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충무함과 석면보일러 (1)

2012.03.04 13:49

조회 수:9890

필자는 2009년 4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석면회의(Asian Asbestos Conference 2009)에 참석하였다. 이글은 회의에서 만난 미국의 스티븐 카잔(Steven Kazan)변호사를 통해 알게 된 미국 석면소송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시아석면회의는 홍콩에 본부가 있는 ‘아시아석면감시센터(Asia Monitor Resource Center, AMRC)’가 주최하였다. 회의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대표가 자국의 석면사용상황과 피해규모에 대해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각국의 피해자들이 직접 피해경험을 발표하였고,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아시아에서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하기 위해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the Ban Asbestos Network of Asia)를 발족하는 행사로 끝을 맺었다.


회의 중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석면관련소송을 수행하는 스티븐 카잔(Steven Kazan) 변호사가 미국의 석면피해와 피해보상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카잔변호사는 석면피해자들을 대리하여 30년 이상 여러 건의 석면소송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카잔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의 대형 석면회사들이 계속되는 석면소송으로 파산할 지경에 이르자 각 회사 별로 석면피해보상기금(Trust)을 만들었는데, 석면회사들이 만든 석면제품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곳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재판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반해 보상기금에 청구를 할 경우 피해자들은 자신이 석면에 노출된 사실과 석면관련 질병에 걸린 사실을 증명하면 짧은 기간에 비교적 간단한 심사를 거쳐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보상액은 질병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진 액수를 지급하는데 재판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는 적다. 그렇더라도 소송에 걸리는 기간이나 소송비용 등을 고려해 볼 때 피해자에게 크게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필자는 흥미로운 분야라서 처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카잔변호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 들었으나 점점 그의 말이 빨라지고 모르는 단어가 계속 나오자 나중에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영어공부 안 한 것을 혼자 책망하다가 아예 귀를 닫아버렸는데, 카잔변호사가 소송사례를 설명하면서 “Chungmu"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이야기하자 갑자기 귀가 번쩍 뜨였다.


카잔 변호사는 미국에 밥콕 앤 윌콕스사(Babcock & Wilcox)라는 산업용 보일러(석면이 포함된)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각 국의 군함에도 이 회사의 보일러가 설치되었다고 하였다. 밥콕 앤 윌콕스사는 “Chungmu"라는 배에도 보일러를 설치했는데 만약 그 배의 보일러실에서 근무한 사람이 중피종 등 석면질환에 걸렸다면 밥콕 앤 윌콕스사의 석면피해보상기금(The Babcock & Wilcox Asbestos Trust)에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카잔변호사 자신은 “Chungmu"라는 배가 어느 나라 배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미국사람인 카잔변호사(그는 해군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가 ‘충무함’을 알 리가 없다. 필자도 당시에는 충무함이라는 군함이 있었는지 몰랐으나 만약 이 세상에 충무라는 이름을 가진 배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나라 배일 터이므로 카잔변호사에게 충무함은 한국군함일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카잔변호사는 필자에게 충무함에 근무하였던 피해자가 있는지, 충무함이 아직도 운항 중인지, 만약 해체하였다면 어디서 해체하였고 선박해체에 참여한 근로자 중에 석면피해를 입은 근로자가 있지는 않은지 조사해 볼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필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고 홍콩에서 중요한 숙제를 받아서 귀국하였다.


충무함은 1943년에 미국에서 건조되어 1963년 우리 해군이 인수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구축함이다. 이 배의 보일러가 바로 밥콕 앤 윌콕스사 제품이었다. 충무함은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활동하다가 1993년 퇴역하여 현재 전쟁기념관에 복원하여 전시 중이라고 한다.


한편 밥콕 앤 윌콕스사는 충무함뿐 아니라 우리나라 발전소, 정유공장 등 여러 사업체에 보일러를 판매하였다. 다음은 Babcock & Wilcox 사가 자사의 보일러(석면함유)를 사용한 장소라고 밝힌 곳이다. 


1. 보령화력발전소-1980년, 1981년 2회에 걸쳐 제품설치

2. 군산화력발전소-1966년 설치

3. 부산화력발전소-1961년 설치

4. 서울화력발전소-1966년 설치 

5. 진해화학-1966년 설치

6. 영남화학(울산)-1966년 설치

7. 경인에너지(인천, 현 인천정유)-1969년 설치

8. 한국나이롱주식회사(대구, 현 코오롱)-1967년, 1973년 설치


(충무함 보일러실에 근무하셨던 분, 충무함 해체에 관여하셨던 분을 비롯하여 위 공장들에서 보일러 설치, 유지, 해체작업에 종사하셨거나 그런 분을 아시는 분은 필자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석면폐증이나 흉막반 등이 발생하여 고통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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