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5:05
노동건강연대 사무차장 이현진, 일과건강 2007년 4월호
2006년 4월 부산의 한 피혁업체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가 직업병 유발 화학물질인 디메틸포름아미드(DMF)에 중독되어 한 달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DMF는 간 기능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직업병 유발 유해화학물질로 알려져 있다.
사망한 중국인 노동자는 32세. 사망 직전인 2006년 2월, 부산 ‘ㅂ’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고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병원으로부터의 판정은 ‘정상’이었다. 결국 일을 계속하다 DMF중독으로 인한 간기능 악화로 결국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노동부는 곧바로 해당 병원의 특수건강진단기관 지정취소를 시행했고, 2006년 하반기 전국 120개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일제점검을 실시하게 된다. 특수건강진단제도가 만들어진 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동부의 특수건강진단기관 일제점검의 결과, 심각한 상황이 드러났다. 전국 120개 특수건강진단기관 중 119개 기관이 부실기관으로 확인되었고, 이에 대해 지정취소 3개소, 업무정지 93개소(3월 이상 48개소, 3월 미만 45개소), 시정조치 23개소의 처분이 내려졌다. 부실기관에서 제외된 1개소마저도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아 제외된 것이어서 100% 모든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총체적 부실을 확인하는 결과였다.
특수건강검진이란 노동자가 업무로 폭로되는 유해인자로부터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 아는 제도이다. 특수검진을 통해 직업으로 인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직업병을 조기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업주는 직업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 발표된 결과로는 현재 시행되는 특수건강진단제도가 이런 목적을 수행한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민주노총 분석에 의하면, 다수의 특수건강진단기관이 무자격자(의사 및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를 고용하여 건강검진을 할 뿐 아니라, 검사방법도 무시하고 있었다. 병원 원무과 직원이 하얀 가운을 입고서 의사로 둔갑해 검진을 하기도 한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더욱 심각한 것은 검진 결과를 해석하는데 있어 사업주 눈치를 보면서 직업병 소견이 있는 사람을 정상으로 판정하거나 직업병과 상관없는 개인 질병으로 판정한 사례가 다수 있어, 기관의 양심을 팔아 영업행위를 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일부 기관은 노동자 건강을 위한 특수건강검진을 돈이 되는 일반검진을 따내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검진비용을 할인해 주는 ‘덤핑’ 행위까지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사업주와 특검기관의 유착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들이다.
현재 시행되는 특수건강진단제도에 대해 전문가들의 일부에서는 이 제도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제기를 하고 있다.
특수건강검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직업병이 진폐와 소음성난청에 한정되어, 근골격계질환, 순환기질환, 유기용제, 중금속에 의한 질환, 천식 및 피부염 등 노동자들이 쉽게 노출되는 직업병 요인들은 거의 발견되기가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업무상 질환으로 산재보상을 신청하는 경우,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발견된 것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발견되는 것이 훨씬 많다고 한다. 더욱이 직업병이 발견된 노동자들의 많은 수가 직장을 잃고 사후관리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아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특검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하니 제도 자체가 악용되는 점도 보인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는 취약계층에게는 이마저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은 동일한 일을 하지만 고용기간이 짧은 경우 검진대상에서 누락되기가 일쑤이다. 특수건강검진제도가 진정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직업병 조기발견, 예방, 관리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의심케 하는 일면이다.
현재의 특수건강진단제도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문가적 식견이 아니더라도, 지난 DMF중독 사망사건과 특수건강진단기관의 일제점검 결과만 놓고 보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관에서 부실과 영리, 유착 등의 부적절한 행위를 일삼아 결국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현 제도가 충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검제도 폐지론, 현행 제도 개선론, 개선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더욱 많은 논란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특검제도의 심각한 상황이 노동자 당사자에게도 큰 문제로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기도 하다.
현행 제도에서 직업병의 조기발견, 예방, 관리 등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그 문제점을 확인하고 실제적으로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는 제도로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 제도의 소비자인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겠다. 올바른 제도를 보장해 주고, 관리, 감독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더 이상 잘못된 제도운영으로 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느 전문가 한분의 말. “94~97년 특검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많았다. 그래서 특검에 대한 자료들도 상당히 많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역사는 항상 그래왔듯이 노동자 스스로 싸워서 쟁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특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특검제도에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요구가 있어야 제대로 된 제도를 얻어낼 수 있음을 되새기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