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아픈 것은 아픈 게 아닐까?

2012.03.10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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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3월호


IMF. 금융위기가 있은 지 10년 뒤인 올해, IMF를 평가한다는 곳이 여럿 있다. 어떤 내용들이 나올 지 궁금하지만 긍정이든 부정이든 IMF가 한국 경제와 사회문화를 변화시킨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노동자의 삶’을 뽑겠다.


IMF를 계기로 노동자 삶은 양적, 질적으로 낮아졌다. 파견, 도급, 위탁 등 각종 이름으로 비정규직 숫자가 증가했고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는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내하는 일터로 여겨지는 것이 1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이다. 유통서비스업도 이런 환경변화를 고스란히 겪은 곳 중 하나이다. 본사 직영, 혹은 매장 직영으로 일하던 노동자는 파견, 위탁 노동자로 교체되거나 노동자 지위를 조정한 계약을 다시 해야만 했다.


“4대 보험이요? 위탁 고용주에 따라 가입을 해주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습니다. 어떤 고용주를 만나느냐에 따라 일하는 환경 자체가 달라지죠. IMF 전에는 관리도 본사 직영이었는데…”

평촌 NC백화점 의류매장 쪽에서 10년 동안 일해 온 한 남성노동자는 이렇게 전했다. 4~5명 일하던 매장은 2~3명이 일하면서 노동강도가 세졌음은 물론이다. 그는 “전에는 경력에 따라 업무 분담이 있었는데 인원이 줄면서 안했던 일도 하게 되었다.”며 정신적으로도 더 피곤해졌다고 덧붙였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내는 것이 고용주(혹은 자본가)의 원칙이겠지만 이렇게 거둬들인 이익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건강이 안 좋아지고 견디지 못하면 그만둬야 하는 것이 전부이다.


“처음에 일할 때는 온 몸이 아파요. 종일 서 있어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지요. 정말 이런 데가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힘들다가 몸이 익숙해지는 거지요.” 

내내 서서 일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하지정맥류, 환기부족, 건조한 공기, 많은 먼지로 유발되는 눈 질환과 목 질환, 고객을 상대로 한 서비스 업무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 등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질병들이다.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의류매장 경력 4년차, 7년차 여성노동자들이 “아휴~~ 다들 아픈데 어떻게 저만 아프다고 티를 내요?” 한다. 며칠 씩 ‘말뚝’을 섰다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전에는 어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을 이었다. ‘말뚝’은 교대 직원이 없을 때, 행사가 있을 때 쉬지 못하고 내리 며칠씩 일할 때를 말하는 백화점 노동자들의 전문용어다. 유통서비스업 경쟁이 과열되면서 백화점은 거의 연중무휴 수준으로 일하는데 직원 수가 받쳐주지 않으니 있는 직원들이 몸 아파가면서 일하는 셈이다.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하루 씩 휴일을 부여받지만 그것도 정해진 날짜가 아니고 말뚝을 서면 그나마 휴일도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가장 원하는 노동환경 중 하나가 ‘주5일 노동’이다. 백화점에 따라 위탁업체를 불러 주5일 노동 실시를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는 곳도 있지만 이 백화점은 그렇지 않다. 두 번째로 요구되는 것이 휴게실이다. 11층 건물에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한 곳밖에 없다. 옷을 갈아입는 락카실이 있지만 그곳은 쉴 만한 곳이 못된다. 대중없는 휴식시간이 그나마 있어도 제대로 쉴 공간이 없어 밖에서 잠깐 커피 한잔 정도 마시는 것이 이들이 쉬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각층마다는 아니더라도 한층 걸러서라도 휴게실이 있다면 좋겠다는 이들은 이런 요구를 계속 해왔지만 개선은 요원한 상태라고 한다. 각자 고용주가 다르고 일하는 환경이 다르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은 백화점의 다면적 고용관계에서 비롯한다. 

백화점에는 정규직, 소사장제, 파견, 도급 등 다양한 고용관계를 가진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인데 NC백화점은 6백여 명의 노동자 중 1백여 명의 정규직이 방송실, 문화센터, 영업지원, 계산원으로 일하고 판매 사원을 포함 시설관리, 보안, 미화, 식당 등은 모두 간접 고용이다. 이런 다면적 고용관계 탓에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인데다 정규직 업무를 갈수록 외주 위탁으로 늘리는 경영 탓에 고용불안에 직면해 있다.


NC백화점 노조 김호진 부위원장은 “이쪽 산업이 성장세이긴 하지만 시장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구조조정 시기가 현재”라며 “정규직이 담당하는 업무가 갈수록 줄고 통과된 비정규직관련법 영향으로 정규직도 고용이 불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정규직은 정규직 나름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나름대로 불안을 담고 일하는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일은 없을까? 

김 부위원장은 당장 임금이나 고용이 문제라 건강권을 가지고 싸우기는 힘들지만 작업환경 개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실내 공기질을 개선한다든지 오래서서 일하는 노동자인 만큼 관련 설비에 투자를 한다면 다 같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조합을 부정적으로 보는 꾸준한 교육과 언론 작업으로 파업을 제대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백화점은 더군다나 파업을 쉽게 할 수 없다. 같이 일하는 판매 노동자의 어려움과 고객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데다 고객서비스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받아 온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고객서비스를 외면하는 일이라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 때 서서 일하는 계산원 중 임산부에 한해 의자를 비치했지만 ‘예의가 없다’ ‘불량하다’는 고객 반응 때문에 노동자도 불편해 해 결국은 의자를 철수시킨 일례가 있을 정도이다. 노동자들이 느끼지 못 하는 사이에 우리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다 고객 서비스, 고객 감동을 우선시 하는 가치가 자리 잡은 것일까?


최근 책 소개란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이 강수돌 교수의 ‘일중독 벗어나기’이다. 지은이는 일중독을 “개인과 가정을 넘어서 조직과 사회를 오염시키는 자본주의적 질환”으로 진단했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노동자는 쉴 틈이 없었다. 전쟁 뒤에는 국가재건을 위해, 7~80년대는 경제개발을 위해 90년대에는 개발도상국을 벗어나기 위해, 90년대 말은 IMF 극복을 위해 그리고 2천 년대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진입을 위해 뒤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왔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주문을 외우라고 현실은 강요한다. 

2007년은 연말 대통령선거라는 커다란 정치이벤트가 있다. 후보들 중에 ‘모든 노동자가 반드시 쉬어야 하는 요일’을 정하거나 ‘동일한 근무지에서 두 명 이상이 비슷한 질환을 가졌다면 의무적으로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올 후보는 없을까? 이런 나의 바람은 지나친 만화적 공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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