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21:00
쿠보타 쇼크와 일본의 대응
일본의 대표적인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쿠보타(Kubota)회사는 2005년 6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퇴직자를 포함한 현직 근무자에게 석면관련 질환이 발생하였다고 밝혔다. 이른바 일본의 쿠보타 쇼크의 시작을 알리는 보도였다. 쿠보타 회사의 발표에 의하면 1978년부터 2004년까지 석면질환에 의하여 사망한 노동자는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 위치한 칸자키 공장의 근무자 75명과 하청업체로 근무했던 4명으로 총 79명이었다. 또한 1954년부터 1978년까지 칸자키 공장에서 석면을 이용한 하수 배관 생산에 적어도 1년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552명에 이르며, 퇴직 후 석면 관련 질환으로 요양 중인 환자도 18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열도에 석면 공포를 안겨주어 일명 쿠보타 쇼크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단지 석면을 직접 취급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칸자키 공장 주변에 살아온 주민들에게도 직업적인 노출이 없었는데도 석면관련 질환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쿠보타 쇼크 이후 일본은 직업적으로 석면 노출이 없는 일반인 중 중피종과 폐암 등 석면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석면에의한건강피해구제에관한법률’을 제정하고 2006년에 약 93억 엔의 예산을 편성하였다. 또한 정부 각 부처별 협의를 통해 2006년에는 0.1% 이상 석면이 함유된 모든 용도의 석면함유물질의 제조, 수입, 양도, 제공 및 사용을 전면 금지(조인트 시트, 가스켓, 단열재 등 일부 품목 제외)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비정부 사회단체들도 ‘석면대책 전국연락회의’와 ‘중피종․석면질환․환자 유가족협회’ 등을 조직하여 대국민 석면 관련 피해 상담 및 홍보, 아시아의 인도, 중국, 베트남 등 석면을 다량 소비하는 국가에 연대 활동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005년 정부차원의 석면 대책 논의 시작
우리나라는 1997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29조(대통령령 15598호)에 제조 등의 금지 유해물질로 청석면과 갈석면을 추가 지정한 후, 2003년(대통령령 18043호)에는 악티노라이트, 안소필라이트, 트레모라이트를 금지물질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국내 석면 사용량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석면은 1990년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30조 허가대상 유해물질로 지정하여 사용을 허가해 오고 있었다.
이후 2003년에 백석면에 대한 작업환경 노출기준을 2개/cc에서 0.1개/cc로 강화하였고, 석면 함유 건축물의 해체, 제거 작업을 허가대상 작업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재건축 과정에서 불법 무단 철거 등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일본의 쿠보타 쇼크 등이 알려지며 국내에서도 2005년 10월 노동부에서 ‘석면대책 T/F'를 구성하면서 정부차원의 석면대책 논의가 시작되었다.
< 석면으로 인한 건강장해예방 관련규정 >
◦ 석면 노출 작업장 작업환경측정 실시(산안법 제42조)
◦ 석면 취급근로자 특수건강진단을 실시(산안법 제43조)
◦ 석면의 제조․사용 또는 해체․제거하는 작업 도급금지(산안법 제28조)
◦ 청석면과 갈석면등은 제조․수입․사용 금지(산안법 제37조)
◦ 백석면 등 기타석면을 제조․사용 또는 해체․제거시 지방노동관서에 사전 허가(산안법 제38조)
◦ 석면 취급업무에 3년 이상 근무한 이직․재직 근로자에 대해 건강관리수첩 발급, 퇴직후 매년 무료 건강진단 실시(산안법 제44조)
◦ 석면 제조․사용작업 및 해체․제거작업의 조치 기준(보건규칙 제227조내지제241조)
2006년, 국내 석면 사용 실태 조사 확대
2006년 1월 노동부 석면대책 T/F 논의 결과를 토대로 1)석면 제조, 수입에 대한 금지 확대, 2) 석면노출 근로자 보호 및 정보제공 확대, 3) 석면관련 인프라 구축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이 발표되었고, 이와 관련한 석면 사용의 조기 금지화와 국내 사용실태, 건강관리 수첩제도 개선, 석면 해체 및 관리 기준 선정 등을 위한 정부 연구용역이 수행되었다.
용역 수행 결과 국내 사업장 건축물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한 결과 조사 대상 사업장의 90%에서 적어도 한 건 이상의 석면 함유 자재가 확인되었고, 국내 사용된 석면의 90% 이상이 건축자재로 이용되었으며, 석면 제품 중 석면 슬레이트, 석면 천장재, 밤 라이트 등의 건축재와 석면 브레이크 라이닝 등은 조기 금지가 가능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환경부에서도 공공건물의 석면사용 실태 조사 용역을 실시하게 된다.
