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20:35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구리에 있던 원진레이온에서는 유기용제 중독 환자가 발생되면서 직업병 인정 투쟁이 시작되었다. 원진레이온은 선진국으로부터 개발도상국으로 공해산업이 이전되어 문제를 일으킨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자본은 1960년대 해외의 위험산업을 들여오거나 전쟁터로 청년들을 내몰았다. 그리고 거의 5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해외로 위험산업을 이전시키거나, 국내의 약자들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있다. 이 글은 유해 화학물질이 어떤 식으로 이동하면서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지 정리한 것이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화학물질 뿐 아니라, 최근 대기업에서 영세사업장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한국인 노동자로부터 이주노동자에게로 이전되는 화학물질의 위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1. 원진레이온 : 환경오염 산업의 제3세계 이전사례
레이온은 양복 안감에 쓰이는 부드러운 천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레이온 산업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전되었다. 레이온 산업의 위험물질은 이황화탄소이다. 이황화탄소의 특성과 독성은 다음과 같다.
“이황화탄소(CS2)는 이전에는 고무공장에서 딱딱하게 하는 작업에 사용되어 중독환자를 많이 내었지만 지금은 비스코스레이온 합성에 제일 많이 쓰이고 그밖에도 셀로판공장이나 농약공장에서도 사용된다. 이황화탄소는 색도 냄새도 없는 액체인데 기름을 녹이는 성질이 있어 유기용제의 하나로 사용되는데 상온에서 공기 속으로 잘 날아가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황화탄소의 독성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아주 높은 농도에서는 의식이 없어지면서 생명을 잃으며, 1000ppm정도에 폭로되면 성질을 참지 못하거나 환상을 보는 등 정신이상의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급성중독이 아니라 만성중독이다. 이황화탄소에 의해서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건강장애를 나열해보면 신경계통에 있어서는 뇌가 위축되거나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증과 팔다리가 무겁고 아프고 저리고 심해지면 마비가 되는 다발성 신경염이 있고, 혈액순환에 관련되어서는 심장에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협심증과 관상동맥질환이 생기고, 눈 속의 작은 혈관이 부풀어오르거나 망막에 변성이 오기도 하며, 콩팥이 망가져 신부전증이 오고 간기능의 장애가 생기며 성기능의 장애와 무정자증이나 기형정자가 생기는 등 여러가지가 있다.”
아래 표는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이미 레이온 산업의 유기용제 중독 증상이 나타났으며, 일본에서도 중독증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레이온 생산 설비가 이전될 당시, 이미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표 . 레이온 산업의 이전과 원진레이온 직업병의 발생
연도 |
주요 사건 |
1900년대 초반 |
미국에서 190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미 정신병적 장애와 신경증상이 심각하게 보고되고 있었음 |
1913년 |
미국에서 일본으로 레이온 산업 이전 |
1927년 |
일본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사례 최초로 드러남 |
1960년대 |
일본에서 지속적인 이황화탄소 중독 보고됨(뇌혈관장애에 따른 정신장애나 마비환자들 보고) |
1964년 |
한일경제원조의 일환으로 도레이레이온의 방사기계가 한국으로 들어옴(흥한화학섬유주식회사) |
1976년 |
원진레이온으로 회사명칭 변경 |
1977년 |
원진공장에서 나오는 가스에 의해 전철 안전이 위협 받는다는 언론보도. |
1981년 (한국 산안법 제정) |
최초의 직업병환자 보고(당시 아황산가스중독으로 오보) |
지역주민이 유독가스에 피해 입는다는 언론보도 | |
당시 적절한 개입 못함으로 조기대책 가능성 소실 | |
81년 이후 매년 작업환경측정과 특검을 실시해왔으나 이황화탄소가 건강위협이 된다고 보고된 바 없음. | |
1987년 |
고통받던 환자들이 노동부에 진정서 접수, 정밀검사 호소. 검진결과 뇌경색확인, 이황화탄소 중독 진단 |
1988년 |
개인 비용으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사측과 6백만원 씩에 합의를 하였으나 규모가 커짐. 피해노동자와 가족협의회 구성. 전문가 지원집단 구성 |
진상조사와 항의방문, 보고대회와 성명서, 기자회견 | |
노사간 1차 합의를 이끌어냄. 그러나 너무 늦은 판정 | |
김봉환씨 사망 계기로 진단 못 받은 사람들에 대한 산재 승인투쟁 시작. 이후 김봉환 장례투쟁으로 전환. 김봉환씨 사망 후 137일 경과한 후 대책위 활동을 통하여 91년 산재로 승인받음. 이로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서 “명백한 인과관계”에서 “상당한 인과관계”로 기준을 바꿈 | |
1991년 |
김봉환 장례투쟁의 결과로 역학조사에 들어감. 이 결과 이황화탄소 중독증 진단의 기준이 바뀜 |
1993년 |
폐업 결정. 설비 중국 이전 확정. 이에 대한 노동자 투쟁 시작. 고용승계와 향후 추가로 발병할 환자들에 대한 대책, 현재 환자들에 대한 대책 등 요구 |
원진직업병 관리재단 설립 허가(현금 50억, 파산채권 50억, 토지매각잉여 50억) | |
1997년 |
원진직업병 전문병원건립 추진위 구성 추가 출연금 206억원 수령 |
1999년 |
원진녹색병원, 원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복지관 개소 |
2003년 |
원진재단부설 녹색병원 개원 |
1960년에 한국에 들어온 레이온 생산설비는 환기시설이 부족하고, 작업환경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조건 속에서 900명의 직업병 환자를 만들어내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과정은 이렇게 설명된다.
