양한 토론 자료와 토론자들의 솔직한 토론으로 생동감 있게 워크숍이 준비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워크숍은 다소 진부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 역시도 기존의 관습적인 토론회 준비 방식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공동의 경험이었다. 또한 바로 이러한 지점이 우리 운동이 서있는 현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운동의 혁신은 현재 운동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회운동포럼을 거치면서 소통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오갔는데, 변혁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잘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토로되기도 했다. 소통과 연대 역시, 이번 포럼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기 보다는 한계가 더 크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로의 언어는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의 고통과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소통’이라는 말만 강조될 뿐 서로간의 소통은 사실상 겉돈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역시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운동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며 변화의 가능성들을 발견해나가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안에서 시작해야할 운동의 또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사회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해방이 곧 사회의 해방이고 사회의 해방이 곧 나의 해방이 되는 운동,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운동 내부를 성찰하는 자세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번 사회운동포럼은 우리 운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첫걸음으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관건은 ‘사회운동포럼 이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어떠한 운동을 만들어가야 할까.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이상 절망을 되풀이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사회운동포럼 이후’는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또다시 우리 모두에게 운동이 만들어나가야 할 희망의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