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4:44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이수정, 일과건강 2007년 1월호
2006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이하 도철)는 3명의 환경관리직 여성비정규노동자를 해고 했다. 이 과정에는 공개채용이 있었는데 “성차별적 정규직 전환”을 합리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석연치 않은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던 환경관리직 6명의 비정규노동자 중 공교롭게도 3명의 “남성노동자는 정규직”으로 3명의 “여성노동자는 해고”로 그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신규 채용된 4명 모두 남성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3조에는 근로계약 기간을 정하는 경우 1년을 상한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계약의 반복 갱신에 대해서는 제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1년 이내의 기간제 근로계약을 반복적으로 갱신함으로써 근로기준법 제30조 해고제한 규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근로계약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형식에 불과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이 되고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갱신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가 된다.
「근로기준법」 제23조(계약기간)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과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30조(해고 등의 제한) ①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기타 징벌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법규정과 판례에 따르면 도철의 환경관리직 6명은 이미 수차례 계약기간 갱신을 통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이기 때문에 해고를 위해서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 3명은 계약서상 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해지”라는 미명아래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나 ‘성차별적 부당해고’ 구제를 위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정규 관련 법안 통과 이후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직 해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오랫동안 계약을 갱신해 온 기간제 비정규직이라면 해고 1순위이고(여성이라면 0순위에 가깝고), 그 업무는 외주화 1순위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런 일은 노동현장 곳곳에서 이미 시작되었거나 예고된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2007년 7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의 보호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기간제법에서는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기간(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계속근로한 총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초과하여 사용할 때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하고 있다. 즉,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경우 사용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기간제법은 아이러니하게도 2년이 초과하기 전에 기간제 노동자를 “계약해지”하여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도철의 경우가 그렇고, 수차례 계약갱신을 했던 행정직원을 해고한 숙명여대의 경우가 그렇고, 청원경찰 계약직 노동자를 모두 해고하고 외주화한 법원의 경우가 그렇다. 이는 정규직 전환에 희망을 걸고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며 숨죽여 일하던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 목에 칼을 들이대어 생존권을 빼앗는 일이다.
그들은 또 다른 비정규직이 되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에 놓이게 될 것이다. 2년마다 다른 노동자로 채워지는 비정규직 일자리, 반복되는 해고의 칼바람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이제 정규직이 희귀하게 될 사회에서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능한 것은 3개월짜리 계약기간 갱신, 6개월짜리 계약기간 갱신, 11개월짜리 계약기간 갱신 등이다. 그것도 2년이 초과하지 않는 한도에서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