“이황화탄소가 인체에 해로울 정도로 폭로되는 환경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었는가 아닌가는 작업환경측정결과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진행되어온 작업환경측정은 항상 허용기준미만에 머물렀고 따라서 노동자는 전혀 건강에 장애를 받을 수 없다는 과학적인(?)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공장 주변에서조차 환경피해가 70년대부터 계속되어왔고 실제로 담밖에서 측정한 결과가 작업장 안에서 허용되는 수준을 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하니 원진레이온에서 상당기간 일해온 모든 사람들이 직업병의 위험아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70년대에 일했던 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작업환경이 극도로 열악하여 우리나라에서 이황화탄소중독의 양상이 중추신경기능의 장애로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언어장애까지 생긴 심각한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이황화탄소를 다루는 방사과나 후처리과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과에서 기계를 정비하는 영선부서나 같은 공간안에 있는 작업부서 근무자는 물론 타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서도 직업병환자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원진레이온 직업병이 드러나고 대책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환경과 안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장의 문을 닫아버린 후 설비를 또다시 중국으로 팔아넘김으로써, 심각한 환경안전 문제를 외부로 이전함으로써 해소하는 안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
“단일 사업장으로 그렇게 많은 중독환자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원진은 곧 직업병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원진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하는 것은 앞으로 직업병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것인가를 가름할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역학조사 이후에도 계속 중독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또 시간이 갈수록 중독환자의 수가 늘어가면서 원진레이온은 비극적인 결말을 강요당하고 만다. 유해사업장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자 기업이(더 정확하게는 79년 이래 법정관리를 맡고 있던 산업은행측이) 경영의욕을 잃고, 보다 안전한 생산조건과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원진레이온을 폐업하므로서 원진의 오명을 회피하고 그 땅을 팔아서 이익을 보려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에 해당 노동자는 물론 양식있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였지만 당정협의회를 통과하고 정부의 의결을 거쳐 폐업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폐업은 결코 직업병문제를 바르게 풀어가는 방법이 아니다. 원진레이온 공장은 노동자가 직업병에 대한 두려움없이 일하는 현장으로 개선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개선된 방식으로 비스코스레이온을 생산해 수출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기 이를데 없는 폐업으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생계 등으로 고통을 받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밖에도 원진레이온회사측에서 직업병이 문제가 되면 직장이 없어질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해온 협박이 실제상황이 되어버림으로 앞으로도 직업병문제가 시끄러워지면 좋지 않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기게 되어버렸다.”
한국의 원진레이온 투쟁을 이끈 양심적 세력들은 이후 중국 공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입장을 중국정부에 전달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2. 석면, 아시아를 위협하는 유해물질
석면은 중피종과 폐암을 일으키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단지 하나의 석면 섬유가 폐에 들어가더라도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그 위험성은 지구상의 어떤 물질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석면은 주요 선진국에서 사용금지 되었으며, 수입 수출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석면광산을 보유한 국가들이, 석면광산 자본의 편에 서서 석면의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수출에 열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석면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마련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석면 수출이 집중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은 그만큼 심각한 위협에 놓이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놀랍게도 석면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캐나다이다. 최근 캐나다의 석면 수출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보고서가 제출되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건축 및 목재 노동자 국제노동조합인 BWI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캐나다 의회에서 확보된 캐나다의 석면수출 관련자료를 공개하였다. BWI는 캐나다의 석면수출에 대한 가장 왕성한 반대운동을 하는 조직으로서, 최근에는 캐나다 수상인 스테판 하퍼(Stephen Harper) 앞으로 석면 수출 금지를 요청하는 청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는 캐나다의 석면 수출 자료를 2007년 12월에 입수하여 번역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2007년 11월 15일 캐나다 의회에서 팻 마틴 의원의 질의에 의해 “캐나다의 석면 수출 실태”가 공개되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의 석면 수출이 예전에 비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수출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석면을 수입하는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석면에 노출될 수 있는 노동자, 일반 국민, 소비자에 대한 보호규제 수준이 낮다고 한다. 아래 표와 같이 작년에 대비하여 캐나다의 석면 수출은 대규모의 증가를 보였다.
