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0 23:04
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2006년 12월호 일과건강
1999년. 이제 막 사회 첫 발을 내딛은 나는 ‘회사’라는 곳에서 일하면서 한 가지 소망을 가졌다. ‘월급 백만 원 받아보기’가 그것이었다. 당시 규모 작은 전문지회사 취재기자로 입사했는데 “남들은 IMF 영향으로 취업도 못하는데, ‘취업이라도’ 했다.”는 안도감에 잦은 야근에도 별 불만 없이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 정도 노동에 그 정도 급여만을 -8년 전이라고해도- 지급했을꼬? 생각한다.
8년 전 내가 했던 소망을 지금 또 다른 많은 노동자들이 할 것 같다. 그 중에는 보육노동자도 포함될 것이다. 놀이방이나 어린이 집 등 유아들을 돌보는 보육노동자들은 현재 15%인 국공립 보육시설과 국가 위탁 보육시설을 제외한 민간 보육시설에서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한다. 그렇다고 국공립과 위탁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월등히 좋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민간 보육시설보다 조금 나을 뿐.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육아가 더 이상 가족 개인사가 아닌 지금, 갓난아이부터 입학하기 전 아이들은 놀이방,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서 ‘제2의 엄마’라고 할 수 있는 보육교사들과 생활한다. 그들의 노동은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업하고, 화장실 가는 아이를 살피고, 우는 아이는 달래고, 하루 두 번의 간식과 점심식사를 챙겨야 한다. 아이들이 집으로 간 뒤에는 앞으로 쓸 교재교구를 만들고 그 달 행사를 준비하고 부모 상담 등의 업무가 이어진다. 물론, ‘아니, 어딘들 업무가 그리 많지 않겠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옛말에 “너 아이 볼래, 들에 나가 밭 맬래?”하면 다들 밭 매로 간다고 할 정도로 아이를 보는 일은 녹록치 않다.
“(보육 노동자들은) 수당도 따로 없이 하루 평균 9시간~10시간 일을 한다. 근무시간이 너무 길고 노동강도가 세다.”고 전하는 보육노조 김지희 교선부장은 “사생활이 전혀 없어 노동시간이 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런 말을 뒷받침하는 조사가 2001년에 발표되었는데, 당시 자료집에는 보육교사 근무시간이 평균 주당 59.3시간이었고 급여수준은 국공립이 평균 99만 3천원, 가정 71만원, 개인 66만원이었다. 월 급여가 60만원 미만인 가정, 개인보육시설도 있었다. 전직을 생각하는 이유로 ‘근무량에 비해 봉급이 너무 낮아서’가 50.9%로 보육 노동자들 처우가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김 부장은 “현실은 자료집보다 더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니 이들의 건강 또한 좋을 리 없다. 경력이 쌓일수록 함께 늘어나는 건 이런저런 질병들이다. 날마다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도가 높고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근골격계질환, 환기부족에서 오는 호흡기 질환, 목을 많이 써 발병하는 성대 결절 등은 기본이다. 아이들을 눈에서 떼면 안 되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 변비나 신장 쪽 질환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참고 일한다. 업무 시간이 이후에야 병원을 갈 수 있는데 보통 7시가 넘어야 하니 사실상 병원을 갈 기회조차 보장되지 않은 셈이다. 실제 보육시설에 근무한 이후로 건강상태가 ‘나빠지거나 아주 나빠졌다’는 보육교사가 세 명 중 두 명꼴이라고 한다.
김지희 부장은 한 반에 지금보다 두 배 정도의 인력이 확보되어야 위에서 거론된 문제들이 그나마 해소될 것이라고 한다. 여성가족부가 마련하는 보육사업지침 안내에는 아이와 보육교사 비율이 만 3세는 1:7, 그 이상은 갑자기 늘어나 1:15인데 현장에서는 이보다 많은 수의 아이들을 한 명의 교사가 돌보고 있다. 아침의 몸 상태는 저녁으로 갈수록 아이를 ‘보육할’ 상태가 아니게 된다.
이런 이유로 보육노조가 대정부 투쟁을 벌이면서 요구한 핵심이 △급여인상 △일일 8시간 노동 △국공립 어린이 집 확충 등이다. 이중 일일 8시간 노동을 위해서는 인력확충이 필수이고 이는 곧 인건비 인상으로 이어져 민간사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국가가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 분야이다.
‘보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말처럼 아이들 돌보는 주체에게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현재 구조는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출산과 육아가 사회문제로 제기되었지만 사회육아라고 할 수 있는 보육 부분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김지희 부장은 “민간사업장이 85%, 국공립 및 위탁이 15%인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국공립 50% 민간위탁이 50%로 사실상 나라에서 보육시설을 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모든 운영비용과 보육 신청접수 및 보육료 수납도 지방자치단체가 한다.”며 일본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일일이 챙길 수도 없는 많은 정책을 내놓지만, 정작 그것들이 현실에서 반응을 일으킬 만한 것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보육도 이 중 하나이다. 보육노동자들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유지하는 힘은 ‘아이들이 커가는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보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자긍심을 담보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들이 느끼는 자긍심을 지켜주는 정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보육의 질은 높아질 수 없다.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양질의 보육을 제공하는 것, 그 첫 걸음은 보육 노동자가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