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0:03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원·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를 보면 사업주는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건강 장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생명보전과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도록 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업주가 이 의무를 잘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문제다. 또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의무를 알고 있는 사업주도 그 의무의 범위를 협소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노동자의 정신 건강 증진이나 폭력 예방 등은 사업주의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체 산업 가운데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폭력 문제가 노동자 건강과 안전의 중요한 논의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폭력 문제는 특히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대하는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심각하다. 병원 노동자와 더불어 은행 등 금융업 창구 직원, 유통서비스업 판매 직원, 각종 소매업 판매 직원 등이 대표적 위험 직종이다. 때문에 이런 업종의 사업주들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특별히 폭력 예방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는 현행법상 사업주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지 않으면 업종의 특성상 생산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먼저 사업장에 폭력의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평가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폭력이 발생한 사례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폭력이 자주 일어나는지, 어떤 상황에서 폭력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주로 누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지 등이 분석돼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젊은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야간 근무 노동자, 1인 근무 노동자들이 위험하다. 또 많은 현금을 다루거나 소비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업무를 하거나 소비자의 불평·불만을 들어줘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면 위험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의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노동자들을 폭력 상황에 방치하는 것은 사업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들과 상의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면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다. 우선 노동자와 소비자가 대면하는 공간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계산대 노동자가 소비자를 잘 볼 수 없게 공간이 설계됐으면 우발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한다. 안전하게 일하는 방식에 대한 교육도 필수적이다. 많은 돈을 다룰 때의 안전수칙,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를 식별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야간 근무나 취객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업무에서는 나이 어린 노동자가 혼자 일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안전 요원 및 경찰과 협조 체계를 잘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이런 예방 조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