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3:31
민주노무법인 대표, 공인노무사 이혜수
일과건강 2006년 7,8월 합본호
근로기준법 제5조에는 균등처우에 대해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남녀 간에 모집과 채용, 임금, 교육훈련, 배치와 승진, 퇴직과 해고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또는 가족상의 지위, 임신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없이 채용 또는 근로조건을 달리하거나 기타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사업주가 여성 또는 남성 어느 한 성이 충족하기 어려운 인사기준이나 조건을 적용하는 것도 차별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차별을 판단하는 범위는 하나의 사업(장)내이다. 사업 또는 사업장은 공장, 광산, 사업소, 점포 등과 같이 일정한 장소에서 업으로서 계속 행하여지는 작업의 일체를 이루는 것을 뜻하며 반드시 기업주체와 관련하여 전체를 이루는 기업자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기업 또는 법인체에는 여러 개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 있을 수 있는데, 개인이나 법인이 여러 개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을 때 사업이 각각 근로기준법 적용단위가 되는지 아니면 이들 중 일부 또는 전부를 묶어 하나의 사업으로 보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지는 개개사업의 독립성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
주로 장소적 관념으로, 동일한 장소에 있으면 원칙적으로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장소에서 행하여지는 경우라도 현저하게 업무 양상이 다른 부문이 존재하는 때에는 그 부문에서 종사하는 근로자의 업종과 노무관리 등이 명확하게 구별되고 근로기준법상의 운용상 별도사업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면, 그 부문은 독립된 사업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하거나 아주 유사한 일을 하지만 사업주가 다른 경우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주위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례이다. 특정을 업무를 함에 있어서 모두 여성노동자를 채용하는데, 이들을 파견회사 소속으로 하거나 자회사소속으로 채용하여 도급이나 위탁의 계약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여성근로자들은 파견회사나 자회사 급여기준에 따라, 또는 도급계약서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임금이 지급된다. 이들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사용사업주 또는 원청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 정규직이다. 아주 소수의 남성정규직관리자와 이들의 지휘감독을 받는 다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간에 근로조건 차별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다.
특히 상위직급 관리자는 남성, 하위직급 실무자는 모두 여성이고 비정규직인 구조는 성차별적 고용구조의 전형이다. 이 차별은 여성노동자들이 근속연수가 오래되고 숙련이 향상되고 업무성과가 좋아도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인 차별이다. 그러나 이 상식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차별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큰 장애는 사업주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원청회사가 사용사업주로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였어도, 모자회사관계에서 모회사가 사용자로 권한을 행사하였어도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증이 충분하여도 법원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경우는 하청의 법인격이 부인될 정도로 독립성이 결여되어야한다. 그런데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임금) 3항에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의하여 설립된 별개의 사업은 동일한 사업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모자회사 관계에서도 여성노동자를 모두 자회사를 통하여 채용하게 한 후 별도 기준을 정해 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우도 차별판단을 위한 하나의 사업(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항이 현실을 개선시켜주지는 못하지만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단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법적 기준이 현실에 적용된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 적용되지 못한다면 사문화되어 있으나마나한 법조항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은 노동조합의 핵심적인 요구이면서 차별판단 구획을 넓히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차별 시정절차가 마련된다 해도 사업주가 다르다면, 또한 파견과 구분이 불분명한 수많은 도급에서는 차별의 실체에 접근하지도 못 하는데 법 적용 대상을 가르는데서 힘을 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