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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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규칙한 노동과 과로에 시달리는 간호인력 간호사의 교대노동, 심야노동 조건은 '과로'의 한 요인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5월 12일, 보건의료노조와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주최로 열린 ‘간호사인력 노동조건 한일비교 토론회’에서 눈에 띄는 주제는 일본의 ‘과로사로 사망한 2명의 간호사’였다.
# 24살, 28살이 이기지 못한 과중한 노동조건
사건 개요는 이렇다.
다카하시 아이(2007년 사망, 당시 24세)는 도쿄도 제생회중앙병원에 2006년 4월에 입사, 수술실에서 근무했다. 한 건의 수술을 2명의 간호사가 담당한다. 한 명은 수술하는 의사 보조를, 다른 한 명은 외부 주변업무를 한다. 수술실은 손발이 심하게 차가워질 정도로 낮은 온도였고 도중에 교대할 수 없는 노동조건이었다. 다카하시는 수술실 간호사 정원 부족으로 경력 간호사가 해야 할 크고 어려운 수술도 담당해야 했다. 그리고 교대제 근무나 당직 근무 같은 불규칙 노동을 하였다. 휴일은 적었고 12일 연속 일할 때도 있었다. 근무카드에 기록된 노동시간 외에도 늦은 밤이나 휴일에도 병원의 요구에 부응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입사 1년이 지난 2007년 5월 28일, 병원에서 의식불명에 빠진 다카하시를 동료 직원이 발견했다. 구명조치를 취했지만 당일 오후에 사망했다. 유족은 2008년 3월 산재신청을 냈고 10월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다카하시의 공식 잔업시간은 일본의 과로사 인정기준인 월 80시간을 밑돌았지만 업무를 담당한 미타 노동기준감독서는 불규칙한 근무, 교대제, 긴급 수술 등의 과중성을 종합평가해 ‘과로사’로 인정했다.
또 하나의 과로사 인정은 국립순환기병센터 무라카미 유코(2001년 사망, 당시 25세)씨이다. 간호사가 된지 4년 차인 2001년 2월에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한 유코는 고등재판까지 가서 산재로 인정받았다. 유코 역시 공식 시간외 노동은 과로사 기준 이하였다. 하지만 오사카 고등재판소는 ∇근무 시프트 간격이 5시간 ∇불규칙한 노동 ∇수면의 질 등을 따져 “양적인 과중성과 아울러 질적인 과중성으로 보아도 공무 기인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근무 시프트(교대표) 간격이 5시간이라는 것은 ∇근무 사이 시간 전부를 수면에 충당하더라도 최적의 수면시간(7시간) 확보 불가능 ∇피로를 회복할만한 충분한 양의 수면을 취할 수 없음이 인정된 것이다.
▲ 일에 파묻힌 노동자? 한국은 OECD 최장의 노동시간 국가이다. 일본의 두 간호사 과로 산재인정은 업무량과 시간만 따지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교육센터
# 수면의 양과 질도 과로사 원인
토론회에 참석한 일본 보건의료복지노조협의회 시노하라 구니조 사무국장은 이 두 사건에 대해 “양질의 수면은 시간보다는 수면환경이 중요하고 수면의 양과 질이 ‘과로사 판정’의 중요 요인임을 인정한 사례”라며 의미를 설명했다. JICHIRO(지방자치단체노조) 건강복지국 마츠이 국장도 두 간호사의 과로사는 “노동시간과 노동의 질 문제였다.”면서 다수의 간호인력이 실제 노동시간과 신고시간이 다르다고 밝혔다.
다카하시의 산재 인정은 ∇불규칙 노동자 과로사 인정과 예방 ∇인력 부족으로 발생하는 심각한 간호사의 과잉 업무 ∇심야 교대/시간외 노동/정신적 스트레스/수면장애로 건강 피해 발생 등에서 일본 사회에 반향을 불렀다고 한다.
# 업무량과 시간만 따지는 국내 과로 기준
우리나라 산업재해보상보험 시행규칙에도 과로사 기준이 있다. 시행규칙은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와 ‘만성 과로’로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다.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란 돌발사건 등에서 오는 갑작스런 긴장이나 업무과중을 뜻한다. ‘만성 과로’란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발병 전 1주일 이내에 업무량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로 본다. 이러한 기준은 과로 범위를 축소하고 만성과로에 시달리는 교대제 근무 노동자는 과로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의 간호사 사례는 (실제는 아니었으나) 시간외 노동이 과로사 기준에 미치지 않았지만 불규칙한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 등이 과로 요소로 고려되었다. 우리나라도 업무량과 업무시간만을 과로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과로로 발생하는 질병의 산재인정 기준에 다양한 작업환경 요소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 일본 JICHIRO(지방자치단체노조) 마츠이 국장. 마츠이 국장은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이 과로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 이현정
# 교대시간표 작가는 노동자여야 한다
토론 마지막 질의응답에서 일본의 과로사 기준이 너무 엄격한 같은데, 이 기준에 불만은 없는지 그리고 교대제 개선을 위해 노조나 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물어봤다. 시노하라 국장은 “과로사 산재인정기준에 당연히 불만이 많다.”면서 “현재 정신 측면의 영향을 명확히 하자는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교대제도 복수의 사람이 야근을 하고 야근 일수를 8일 이내로 한정하는 규정이 지켜지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교대제 노동자는 주32시간 노동을 하고 50세 이상은 야근을 금지하는 운동도 펼친다.”고 말했다.
토론회 발제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발언에서 마츠이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간호표(교대근무시간표)일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날마다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베스트셀러 작가는 우리(노동자)여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교대 노동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건강과 입장이 적극 반영된 교대근무시간표가 노동자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교대노동을 하는 사람은 결국 노동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