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10월호


2006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8882억 달러로 세계 12위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 220여 나라 중에서 상위 10%안에서도 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또한 2007년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최근 발표한 ‘세계경쟁력 연감 2007년’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국 55개국 중 국가경쟁력 순위 29위를 차지했다. 대상 국가 수가 55개 국가일 뿐이나 이름만 대면 세계 어느 나라 국민이든지 알 만한 선진국들이 포함된 한 조사에서 29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경제규모, 경쟁력 면에서 ‘한국’이라는 꽤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경제규모와 경쟁력이 그 나라나 국민, 특히 경영인의 인권 수준이 불행하게도 비례하지는 않는다. 최근 여기저기서 터지는 전근대적 노사관계나 비정규직 관계법 시행 후 생기는 무분별한 공권력 행사, 투쟁 중인 노동자와 빈민에게 용역깡패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경제규모에서 세계 수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고 해외에 공장을 설립한 한국기업의 경영 혹은 관리자들이 현지의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나라 안에서와 비슷하거나 해당 국가 정치 상황과 맞물려 더욱 심각한 경우도 있다.


#경제규모와 반비례하는 한국기업의 경영자들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활동가는 해외 한국기업들의 노동탄압 실태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별 차이가 없다.”면서 “중소기업은 저임금만을 보고 (해외로) 갔기 때문에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구태적이고 상식이하의 인권탄압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는 NGO가 왜 노동권 문제에 관심을 갖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노동3권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저임금, 구타, 폭력, 성폭력 등에서 너무 심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인권단체가 개입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특히 중소기업에 그런 것이 많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해외 한국기업의 노동인권 침해 실태』에 따르면 지난 35년 동안 대기업의 총 해외 투자건수는 2,791건으로 전체의 15.4%, 중소기업은 11,255건으로 62.3%이고, 투자 금액별로 보면 대기업이 320억7백만 달러(76.0%), 중소기업이 91억7천만 달러(21.7%)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노동집약 산업인 섬유, 의류, 신발, 전자 등을 중심으로 동남아 베트남, 중국, 중남미 지역에서 생산 활동 중이다. 

 

나현필 활동가는 “기본적으로 한국기업 최고의 특징이 노조를 인정 ‘안’ 하는 문제”라며 대기업은 자원개발과 연결되어 현지 원주민과의 마찰, 환경파괴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해외 한국기업들은 어떤 식으로 현지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을까? 필리핀을 실제 방문한 적이 있었던 그는 ‘충격’이었다는 경험을 풀어놨다.


인구의 70~80%가 농민이고 실업률이 높은 필리핀은 농촌의 수많은 여성들이 수출자유지역(가비테 지역)의 공단으로 몰려온다고 한다. 현지법에 따르면 18세부터 노동을 할 수 있지만 나이를 속인 중학생 또래의 여성노동자들도 많은데, 워낙 여성 노동자들이 많아 성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에 들어가려면 얼굴과 몸매가 좋아야 하고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비일비재해 말할 것도 안 된다는 현지인의 얘기를 들었다.”며 노조를 만들려는 한 여성노동자에게 “노조를 만들면 해고당하고 힘든데, 왜 노조를 만들려고 하냐?”고 물었던 질문의 답을 들려주었다.


“16살짜리 소녀를 한국기업 관리자가 술을 먹이고 강제로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시켰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서 낙태가 안 된다. 회사에서는 여성노동자를 해고시키고 관리자는 한국으로 도피했다 잠잠해져서 다시 와서 자매회사로 복직하는 것을 보고 ‘어떤 일이 있어도 노조를 만들어야겠다.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얘기를 했다.”며 “이렇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 한국기업의 현실이구나.” 했다. 여성노동자들에게 만연한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폭언․폭행, 노조 불인정 등과 함께 제기되는 심각한 인권문제이다.


국제민주연대는 사회운동포럼에서 필리핀 가비테 경제구역의 청원 패션, 필스 전(Phils. Jeon, 한국 모회사는 (주)일경) 문제를 소개했다. 미국의 갭(GAP), 월마트, 폴로의 하청업체인 청원패션은 원청으로부터 노동탄압 문제를 제기 받았지만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가하는 등의 심각한 탄압을 지속 중이다. 

