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3:39
천주교노동사목회 산재사목 정 세실 수녀
2006년 10월호 일과건강
인천교구 노동사목에서 산재환자들을 방문해 줄 수도자가 필요하다며 그 부탁을 받은 1985년, 내 개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를 부지수 당하던 때에 내 자신도 스프링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던 아주머니와 물건을 옮기던 중 무게에 못 이겨 넘어지면서 좌측 종아리 쪽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당했다. 걸을 수 없는 상태인데도 4개월 동안 통원치료를 받았던 소위 산재사고를 당해서 애를 먹었던 경험이 있다. 산재환우를 만나면서도 막상 내 자신이 산재를 당하고 보니 아는 것도 없고 사고가 난 것에 미안감이 앞서서 내가 아프다는 것,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치료가 웬만큼 되었는데도 3년 간 겨울이 오면 그 다친 다리가 어찌나 시리든지, 결국 한방치료로 마무리를 했지만 생활리듬은 물론이요, 4개월 동안 집안일에서부터 개인적인 모든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사는 수녀님들의 간병과 나를 대신한 여러 배려는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인천산재의료원인 중앙병원으로 산재환자방문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내가 산업재해를 입은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그 병원의 산재환자들이 수녀원으로 나를 방문했다.
# 산재환자 당사자
이런 사연으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산재환자들이 많은 병원으로 산재환자들을 본격적으로 정기 방문했다. 식물인간이 된 이들, 수화를 하던 이가 손을 다쳐서 언어까지 잃어버린 이, 한 손이 절단된 이가 몇 년 후 다른 손마저 절단된 이, 자기만의 공간은 전혀 가져본 적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고 공장기숙사에서 일하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제조업 진폐환자, 생계가 막막하여 모든 것을 접고 다시 시작하고자 찾아 간 칠흑 같은 어둠 속 막장에서 힘 부치게 일하는 중에 부인은 그 생활 못 이기고 떠나버린 후 어린 아들들을 가까스로 키워내다 그 자신이 이제는 진폐증으로 병원에서 하루하루 견디는 진폐환자, 날씨가 추워 불을 지피던 동료 실수로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맬 때 공장은 폐업하고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본인 부담금(비급여) 때문에 병원 측이 집을 가압류하는 화상환자, 수술하고자 재입원 중엔 요양연기가 자연히 되는 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음을 알고 놀란 산재환자에게 ‘반성문을 써오라’, 수술한 손이라 필기를 할 수 없는 환자를 위로와 격려차 병실을 방문하기는커녕, 그 직원이 상담하는 곳으로 ‘내려오라’며 끝까지 교통사고 환자에게 대필을 해서 반성문을 쓰게 한 근로복지공단의 ‘찾아가는 서비스’ 직원한테 스트레스를 받는 산재환자, 매일 ‘물리치료다, 뭐다’해서 오로지 의학적인 종결이 될 때까지 사회적응과 직장복귀에 따른 재활치료는 없이 병원만 왔다 갔다 시간만 보내고 막상 종결을 하면 무엇을 해야 앞으로의 삶에 가능성이 있는지 암담한 산재환자, 이들이 겪는 아픔을 어떻게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단순히 법과 의학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접근으로 산재환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들은 사고와 함께 이제까지 살았던 삶과는 다른 단계의 삶을 훈련해야한다. 온 나라를 덮고 있는 몸짱과 얼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큼 이해가 될까? 몸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그들 역시 매일 몸짱과 얼짱을 만들고자 자신과 온 가족이 치료에 정성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몸짱과 얼짱은 생존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다.
산재를 당하면 일에서 단절되고 그 동안 맺었던 많은 인간관계 역시 끊어지고 앞으로의 사회적인 관계는 더 좁아지게 된다. 한정된
사람들과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머물게 되는 게 산재환자, 아니 장애인의 현실이다. 그들의 이동권은 자유롭지 못하고 묶여 있다.
# 산재환자의 가족
대부분의 산재환자 가족은 다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충격으로 실제로 건강상태가 엉망이 된다. 사고로 가족들 역시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게 되고 우울증 등으로 정상적이지 않다. 내가 만난 산재환자 ㅂ씨를 간병하는 아버님은 점점 알코올 의존이 높아지고 있다. 다른 ㅂ씨의 아내는 심한 우울증으로 9년 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한국 병원시스템은 거의 가족 힘으로 간병하는 현실이라 환자와 함께 그 가족이 겪는 아픔은 오래 간다. 작은 수술이라도 할라치면(환자는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어김없이 보호자든 간병인이든 있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가족들은 다니던 직장을 쉬어야하고 직장을 포기하게 된다. 이런 간병을 위해 지급되는 간병비는 거의 보지를 못했다.
보호자와 자녀들도 한 가장의 산재사고로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입는데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산재환자 간병을 위해 모든 삶을 포기하고 환자 곁에만 머물러야하는 현실에서 과연 누가 보호자들이 겪는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를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는가? 산재환자가 받는 휴업급여와 연금으로 보호자들이 치료를 받는데 소요되는 진료비를 누가 생각이나 할까? 가족이라서 계산 없이 헌신하는 그들의 아픔을 당연시 하고 걸핏하면 그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비난은 자중해야 한다. 내가 아는 많은 중증산재환자(의식이 없는)의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결코 희망이 없음에도 희망을 두는 그들은 수도자인 내 자신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나를 인도해 준다.
산재환자들을 만나면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산재환자가 도덕적으로 해이해졌느니’ ‘보상병에 걸렸다’한다. ‘사람이 돈을 잃으면 조금 잃었다’하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었다’하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었다’고 한다. 물론 사회 일각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의중은 안다. 하지만 각자가 자신들이 위치한 상황의 잣대로 두 번 다시 산재환자를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개정을 앞둔 산재보험법이 전체 산재환자 삶의 질과 의료서비스 질을 향상시키지 않고 단순히 재정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것이라면 개정이 아니라 개악이이다.
# 도덕적 해이는 산재환자 몫이 아니다
성서 마태오 25장 35~45절에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는 구절이 있다.
산재환자들에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 호도하는 것은 그들의 옷을 벗겨 부끄러움을 주는 것과 같다. 장애로 연금을 받는 이들과 장애로 직업생활이 어려워 힘든 생활을 하는 이들의 옷을 더 이상 벗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도덕적인 해이는 산재환자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그런 소리를 하는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산재환자는 의학적인 접근이 가능하지 않다. 그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기관은 병원과 산재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이며 그곳엔 최종 심사를 하는 자문의가 있다. 산재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서 그 당사자를 가장 잘 알고 그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치료를 올리는데 이것을 기각하는 것은 거의가 근로복지공단의 심사자문의이다. 그런데 산재환자더러 도덕적으로 해이해졌다는 말이 맞는가? 이 말을 들어야할 사람은 산재환자가 아니다.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이 없는 현실을 바로 세우기보다는 산재환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한한다면 거기서 발생되는 결과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하며 산재환자들을 담당하는 관계기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가정방문과 병원방문을 통해 수많은 산재환자, 진폐환자들을 만나면서 이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 특히 산업재해자들은 꼭 필요한 것조차 갖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수도자로서의 소명을 살고자 정결과 가난과 순명과 겸손을 서원(1)한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가난을 따르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산재환자들의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영성적 가난 앞에서 나의 서원이 이 시대의 상처 입은 산재환자들에게 어떤 풍요로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