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간질환 인정기준은 문제

2012.03.03 14:06

조회 수:5073

박영만 변호사, 산업의학전문의(법률사무소 의연 대표)

 

일과건강 2006년 12월호


1. 간질환 진행경과
간은 인체 내에서 가장 큰 단일 장기로 각종 사고 시에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간은 인체에 흡수된 유해물질이나 알코올, 약제 등을 해독하거나 대사시키므로 그 과정에서 손상될 수 있다. 간질환은 원인에 관계없이 시간적인 진행순서에 따라 ‘급성간염, 만성간염, 간경화, 간암’으로 나눌 수 있다. 급성간염은 간세포에 나타나는 급성 염증으로 대개 1~2개월 내에 회복된다.

만일 급성간염이 회복되지 않고 염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만성간염이 된다. 만성간염은 염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는 시간적 개념과 함께 현재 간염이 진행 중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염증반응이 6개월 이상 계속되면 정상 간세포 수가 감소하는데 이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진행하면 간경변증(간경화증)이 발생한다.
간경변증이란 만성간염이 계속되어 간 구조가 변형되면서 혈액순환장애가 일어나고 간조직 자체가 단단하게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간이 딱딱해지는 이유는 간조직에 콜라겐이 들러붙어 뭉치게 되기 때문이다. 간경변증이 발생해도 간기능이 충분히 유지되는 경우는 대상성(초기) 간경변증이라 한다. 한편 황달, 복수, 간성혼수, 식도정맥류출혈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거나 간기능이 현저하게 감소된 경우는 비대상성(말기) 간경변증이라 한다. 비대상성 간경병증 단계에서는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 또한 간경변증은 비정상적 간세포가 발생하기 쉬운 상태이고 암세포가 발생하면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간암 발생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간경변증 환자는 증상이나 간기능검사 결과에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간암조기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2. 업무상 간질환의 원인
일반적으로 업무와 관련한 간질환은 사고시 발생하는 간손상,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독성간염, 약제성 간염, 알코올성 간질환, 바이러스나 세균 등이 일으키는 미생물성 간질환 등이 있으나 그중에서 주로 문제되는 것은 ‘독성간염’과 ‘바이러스성 간염’이다.

 

가. 독성간염
우리가 평상시 먹는 음식물, 약물, 독소 등은 장에서 흡수되어 모두 간으로 간다. 그래서 간은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쉽게 손상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간은 재생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유해물질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도 별 문제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양약, 한약, 기타 건강식품 등이 모두 간질환을 일으킬 수 있고 환경에 존재하는 각종 유해 화학물질은 간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작업환경에서 유해 화학물질은 주로 기도와 피부를 통해 신체에 흡수된 후 간에 이르러 해독된다. 그 중 일부는 대사과정을 통해 독성이 더 강한 물질로 변해 간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유해물질이 일으키는 간손상 정도는 유해물질 농도와 양, 노출기간, 노출경로, 근로자 연령, 영양상태, 기존 간질환 유무, 약물 복용 여부, 다른 유해물질에 중복노출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술을 많이 마시거나 영양결핍상태인 경우 간손상은 더욱 심해진다.
작업환경에서 취급하는 각종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간질환은 전통적인 직업병으로 볼 수 있다. 즉 작업현장의 유해인자가 질병을 일으키는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디메틸포름아미드(인조피혁 제조), 1,2-디클로로메탄(페인트), 메틸클로라이드(냉장고), 사염화탄소(고무), 염소화비페닐(합성수지) 등 많은 화학물질이 간질환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화학물질들은 그 종류가 무수히 많고 이로 인한 이상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화학물질로 인한 독성간염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비슷한 검사소견을 보인다. 또한 대부분 원인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업무상 질병인지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작업환경에서 오랫동안 저농도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서서히 간염이 발생하면 유해물질과 간질환 사이에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더욱 어렵다.

 