한편 서울메트로 노동조합에서는 2006년 7월, 일반 승무원 1명과 역무원 3명이 폐암을 앓고 있으며, 역사내 석면 의심물질 확인과 냉방화 공사에 철저한 대책 등을 공사 측에 문제제기하였고, 이후 공사 측과 노동조합 사이에 공기 중 석면 노출 여부에 대한 진위 공방이 이어지게 된다. 2006년 12월 서울메트로 노사 합동으로 역사에 대한 석면의심 물질 조사 결과 17개 역사의 천장 뿜칠 부분에서 석면이 1% 이상 함유된 것이 밝혀지게 되었고, 지하철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건강문제까지도 확대되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07년, 석면 관리의 원년 선포
2007년 1월 23일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는 서울메트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안전하고 쾌적한 지하철 만들기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구성하고 서울메트로의 석면관리에 재차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메트로와 노동부, 환경부, 추진위가 합동으로 ‘지하철 석면관리 T/F'를 구성하고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서울메트로의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심된 회의 주제는 전체 역사의 석면 지도를 작성하는 것과, 이미 확인된 승강장 뿜칠 부분에 석면이 함유된 자재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으며, 향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될 문제로 보인다.
2007년 6월에는 1985년 7월 서울메트로(옛 서울지하철공사)에 입사해 역무원으로 재직하며 역사 지하에서 승차권 판매와 부정승차 단속, 선로 상태 확인 등의 일을 해오다, 2001년 3월 폐암 진단을 받고 2년 뒤 숨진 역무원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윤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로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석면 관련 직업성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7년 7월 3일, 환경부, 노동부, 교육부, 국방부, 건교부 5개 부처는 합동으로 ‘석면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한 후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한 뒤 2007년을 ‘석면 안전관리 원년으로 선언’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종합대책은 2006년부터 약 1년간 석면 관련 5개 부처 간에 논의된 결과 작성된 최초의 대책 안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정부합동 ‘석면관리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 |
① 수입․생산에서 폐기까지 석면의 전과정 안전관리 ② 제도개선 및 인프라 확립 ③ 석면 환경규제기준 마련 및 건강피해 조사․관리 |
이후 남겨진 과제
대구지법 민사 52단독 김세종 판사는 2007년 12월 4일, 1976년부터 2년 여간 부산의 석면 방직 공장에 근무하다 석면에 노출돼 악성 중피종으로 숨진 원모 씨의 유가족들이 2005년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회사는 1억 3천3백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회사는 석면관련 전문회사로서 석면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근로자들에게 석면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보호복과 보호마스크, 장갑 등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고, 석면먼지나 가루가 완전히 환기될 수 있는 환기시설도 설치하지 않았으며,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등 종업원의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일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석면피해자에 대해 관련회사의 안전의무 소홀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명한 최초의 판결로, 석면피해와 관련된 대규모 소송의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석면의 대책은 크게 과거, 현재, 미래의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과거 영역은 정부에서 각종 제도와 법에서 권장하기까지 했던 석면이 이미 국내에 너무나도 많은 영역에 사용되었고, 과거 석면에 대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채 사용함으로 인해 이미 노출되어 질병 발생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직업인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법 외에 일반 환경노출로 인한 피해자들의 차별없는 구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석면 피해 사례가 많지 않으나 1990년대까지 석면을 많이 사용해왔기 때문에 향후에는 피해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석면 피해 구제와 치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둘째, 현재부터라도 석면사용을 조기에 금지시키고 이미 사용된 석면을 어떻게 관리하고 단계적으로 안전하게 제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남아있다. 이는 단지 석면 해체를 신고하고, 전문 업체가 정확히 해체하는 제도를 법제화 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국민이 성숙된 의식과 자세로 석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법을 준수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국민 홍보자료 배포와 교육이 중요하며, 특히 초등학교를 비롯한 학교에서의 교육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미래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석면 문제는 이미 사용된 석면이 완전히 제거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현재 국내에서 관심이 증가된 석면 문제가 단기적으로만 지속되지 않고 책임있게 꾸준히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석면 대체품에 대한 안전성 검토와 안전한 사용을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2005년부터 정부 및 민간 사회단체 등에서 석면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대책논의를 통해 2007년에는 정부 합동 종합대책까지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석면 문제는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보아야 하며 소수가 아닌 국민 다수가 석면을 정확히 이해할 때만이 실질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