표.캐나다의 석면 수출 현황
국가 |
증가율(%) |
브라질(Brazil) |
200.6% |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
111.2% |
도미니크 공화국(Dominican Republic) |
100% |
방글라데시(Bangladesh) |
69.9% |
페루(Peru) |
63% |
스리랑카(Sri Lanka) |
40.7% |
쿠바(Cuba) |
30.7% |
중국(China) |
26.1% |
튀니지(Tunisia) |
25% |
에쿠아도르(Ecuador) |
22.7% |
베네수엘라(Venezuela) |
20% |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석면의 75 %는 아시아로 수출되었다. 아시아의 5대 석면수입국의 석면수입 실태는 다음과 같다.
표 . 아시아 5대 석면 수입국가의 수입량
국가 |
수입량(2007년 1월부터 8월까지) |
인도(India) |
C$25,196,357 |
스리랑카(Sri Lanka) |
C$4,464,876 |
인도네시아(Indonesia) |
C$3,600,766 |
태국(Thailand) |
C$2,216,455 |
방글라데시(Bangladesh) |
C$946,899 |
인도의 경우 32개의 백석면 가공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1년에 5억 달러(US $) 이상의 총 매상을 기록할 정도이다. 인도의 석면자본은 조직적인 대응을 하고 있으며, 인도사회의 강력한 로비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의 석면산업에서 이윤이 발생하면 발생할수록 노동자들은 직업성 폐질환에 걸리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어떤 의학적 치료나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캐나다의 석면광산에서 생산된 석면들이 전세계로 수출되는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아래 표이다. 2006년 1월-8월까지와 2007년 동기간을 비교하여 국가별 수출량의 변동율을 확인하였다. 전체 수출량은 13.7 %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국가별로 수출량 변동의 경향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각 국가의 규제수준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표 . 캐나다의 석면 수출동향(2006년과 2007년 동기간 비교)
국가 |
수출량(캐나다 $) |
변동율(%) | |
2006년 1월-8월 |
2007년 1월-8월 | ||
인도(India) |
24,878,047 |
25,196,357 |
1.3% |
스리랑카(Sri Lanka) |
3,173,636 |
4,464,876 |
40.7% |
인도네시아(Indonesia) |
3,119,105 |
3,600,766 |
15.4% |
멕시코(Mexico) |
3,362,216 |
2,549,430 |
-24.2% |
브라질(Brazil) |
762,437 |
2,291,708 |
200.6% |
태국(Thailand) |
6,694,617 |
2,216,455 |
-66.9% |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
965,114 |
2,037,981 |
111.2% |
컬럼비아(Colombia) |
2,183,336 |
1,451,632 |
-33.5% |
엘살바도르(El Salvador) |
968,320 |
968,320 |
-- |
방글라데시(Bangladesh) |
557,277 |
946,899 |
69.9% |
중국(China) |
604,857 |
762,821 |
26.1% |
필리핀(Philippines) |
728,638 |
746,160 |
2.4% |
에쿠아도르(Ecuador) |
582,930 |
715,006 |
22.7% |
세네갈(Senegal) |
771,442 |
598,212 |
-22.5% |
말레이시아(Malaysia) |
1,046,808 |
540,732 |
-48.3% |
미국(United States) |
464,261 |
535,872 |
15.4% |
대만(Taiwan) |
687,200 |
510,214 |
-25.8% |
페루(Peru) |
303,655 |
495,072 |
63.0% |
베네수엘라(Venezuela) |
295,268 |
354,356 |
20.0% |
한국(Korea, South) |
793,385 |
296,910 |
-62.6% |
파키스탄(Pakistan) |
1,792,531 |
268,318 |
-85.0% |
튀니지(Tunisia) |
196,320 |
245,400 |
25.0% |
모로코(Morocco) |
331,209 |
244,607 |
-26.1% |
베트남(Vietnam) |
399,383 |
130,284 |
-67.4% |
쿠바(Cuba) |
52,100 |
68,104 |
30.7% |
볼리비아(Bolivia) |
-- |
38,273 |
-- |
이란(Iran) |
81,797 |
37,143 |
-54.6% |
도미니카공화국(Dominican Republic) |
4,059 |
8,118 |
100.0% |
독일(Germany) |
6,604 |
6,605 |
0.0% |
오만(Oman) |
-- |
6,507 |
-- |
알제리(Algeria) |
3,817,230 |
-- |
-- |
터키(Turkey) |
646,914 |
-- |
-- |
앙골라(Angola) |
347,400 |
-- |
-- |
케냐(Kenya) |
4,788 |
-- |
-- |
총계 |
60,622,884 |
52,333,138 |
-13.7% |
