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9월호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면 옷 갈아입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텔레비전을 키는 것이다. 딱히 무엇인가를 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조용한 공간보다는 바보상자라도 떠들고 있는 것이 나을듯한 습관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멀리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뉴스다. 들으면 꽤나 짜증나는 소식들이 더 이상 뉴스의 가치를 갖지 않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꼭 그것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그래서인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조금씩 늦다. 인터넷에서도 뉴스를 눈여겨보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8월 1일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포스코의 대체인력 투입과 노동탄압을 항의하는 집회도중 큰 부상을 당한 포항지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이 끝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다. 건설연맹 홈페이지를 보니 포항지역건설노조 상경투쟁 일정과 함께 오후8시에 촛불 문화제를 한다는 공지가 있다.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퇴근길은 자연스럽게 광화문을 향했다. 건설노동자 유가족은 80세를 넘은 노모와 형제들이었다. 나이 40이 넘었는데, 가정을 미처 꾸리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은 ‘이삼십년을 일해 온 숙련노동자임에도 저임금과 비정규직 삶’을 살아야 했던 故人은 어쩜 일신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속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상상으로 이어졌다. 


포항지역노동자들이 왜 포스코 본사를 점거할 수밖에 없었는지, 해마다 이런 상황은 왜 일어나는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기억이 안 날지 모르겠으나 이와 비슷한 노사분규는 1990, 2003, 2004년에도 있었다고 한다. 2005년은 울산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불법다단계하도급을 꼽는다. 불법다단계하도급이 공사비를 낮추다보니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공사는 부실공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럼, 불법다단계하도급은 무엇일까? 지난 7월 2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건설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건설근로자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토론회’ 내용이 이 질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우선, 이 다단계하도급이란 게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할 것 같다. 우리나라 건설은 ‘수직적 다단계하도급’ 구조인데, 발주자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원도급자가 직접시공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도급을 거쳐 생산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는 2단계까지의 하도급(발주처-원청-하청전문건설업체)이 허용되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3단계 이상을 넘어가는 불법하도급이 판을 치고 있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시공참여자제도(팀․반장, 일명 십장)’이다. 시공참여자제도는 책임시공을 위해 도입되었으나 지금은 불법 재하도급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런 구조로 부실시공, 불법비자금, 공사대금 사기, 산재다발, 임금체불 등의 문제점을 갖게 되었다. 다단계하도급 구조가 만연한 이유로 팀․반장은 정부의 관리감독 의지 미약, 경미한 처벌, 발주자 및 원수급자의 묵인을, 전문건설업체는 원수급자 및 발주자의 묵인을 꼽았다. 즉, 발주자와 원수급자(원청)의 묵인과 소홀한 정부관리감독이 현 상황을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개선방안은 없는 것일까? 발제문에서는 팀․반장과 전문건설업체 의견이 엇갈림을 보여준다. 팀․반장은 ‘모든 팀․반장을 근로자로 인정하고 모든 다단계하도급을 금지’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인 반면 전문건설업체는 ‘시공참여자인 팀․반장은 사업주로 인정해 하도급을 허용하고 그 외의 하도급은 금지’하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발제자는 건설산업의 인프라 확충 및 견실한 생산물 공급 측면에서 팀․반장안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모든 팀․반장을 근로자로 인정하고 모든 다단계하도급을 금지’하는 안은 직영생산으로 여건을 조성하자는 것인데 지나치게 낮은 공사비, 관리인력 인건비 등이 직영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에 여건조성과 비용부담 경감을 위해 ▷‘상시근로자수’가 아닌 ‘총공사금액’으로 주40시간제 적용 ▷낙찰률과 무관한 사회보험료 확보 ▷생산중단 시기에 인건비 지원 ▷시공능력평가에서 직접시공 실정에 가중치 적용 ▷정부 및 발주자의 다단계하도급 관리감독 강화 ▷유능한 숙련인력 양성체계 구축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과정에서 건설연맹 최명선 정책부장은 “건설일용노동자는 일자리와 고용위협이 수년간 반복”되었다면서 “발주처와 원청이 노동3권에 개입하기 때문에 이들과 노사관계가 성립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발주처나 원청이 고용당사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입찰 설명회에서 ‘플랜트노조 가입자가 있는 업체는 입찰할 수 없다’거나 ‘노조에 가입한 건설노동자를 관리해온 노무관리문서’가 나오듯이 이들이 건설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에 노사관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의 한 관계자로부터 “아파트가 어떤 과정으로 건설되는지 알면 차마 그곳에서 살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야기인즉, 다단계하도급이 심해 건설부자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어 부실공사가 된다는 말이다.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예쁘고 멋있는 남녀가 행복한 웃음소리를 내는 광고가 보여주는 각종 이름의 아파트 역시 다단계하도급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가끔 어디의 모 아파트가 기울었다거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균열이 심하게 갔다는 뉴스가 실은 부실공사의 한 단면이었던 것이다.


한 번 숨을 거둔 생명은 다시 살릴 수 없고, 똑같은 의미를 지닌 생명으로 다시 탄생할 수 없어 소중하고 귀중하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다단계하도급을 없애보겠다고, 턱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보겠다고 나섰던 한 노동자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어떤 방법을 취해도 다시 만날 수 없다. 제도와 정책으로 불법다단계하도급을 없애고 숙련기능공들이 기능공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고 억울하지 않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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