나. 바이러스성 간염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는 A형, B형, C형 간염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B형과 C형 바이러스는 만성간염과 간경변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B형 간염바이러스는 손상된 피부나 점막을 통해 인체에 침입하여 혈액을 타고 간에 도달하며 간세포 내에서 증식한다. 이 바이러스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인 잠복기간 동안 체내에서 왕성하게 증식하기 때문에 잠복기에 혈액이나 체액에는 무수히 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간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세포가 출동하여 감염된 간세포를 파괴하고 바이러스를 제거하여 인체를 보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간세포가 파괴되면서 간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파괴된 간세포 주변에 염증이 발생하여 간염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어린이는 면역체계가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면역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세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세포 파괴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보유한 어린이는 바이러스가 왕성하게 증식하는데도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간기능검사에서도 정상소견을 나타낸다.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 면역체계가 발달하면 감염된 간세포가 파괴되고 염증이 발생하여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한편 B형 간염바이러스는 인체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능력도 있다. 급성 B형간염 상태에서는 인체 면역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면역세포가 감염된 간세포를 파괴하여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배출되면 인체는 이것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만성간염에서는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또 다른 간세포를 침범하여 그 곳에서 증식하고 간질환은 계속 진행된다. 만성 B형간염으로 진단된 성인이 20년이 지나면 약 48%가 간경변증으로, 35%가 간암으로 진행한다.
C형간염은 대부분 서서히 진행되며 아무런 증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급성 C형간염에 걸린 성인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약 10%정도이며 만성 C형간염으로 이행되는 비율은 약 80%라고 한다. 이 중 20%가 간경변증으로 이행되고 매년 1~4%가 간암으로 진행된다. C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만성간염과 간경변증을 거쳐 간암으로 진행하기까지는 약 15~30년이 걸린다.
바이러스성 간염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는 염증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 간염이 자주 재발할 때, 다른 바이러스나 세균에 중복 감염될 때, 과음을 하는 경우, 유해 물질에 노출 될 때 등이다. B형간염으로 간경변증이 발생한 환자가 과음을 하는 경우 비음주자에 비해 10년 먼저 간암이 발생한다. 만성 C형간염 환자인 경우에는 간경변증 발생비율이 비음주자에 비하여 약 7.8배 증가되고, 음주량이 증가함에 따라 간경변증 발생비율도 증가한다고 한다(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2001. 대한간학회).
바이러스성 간질환은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전염경로와 임상경과가 뚜렷하고 또한 간기능검사, 항체검사, 바이러스검사 등으로 진단할 수 있어 발병 자체와 업무사이에 관련성은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바이러스성 간염도 직업외적인 음주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이 작업환경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질병이 악화되기도 하므로 그 업무관련성 판단이 항상 쉽다고는 할 수 없다.

 

3.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
산재법 시행규칙에서 인정하는 업무상 간질환으로는 ‘독성간염·급성간염·전격성간염·간농양·만성간염·간경변증·원발성간암’이 있다. 이중 급성간염, 만성간염, 간경변증, 원발성간암은 원인에 상관없이 진행경과에 따라 간질환을 분류한 것이다. ‘원발성’이란 암이 간에서 발생했다는 뜻으로 다른 장기에서 발생한 암세포가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간으로 이동하여 발생한 전이성간암과 구분하기 위해 쓰는 용어이다.
간농양은 세균이나 아메바가 간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고름이 생긴 것이다. 간에 외상을 입거나 수술한 경우, 충수돌기염(일반적으로 말하는 급성맹장염)이 발생한 경우, 담석증 때문에 담도가 막힌 경우, 당뇨병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 세균이 간에 침입하기 쉬워 발생한다. 전격성간염이란 단기간에 급격하게 진행하는 간염으로 간세포가 광범위하게 파괴되어 대부분 간부전(肝不全)으로 사망하는데 B형과 C형간염에서 주로 발생한다.

 

산재법 시행규칙 [별표 1]
 
 24. 간질환
  가.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다음의 1에 해당되는 원인으로 독성간염·급성간염·전격성간염·간농양·만성간염·간경변증·원발성간암이 발생 또는 악화되었거나 이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1) 작업환경에서 유해물질에 노출 또는 중독된 경우
    (2) 작업환경에서 병원체(세균·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경우. 다만, 다음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가) 업무활동범위와 해당병원체의 전염경로가 일치될 것
      (나) 재해전에 해당병원체의 전염근거가 없을 것
      (다) 업무수행중 해당병원체에 전염될 만한 명백한 행위가 있을 것
      (라) 해당병원체에 의한 간질환의 임상경과와 근로자의 검사소견이 일치할 것
    (3) 업무상 사고나 유해물질로 인한 질병의 후유증 또는 치료과정에서 기존 간질환이 자연경과 속도 이상으로 악화된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4) 바이러스성 간질환을 지닌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간염바이러스에 중복감염된 경우
  나.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업무상 질환으로 인정되지 아니한다.
    (1) 업무외적인 사유에 의한 상습적 과음으로 발생된 알코올성 간질환
    (2) 양약·한약·그 밖의 검증되지 아니한 물질(민간약·건강보조식품·녹즙 등)의 사용으로 발생된 간질환
    (3) 과체중·당뇨병 등의 합병증으로 발생된 지방간·지방간염·간경변증
    (4) 자가면역성 간염·유전성 간질환·혈관질환 등으로 발생된 간질환
    (5) 간내결석·담도결석·담도암·췌장암 등으로 발생된 간질환
    (6) 심장질환·폐질환·위장관질환·혈액질환에 의한 간질환
    (7) 다른 장기의 악성종양이 간에 전이된 간질환 