캐나다의 석면광산업체 중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JM Inc.와 LAB 크리소타일 광산이 공동합작회사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합작회사의 명칭은 크리소타일 캐나다 Inc.(CCI)이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석면 수출과 판매를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LAB 크리소타일의 대표는 이러한 조치가 “전세계적인 시장을 방어하고, 캐나다 내의 석면 광산 가동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캐나다의 석면 생산 및 수출은 전세계 건설노동자들의 집중 투쟁 대상이다. 캐나다는 석면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전세계에 석면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로서 전세계 노동자건강권 운동세력의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캐나다 석면 자본은 공동대응 체계를 구성하여 대응력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노동자들은 석면의 사용금지, 수출과 수입의 금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자본 역시 석면을 더 많이 수출하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 결국, 피해는 노동운동이 취약하며 국가의 경제수준이 낮고 법이 정비되지 않은 저개발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3. 노말헥산 중독,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
타이 출신 여성노동자들이 노말헥산에 중독된 사건이 지난 2005년 1월에 발생하였다. 회사는 불법체류자 신문인 여성 이주노동자들에게 밀폐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하루 종일 유기용제를 취급하는 작업을 시켰다. 유기용제 증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마신 결과, 이들은 유기용제 중독으로 인한 앉은뱅이 병에 걸려야했다.
“이들은 입국 다음날부터 밀폐된 검사실에서 유독물질인 노말헥산으로 LCD완제품의 불순물을 닦는 일을 했다. 보호복, 마스크 등 안전장구는 없었고 노말헥산의 유독성에 대한 어떠한 주의사항도 듣지 못했다. 오전 7시 일어나 허겁지겁 밥을 먹고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평일은 물론 토ㆍ일요일에도 새벽 2시까지 야근하기 일쑤였다. 작업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의자는 모두 없어졌고 기계처럼 서서 일하도록 강요당했다. 이들은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했지만 공장 측은 “괜찮아. 그냥 해”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매월 100만원 안팎의 급여를 본국 가족에게 송금하는 기쁨으로 고통을 참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다리가 아프고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문제는 이들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었다.
“타이 출신 여성노동자들이 노말헥산에 중독된 사건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현행 외국인력정책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이들의 신분에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은 물론 건강권과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처지로 내몰려 있는 것이다.”
“태국 여성근로자의 노말헥산 중독 사건을 수사 중인 화성경찰서와 수원지방노동사무소는 17일 ㄷ업체 공장장 이모씨(47)와 직원 엄모씨(35) 등 2명을 업무상과실치상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또 잠적한 ㄷ업체 대표 송모씨(53)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송씨의 신병이 확보되는대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노말헥산 같은 유해물질을 다루는 업체임에도 태국 여성노동자들에게 마스크나 안전복 등 안전장구를 착용시키지 않고 일을 시키는 한편 작업장에 배기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혐의다. 경찰조사결과 ㄷ업체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야외에서 전자부품을 노말헥산으로 세척하는 작업을 하다 지난해부터 실내로 작업장을 옮겼으나 배기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주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안좋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드러나기도 하였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사업장의 산업안전실태는 국내 제조업사어장에 비하여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인 안전수칙인 경고표지 및 안전표지 부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물질안전보건자료 및 및 활용도, 개인보호구 지급 및 착용, 작업복 지급, 작업통로 확보, 작업장 정리정돈 상태 등이 국내 제조업 사업장에 비하여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5인 이상 50인 미만의 국내 제조업 사업장보다도 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요소로는 협착과 절단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는 화상, 감전, 전도의 순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유사한 질병이 과거에도 있었으며, 그것도 똑같은 LCD제품을 유기용제로 닦는 작업에서 발생되었다는 점이다. LCD 제품들은 대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이러한 작업들이 아웃소싱되어 주변의 영세사업장으로 이전된 후, 부실한 관리에 의해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타이 노동자들의 앉은뱅이 병 발생은, 유해작업의 외주화로 대기업에서 영세사업장으로 위험을 전가시킨 것과 함께, 인건비 절약을 위하여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비인간적 작업조건에서 노동하도록 요구하면서 위험이 증폭된 것에 의한 복합적 결과였다.
