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4:54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이수정
일과건강 2007년 2월호
우리은행, “비정규직 3,100명의 정규직화(무기계약화) 전환”
국민은행, “비정규직 8,000명 무기계약화”
신한은행, “비정규직 2,700여 명 중 일부 무기계약화 추진”
올 7월 비정규 관련 법안의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해지가 잇따르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대규모 무기계약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은행권의 무기계약화는 첫째, 법 시행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둘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무기계약화)’로 포장하고, 셋째, ‘대규모’로 실시하겠다고 하여 그 진실을 들여다보기 힘들게 압도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이미 2006년 8월 도입된 ‘직군분리제’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과거 일반직으로 채용하던 남성노동자들과는 달리 여성노동자를 ‘여행원’이라는 서무원으로 분리 채용하여 승진․임금 등 노동조건의 차별을 당연시하던 “여행원제”의 부활에 다름아니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었으나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모집․채용․임금․승진 등 각종 노동조건에서 차별받고 있었다. 특히 은행권에서 시행하고 있던 ‘여행원제’는 이와 같은 차별을 고착화하는 것이어서 중소기업은행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투쟁한 결과 1991년 노동부에서 금융기관의 여행원제도 폐지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노사간 자율교섭 방해와 은행장의 무성의 등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1992년 9월 ‘여행원제도 폐지! 단일호봉제 실시! 전직시험 폐지! 입행 후 여행원 경력 100% 인정!’ 등의 요구를 담아 투쟁을 전개하여 1993년 1월 여행원제 폐지를 이뤄내었다.
‘’직군분리제“는 여행원제 폐지 이후 등장한 새로운 성차별제도이다. 왜냐하면 여행원제 폐지 이후에도 하나은행에서 여전히 유사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우리은행의 경우 이번에 대상이 된 3100명 중 ‘영업점 창구담당 비정규직(Mass Markrting 직군)’, ‘사무지원 업무직(사무지원 직군)’, ‘콜센터 업무 담당(Customer Satisfaction 직군)’은 거의 100%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차별적인 직군분리제'는 여성/비정규직이 대부분인 업무에 대하여 기존의 정규직 직제와는 다른 차별적인 직제를 신설하여 고용은 어느 정도 안정시키지만 임금과 승진 등 노동조건에 대한 차별은 유지하는 제도(신인사제도)인 것이다. 한 예로 2006년 초에 작성된 우리은행 “계약인력 인사제도 개선안”을 보면, 1년~18년차 텔러행원은 ‘행원→계장→대리’는 자동 승진되지만, 19년차부터는 선발과정을 거쳐 일부만 과장으로 승진된다. 물론 그 이후의 승진제도는 없기 때문에 대리나 과장으로 정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직군분리제와는 별개로 제2금융권에서는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최하위 직급을 신설하고 있다. 기존에는 고졸 또는 초대졸 여성들을 5급으로 채용해 왔으나 신규 채용할 때 6급을 신설하여 채용시기부터 차별을 고착화 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하여 노조에서 동의하지 않자 회사는 수년간 5급 여성노동자를 신규채용하지 않는 것으로 노조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직군분리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닌 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의 차별을 고착화하여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비정규직 관련 3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 「노동위원회법」(개정))을 피해가기 위한 ‘반(半)정규직화’일 뿐이다.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 이전에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단기간으로 여러 번 계약 갱신을 하며 무기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재계약을 하고 여러 차례 계약 갱신을 하여 2년이 경과한다면 그 시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미리 직군분리제를 통해 기간제 노동자를 반(半)정규직으로 묶어 놓으면 무더기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차별시정’ 비교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차별적인 노동조건을 유지하면서 차별시정제도의 시행에 따른 법적 다툼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게다가 성과중심의 직군분리제는 이후 ‘특수고용노동자‘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주로 여성노동자의 희생을 담보한 성차별적인 정규직화라는 점에서 결코 겉포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