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3:54
박영만, 법률사무소 의연 대표, 산업의학전문의
2006년 11월호 일과건강
1. 과로사 분류
가. 현행 법령이 인정하는 업무상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과로사)
(1)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뇌실질내출혈·지주막하출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 특별한 경우란 업무와 관계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된 때이다.
(2)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뇌경색·고혈압성뇌증·협심증·심근경색증·해리성대동맥류
작업 도중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놀란 경우, 작업환경이 급격하게 변한 경우, 만성적인 과로 때문에 발생한 경우에 인정된다.
(3)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발생한 뇌심혈관계질환
질병 발생 또는 악화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나.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이 추가로 인정하는 과로사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재법 시행규칙 [별표1]이 규정하는 7가지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만 과로사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별표에 규정 안 된 다른 질환이나 사인이 미상이더라도 과로가 인정되고 과로 때문에 악화될 수 있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법원에서는 뇌심혈관계질환만이 아니라 청장년급사증후군, 급성심부전, 간경화, 간암, 천식, 폐렴, 폐결핵 등에서 과로 때문에 질병이 악화되어 사망한 경우 업무관련성을 인정한 바 있다. 법원은 산재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한 업무상질병 인정범위를 단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법상 요양관리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정한 내부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회에서 만든 ‘법률’은 국내에서 법원과 국민이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하는 강제규범이다. 하지만 추상적인 법률을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행정청에서 만드는 하위규범인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은 법률만큼 효력이 강하지 않다. 따라서 산재법 시행규칙 [별표1]에서 규정한 ‘만성적인 과로’에 관한 기준도 예시에 불과해서 법원이 법률적 판단을 할 때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에서는 별표에서 규정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과로 내지 과로사를 인정하기도 한다.
2. 판례 검토
근로복지공단에서 과로사한 사례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당사자는 소송을 통해 법원에 판단을 구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법령을 기준으로 신속한 판단을 하므로 아무래도 경직된 판단을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법원에서는 산재법 시행규칙을 단지 사무처리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당해 사건에서 과로 정도와 인과관계를 근로복지공단에 비해 오랜 시간 검토하여 좀 더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업무와 관련한 과로사 여부의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에서 하므로 법원의 태도를 알아본다.
가. 업무관련성 판단기준
산재법은 ‘업무상의 사유’로 질병이 발생한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업무상 사유가 인정되는지가 문제인데 법원에서는 보통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업무수행성’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배, 즉 지휘·명령 아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용자의 지배 아래 있으면 충분하고 사용자가 직접 관리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또한 업무라 함은 일반적으로 근로계약, 단체협약, 취업규칙, 당해 현장 관행 등에 의하여 사용자가 명하는 행위 및 이에 부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업무기인성’이란 업무에 종사하지 않았다면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즉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근로자가 과로사한 경우 업무상 재해인지 판단하는 제일 중요한 기준은 업무상 과로와 사망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존질환과 업무환경이 상호작용 하는 과로사의 특수한 성격상 업무기인성이 인정되면 그 발병이나 사망 장소가 사업장 밖이라 하더라도(업무수행성이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사로 인정할 수 있다.
나. 업무수행성
업무를 마친 후 회식석상이나 귀가 도중 또는 퇴근 후 집에서 취침중이나 목욕도중 사망한 경우, “업무상의 과로가 뇌출혈의 주된 발생 원인으로 보이는 고혈압증에 겹쳐서 이를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것으로 인정되므로 그의 사망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며, 업무상의 과로가 원인이 된 이상 그 발병 및 사망 장소가 사업장 밖이고 업무수행 중에 발병하여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업무상의 재해로 보아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있다(서울고등법원 1992.10.23. 선고 92구12003 판결).
다. 업무기인성
(1) 상당인과관계
업무(원인)와 질병(결과)간 인과관계는 상당성(상당인과관계설)을 그 기준으로 하고 있다. 즉 어떤 원인이 있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리라고 사회생활상 일반적인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보통 인정되는 관계가 있으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2004. 9. 3. 선고 2003두12912 판결)
한편 질병의 직접적이고 주된 원인이 따로 있고 과로는 간접적 부수적 원인이라 하더라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공동원인설).
“뇌출혈의 주된 발생 원인이 원고의 담당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과로와 정신적 압박감이 뇌출혈의 주된 발생원인인 고혈압증에 겹쳐서 이를 유발 또는 악화시킨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서울고등법원 1993.4.16. 선고 92구33178 판결)
(2) 과로 정도
법원은 원칙적으로 당해 근로자의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과로여부와 업무상 재해여부를 판단한다.
“원고가 수행한 직무가 보통 평균인에게는 과중한 일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원고의 연령과 건강, 신체조건으로 보아 과로의 원인이 되었고, 이 과로로 말미암아 고혈압 증세가 자연적인 악화의 정도를 넘어 급속하게 악화됨으로써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경우 업무상재해로 보아야 한다.”(서울고등법원 1992.7.2. 선고 91구17384 판결)
“과로로 인한 질병이란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으로 급속히 악화된 경우까지도 포함된다.”(서울고등법원 1992.9.9. 선고 91구17629 판결)
“망인은 평소 심관상동맥경화증의 기존질환을 가지고 있었는데 업무상의 과로가 누적되어 그것이 유인이 되어 급사에 이른 것으로 보는 것이 순리에 합당하다 하겠고, 사고 전날 음주를 하여 그것이 다소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라도 혈중 알코올농도의 정도 등에 비추어 업무상의 과로로 인한 사망임을 좌우할 만한 사유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인정되므로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서울고등법원 1992.11.26. 선고 92구6176 판결)
(3) 증명책임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자, 즉 근로자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당해 사망이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할 것이므로 근로자의 사인이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업무에 기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3.12.26 선고 2003두8449 판결)
그렇지만 산재법 시행규칙 [별표1]에 따라 ‘업무수행 중에 발생한 뇌실질내출혈·지주막하출혈’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 측에서 ‘업무와 관계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되었다는 점’을 증명하여야 한다.
결국 근로자 측에서 증명책임을 지는 경우는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뇌심혈관계질환이 발생한 경우이다. 그리고 업무수행 중에 뇌경색·고혈압성뇌증·협심증·심근경색증·해리성대동맥류가 발생한 때에는 근로자 측에서 작업 도중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놀라서, 작업환경이 급격하게 변해서, 또는 만성적인 과로 때문에 이러한 질병이 발생한 점을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