 

 

4. 현행규정의 문제점
산재법 시행규칙 [별표1]은 업무상 간질환을 ‘원인’과 ‘진행경과’라는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사용하여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간질환은 원인이 무엇이든 급성간염, 만성간염, 간경변증, 간암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되므로 원인에 따라서만 업무상 간질환을 분류하면 충분할 것이다. 원인에 따라 분류할 경우 ①업무상 부상으로 발생한 간질환, ②화학물질성 간질환, ③미생물성 간질환, ④알코올성 간질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격성간염은 간염이 나타나는 한 형태일 뿐이어서 간염을 치료할 때에는 임상적 의미가 있으나 따로 업무상 간질환으로 법령에 규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간농양과 바이러스성 간염은 미생물성 간질환에 포함된다.
한편 위 나목에서 일정한 질환을 일률적으로 업무상 질병에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과체중과 당뇨병 등의 합병증으로 발생한 간질환’은 원인이 된 과체중이나 당뇨병이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하였다면 그로 말미암은 간질환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앉아서 작업하는 경우, 야근이나 과로 때문에 신체리듬과 식습관이 바뀐 경우에 근로자는 과체중이 될 수 있다. 또한 당뇨병도 작업관련성질환이 될 수 있다. 작업관련성질환 때문에 기존질환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다면 이는 당연히 업무상 질병이다. 또한 작업환경상 유해물질 때문에 간이 아닌 다른 장기에서 발생한 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전이성간암이 발생했다면 이는 업무상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 나목에 규정된 질환도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으므로 위 질환을 무조건 업무상 질병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번호 제목 날짜
79 담배와 폐암, 그 인과관계 2012.03.03
78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과 이유가 필요 없는 간접차별 2012.03.03
77 소음노출, 청력보호구만 사용하면 O~~K~~? file 2012.03.03
76 유해물질, 알고서 씁시다 1 file 2012.03.03
75 직업병 조기발견 못하는 특수건강검진제도 [1] 2012.03.03
74 참거나 혹은 버티거나,‘생리 공개념’과 ‘생리 휴가’ 2012.03.03
73 삼겹살집과 환기장치, 어떤 관계가 있을까? file 2012.03.03
72 여행원제ː직군분리제ː반(半)정규직ː특수고용노동자 2012.03.03
71 스트레스는 간접적인 암의 원인 [2] 2012.03.03
70 노동자 건강평가 설문의 이해(4) 2012.03.03
69 ‘계약해지’와 ‘정규직전환’의 경계에 선 비정규노동자! 2012.03.03
68 업무스트레스와 간질환 [46] 2012.03.03
67 금속노조 소규모 사업장의 노안활동은 왜 힘든가? 2012.03.03
66 활동시간을 잘 쓰는 것, 소규모 사업장끼리 공동으로 실천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file 2012.03.03
65 밀폐공간에서의 질식사고, 작은 실천으로 큰 재해 예방 file 2012.03.03
64 아르바이트, 학생노동자의 노동권을 찾자! file 2012.03.03
» 현행 간질환 인정기준은 문제 2012.03.03
62 노동자 건강평가 설문의 이해 3 - 우울(憂鬱) 2012.03.03
61 ‘위장된 자영업자’ … 특수고용노동자 2012.03.03
60 과로사와 업무상재해 인정 2012.03.03
59 근골격계위험작업 개선의 원칙 file 2012.03.03
58 과로사에 대한 법률의 규정 2012.03.03
57 내가 가진 잣대로 산재환자를 재단하지 말라. 2012.03.03
56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여성노동권 file 2012.03.03
55 노동자 피로를 측정하는 다양한 방법 [1] file 2012.03.03
54 사업(장)의 경계에 갇힌 남녀평등 file 2012.03.03
53 노동자 건강 평가 설문의 이해 (1) 2012.03.03
52 돈벌이 때문에 제3세계 민중을 죽이는 캐나다의 석면 수출문제 file 2012.03.03
51 근골격계질환 유병율을 높이는 몰아치기 작업 file 2012.03.03
50 조직통합을 하라고? 제발 그렇게 좀 하자. 2012.03.03
Name
E-mail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