필스 전 또한 2003년부터 시작된 노조설립 운동을 끈질기게 방해하였다. 2005년 합법으로 인정받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파업에 돌입한 노조의 농성장을 공격하거나(2006년, 2007년) 농성장에 있던 여성노동자의 팔다리를 묶고 눈을 가린 채 경제자유구역 옆에 위치한 고속도로 변 웅덩이에 던지는 등 마치 70~80년대 우리나라 군부독재시설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인권문제로 ‘사회인식’ 바뀌어야


문제를 일으킨 자본가가 있다면 이것을 해결하려는 주체, 노동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필리핀 청원 패션, 필스 전 노동자들은 사회운동포럼을 즈음해 한국을 방문해 현지 사정을 알리고 해당 한국 본사 앞에서 집회도 열고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도 동참했다. 나현필 활동가는 “이분들이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 연대하기 위해 왔다”며 필리핀 노동자들이 “같이 투쟁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랜드 투쟁을 알리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필리핀 노동자들은 한국경찰이 더 협조적이란 표현도 했다는데, 실제 총기를 휴대하고 진압하고 위협하는 필리핀 경찰들과 비교된,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해외 한국기업의 노동자 인권탄압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다룬 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어글리 코리안(추한 한국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제 제기 수준이었고 이들의 문제를 ‘인권’으로 바라본 적은 없다. 나현필 활동가는 해외 한국기업의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잘은 몰라도 문제가 있다, 쪽 팔린다 수준인데, 이렇게 접근하면 해결이 안 난다.”고 피력했다. 

즉, “핵심은 노동3권이 인정되지 않고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것인데 국가 이미지 문제로만 주목받아 동정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 한국기업들의 인권탄압 문제가 동남아 말고도 중남미 아프리카에도 있고 “일이 터졌을 때 현장으로 날아가 우리 시각으로 파악해 국내에 알리면 좋겠는데 언어와 거리, 비용 문제 등으로 손을 댈 수 없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다. 

기본적인 인권, 노동3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그들이 일하는 작업환경이 어떨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나현필 활동가가 전하는 해외 한국기업 작업환경은 “더운 날씨지만 선풍기를 공급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라인 하나에 한두 대의 선풍기를 직접 사 돌리고, 먼지와 유독물질이 많은데도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알림도 없고, 마스크나 장갑을 노동자들이 사는” 것이었다. 그는 숨을 쉴 수도 없는 환경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았다고 한다.


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진입을 앞둔 경제대국이다. 나현필 활동가에 따르면 유엔(UN) 글로벌 컴팩, 다국적기업에 대한 OECD 가이드라인 등 충분히 다국적 기업화 된 국내 기업들을 규제할 수 있는 국제협약이 있지만 정부 인식이 높지 않은 데다 무노조를 지향하는 기업 활동 탓에 별 효용이 없다고 한다.  

현지 노동자와 주민들의 인권문제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있어야만 풀리는 문제”라는 그는 “규모나 정치적 입장을 구분하지 않고 공동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일이 터지면 함께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어보려 한다.”며 최근 국제민주연대의 고민을 들려주었다. 

언제 어떻게 우리가 인권 문제의 당사자가 될지 모를 정도로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화의 속도는 빠르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지적처럼 기업이 자행하는 인권탄압에 우리는 마음 아파하고 분개하고 연대해야 한다. 


참여연대 내 국제인권위원회에서 독립, 2000년 2월 창립한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국제 이슈를 처음으로 전문 영역화한 운동 단체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인권과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방안을 찾는 작업과 해외 한국기업들의 각종 인권침해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제도마련 및 해외 단체들과 공동조사, 캠페인, 교육 등을 진행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진실 규명운동에도 함께 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군사독재 국가인 미얀마(버마)에 무기제조 기술을 수출하며 가스전 개발 사업에 참여한 한국기업에 대응하는 활동에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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