4. 위험을 전가하지 말라
유해한 물질은 너무나도 많다. 아래 연구에서는 한 지역 공단에서 여성들에게 위험을 일으키는 물질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생식기계(reproductive) 위해효과를 초래하는 물질로는 망간(유산의 위험성), 납(사산, 유산), 스티렌(자연유산), 염화비닐(자연유산, 성교 능력의 이상), 크실렌(월경장애), 트리클로로에틸렌(월경불순), 퍼클로로에틸렌(자연유산, 임신 지연, 호르몬의 장애, 불임) 등이 알려져 있다. 발암물질로 하남공단에서 여성근로자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는 니켈(폐암, 비강암), 알루미늄(폐암, 방광암), 카드뮴(폐암, 전립선암), 크롬(폐암, 기관지암), 염화비닐(간의 혈관육종), 퍼클로로에틸렌(비뇨기계 암), 포름알데히드(폐암, 비강암), 벤젠(백혈병, 다발성 골수종, 림프종)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기형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물질들로는 납(태아에 손상), 스티렌(중추신경계 기형), 염화비닐(선천성 기형아 출산률 증가: 중추신경계, 소화기계, 생식기계, 근골격계), 톨루엔(소두증, 중추신경계 기능저하,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성장지연, 두개안면과 사지의 이상, 다양한 성장 결핍)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유해물질들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화학물질을 관리하고 환기시설을 만드는데 쓰는 돈이 아까워서, 유해물질을 많이 쓰는 작업은 제3세계로, 영세사업장으로, 비정규직으로,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로 이전되는 것이 현실이다. 1980년대 온산병이라는 환경질환을 일으켰던 온산공단에서는, 폐수처리장을 세우고 운영하는 비용보다 주민들에게 돈을 찔러주면서 민원을 무마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들었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지 않다가 결국 집단적 환경병이 발생한 사례도 있다. 자본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하기 때문에 환경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앞에서 세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위험을 알면서 도입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를 희생하겠다는 국가와 자본의 음모를 확인하였다. 또한 대기업으로부터 영세기업으로 위험이 전가되고, 한국인으로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이 이전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문제의 본질은 위험을 전가하고,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도덕적이지 못한 국가권력이 국민을 팔아 소수 자본을 살찌우려할 때, 민중적 저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아시아지역에서는 석면네트워크가 조직되기 시작하였으며, 세계의 양심적 세력들이 연대투쟁을 통해 아시아를 석면으로부터 구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원진레이온의 폐업조치와 중국이전이라는 말도 안되는 경험이 우리나라에도 있는 만큼, 한국의 노동자건강권 운동 진영 역시 아시아 석면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국제 목공노조 등 노동조합들 역시 연대를 통해 캐나다와 같은 석면 수출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각 국가별로 석면금지법을 만들도록 투쟁하고 있다. 국제적 연대를 통해 국가간 위험의 이전을 막아내는 노력이 가동되고 있으며,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으로부터 영세기업으로, 정규직으로부터 비정규직으로, 한국인으로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로 위험이 전가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저항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 약한 존재에게 위험이 이전되는 이유는, 그들이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계약상의 불이익 때문에,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는 체념 때문에 저항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직적 저항이 어려운 미조직 노동자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세계 노동조합들은 “모든 노동자의 건강을 위하여, 조직하라”는 슬로건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만이 노동자를 유해물질로부터 보호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되는 일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해한 작업이 약한 노동자들에게 이전되는 것을 찾아내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에서는 “좋은 일자리는 안전한 일자리”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안좋은 일자리를 없애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실업을 낳으며, 일자리 창출을 최고 선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자본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위험하고 좋지 않은 일자리를 양산하여 더 많은 이윤을 거둬들이려고 한다. 따라서, 불안전고용과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은 나쁜 일자리를 몰아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운동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유해물질로부터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보호되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본에게 맞서 이렇게 요구해야 한다. 위험을 떠넘기지 마라.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