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폭발로 죽게 될지 모른다

2012.03.04 14:01

조회 수:1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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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현동 가스 폭발사고 ⓒ http://imagesearch.naver.com/detail/frame_top_080722.html#



1. 끔직한 도시가스 사고

1994년 아현동 가스폭발사고, 사망자가 12명, 부상자 101명. 연이어 다음해, 대구지하철공사장가스폭발사고, 사망 102명, 부상 117명. 재산 손실은 쓰고 싶지도 않다.


사고 조사 기록에 따르면 두 사고는 모두 인재이며 충분히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않았다. 심지어 아현동 사고는 사고가 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시그널을 체크하는 중앙통제실에서도 자신의 데이터를 신뢰하지 못해 막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불가피한 사고가 아니라 사고를 낸 것이다.

2. 사고가 이젠 줄었다고?

왜 생뚱맞게 10년도 더 지난 얘기를 하느냐고 독자들은 물으실 게다.


가스 배관들은 모두 공로(公路)에 묻혀있기 때문에(자신의 사유지에 언제 터질지 모를 가스배관을 묻도록 허락하는 지주는 없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재수 없게’ 폭발로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스배관의 폭발은 불특정 다수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그거야 관리 잘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독자들은 또 물으실 게다. 그 관리라는 게 갈수록 완화되는 규제로 더욱 허술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도시가스협회의 끈질긴 요구에 굴복한 한국가스안전공사 가스안전연구원에서는 「도시가스 안전관리 규제합리화 로드맵 연구」를 통해 도시가스 관련 안전규제를 상당부분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급기야 그 중 일부가 2007년 말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법개정의 핵심은 두차례의 수치스러운 폭발사고 이후 관리철저를 내세우며 정부에서 안전점검원당 15km의 점검길이를 맡도록 법을 만들었는데 이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강도를 높여도, 좀 헐렁하게 점검을 하더라도 이제는 사고가 많이 줄었으니 괜찮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배관의 매설깊이를 낮추고(깊게 묻으면 공사비가 더 많이 드니까) 대형관(직경이 넓어 더 많은 가스를 보낼 수 있는) 설치 대상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그럼 배관 길이가 줄어도 되고 돈 적게 쓰니까. 근데 터지면 더 많이 죽는다.).


이를 위해 연구보고서에서는 어려운 공학적 수식을 많이 사용하여 규제완화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하려 애쓰고 있다.

3. 일하는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우려스러운 답변이 나온다.

“우리는 현재 안전점검원 1인당 15km제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18km~20km 정도로 운영되고 있을 겁니다. 인원확보가 안되니까요. 사측에 요구해도....결국 절차서 데이터를 뽑아보면 목표 점검량의 한 70% 정도 수행하고 있는 걸로 나옵니다. 아마 계속 이러다간 어딘가에서 터질 겁니다....” - 지방권 도시가스노동조합 간부 인터뷰

연구보고서에서 아무리 어려운 수식을 써서 표현하려 하지만 우리나라 도시가스 안전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더 끔찍한 일은 통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도시가스 사고통계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타공사 사고건수’(공로 지하 1m~1.5m 이내에는 수도관, 가스관, 통신관, 전기선로 등 어마어마한 매설물들이 묻혀있다. 어느 하나의 관에서라도 작업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대구지하철공사장 사고에서처럼 건축이 이루어지는 경우 가스관이 훼손될 수 있는데 이를 일컫는 말이다.)는 연간 전국에서 6~7건 가량인 것으로 보고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경우 연간 40건이 훌쩍 넘는다. 자랑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우리의 도시가스 안전관리는 일본보다 6배가량 우수하다(!?) 그게 아니라 보고가 안 되는 것이다. 사고가 나서 문제(인명이 훼손된다거나 주변지역에 가스공급이 안 된다거나 등)가 생기는 경우만 보고되는 거다. 감출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일본은 타공사 과정에서 가스관이 약간만 손상을 입어도 (그 외 어떠한 문제가 없어도) 보고된다. 즉, 아차사고 보고이다. 이를 통해 문제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것이다.

4. 더욱 불안해지는 환경

여기에 더하여 앞으로 환경은 더욱 안 좋아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가스산업구조개편으로 인한 도시가스산업의 전망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 해 발표한 ‘가스산업 선진화안’에 따르면 그동안 독점적인 도입(국내에서는 천연가스 생산이 없음으로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을 진행하던 한국가스공사의 독점성이 해체되어 이젠 민간 기업들도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는 길이 확고히 열렸다.1) 이런 조건에서라면 도시가스업체들도 여기에 가세할 것이고 특히 현재 가장 여력이 많은 SK계열이나 GS계열로의 독점화 경향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들 계열은 이미 우리나라 정유산업에서도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국민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쳐왔다. 가격담합, 지역사회의 환경파괴, 무능경영으로 소액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 반면 해외 투기자본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독과점 이윤으로 고수익을 높게 배당하여 역시 국내시장 이윤의 해외유출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돈을 갈퀴로 긁으면서도 (안전)투자는 하지 않았다. 정유시설의 안전관리도 문제겠지만 이들이 도시가스분야에서도 이렇듯 (안전)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안전관리규제가 지금처럼 날로 완화된다면 우리가 길을 가다가 폭발로 죽을 수 있는 확률이 자꾸만 높아지는 것이다.

난 객사하고 싶지 않고 폭발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 도시가스노동조합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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