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기준, 무엇을 허용하고 있는가?

2012.03.0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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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글을 시작함에 앞서 우선 ‘허용기준’이라는 용어에 대한 약속부터 하도록 한다. 허용기준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다분히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용어이다. 허용기준 제정과 활용도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미국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merican Conference of Governmental Industrial Hygienists, ACGIH)에서는 허용기준(TLV)에 대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매일 반복적으로 노출되어도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공기 중 농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산업보건 관점에서 볼 때, 허용할 만한 기준은 있는 것인가? 혹은 허용해야만 하는 기준이 필요한 것인가? 라는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허용기준을 제정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전자에 해당되겠지만 필자는 허용기준이 현장에서 활용되는 측면에서 볼 때 후자 의미로서 허용기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허용해야만 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기준을 설정할 것이며, 허용의 합의는 어떤 기제를 통해서 이루어 낼 것인가? 그리고, 설정된 기준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될 것인가?
이상의 질문에 대한 고민과 해결은 ‘허용기준 설정’ 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럼 먼저 우리나라 허용기준 설정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허용기준 설정에 대한 문제점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우리나라 허용기준 설정 변천과정

 

우리나라 허용기준 설정의 변천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우리나라 허용기준 관계법규는 최초 1953년 공포된 근로기준법 “안전과 보건” 규정에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후 1983년 노동부 고시로서 발표된 후 3 회 개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허용기준 설정 배경을 살펴보면 1983년 작업환경 측정방법 제정시 설정된 총 50 종의 유해인자 허용기준은 ACGIH TLV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분진 경우만 일본의 관리농도로 받아들였다. 1986년에는 작업환경측정방법과 유해물질 허용기준에 관한 규정을 분리하여 확대 적용하였고, 1991년에는 미국 OSHA PEL 기준을 도입하여 일부 허용기준을 변경하거나 재개정하였다.
1997년에는 유해물질 허용농도를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 노출기준으로 용어를 바꾸었고 LG전자 양산공장의 세정액 또는 침지액으로 사용되는 2-bromopropane이 실험결과 생식독성 물질로 밝혀짐에 따라 이를 추가하여 총 698종의 화학물질에 노출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상의 우리나라 허용기준 설정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최초 허용기준을 설정할 당시부터 과연 허용기준이란 것은 무엇인가라는 원천적인 고민이 부족하였으며, 외국 것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 오는데 급급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적으로 3회의 개정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연도

(제, 개정)

고 시

규정물질수

비 고

1983.

1.20.

(제정)

제1호

총50종

1983년 “작업환경측정방법” 제정 당시 동 고시내에 유기용제 16종, 특정 화학물질 31종 및 소음, 분진, 납에 대한 허용농도 제정

1986. 12.22.

(제정)

제86-45호

총324종

“작업환경측정방법” 중 “유해물질의 허용농도”를 분리하여 별도 고시, 허용농도 고시 물질 수 추가

1988.

12.23.

(1차 개정)

제88-69호

총697종

유기용제, 중금속으로 인한 직업병이 사회문제화 된 것을 계기로 유해물질 373종을 추가로 규정

1991.

3.30.

(2차 개정)

제91-21호

총697종

일부 화학물질에 대한 허용농도 변경, 오자 및 누락사항 추가

1998.

1.5.

(3차 개정)

제97-65호

총698종

LG 전자 양산공장 2-bromopropane의 생식독성 발견으로 2-bromopropane 항목 추가

 

 

개정 원칙이 있었다기보다 원진레이온 사건이나 LG전자 양산공장의 직업병 발생과 같은 다분히 사회적인 사건에 의한 돌발적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내용도 허용기준 대상 물질의 양적 확대를 통한 형식적 보완으로 그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허용기준을 설정한 유일한 물질인 2-bromopropane 예에서도, 허용기준 설정 후 이미 그 물질은 사용금지되어 더 이상 허용기준 설정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3. 허용기준 설정은 필요한 것인가 ?

 

과연 우리나라에서 허용기준 설정은 필요한 것인가?  필자는 허용기준과 관련되어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있었다. 한 제지공장의 작업환경 측정결과 먼지가 허용기준을 크게 초과한 공정이 있었다. 결과 보고서 제출 후, 사업주로부터 재측정 요구를 받았고 재측정 후 허용기준 미만으로 나타났다. 그 작업 공정에서는 기계 불량으로 초지를 제거 하면서 매우 많은 먼지가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공정이었으며, 기계 불량은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자주 발생 하였다. 또한 처음 측정시 초지를 제거하고 바닥을 청소하면서 먼지 발생량이 매우 많았었다.

이후 재측정시는 바닥 청소를 하지 않았고 기계 불량률도 낮았다. 실제로 먼지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어떠한 공학적 대책이나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세우지는 않았었다. 필자는 재측정 후, 또 다시 다음 작업환경 측정이 있을 때까지 이 공정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매우 높은 먼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작업환경측정결과 허용기준 미만이라는 결과는 관리자로 하여금 다음 작업환경측정이 있을 때까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어쩌면 현재 우리나라 허용기준은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판단하는 수단으로서 이용되면서 궁극적인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협하는 역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허용기준 설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예방수단이라는 점에서 허용기준 설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절대적인 예방수단이 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과학적 수준과 사회․경제적인 수준 하에서 합의된 변화 가능한 예방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예방수단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그 설정 방법과 과정이 단순한 하나의 수치를 정하고 그 이하로 작업장 노출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허용기준은 설정된 수치가 중요하기보다 그 설정 배경과 근거가 중요하다. 따라서 해당 물질에 대한 체계적인 위해도 평가(risk assessment)를 통해서 설정되어야 한다. 최소한 선진국 기준을 이용할 때라도 선진국에서 설정된 근거가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는 필요한 것이다.

 

또한 허용기준이 하나의 법적 제도로서 사업주로 하여금 작업환경을 관리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데는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으로 사업주가 허용기준 미만으로 작업장을 관리하도록 할 수는 있으나, 그 관리 의미는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관리라기보다 법적 기준을 맞추기 위한 그릇된 방식의 관리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용기준 설정은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한 것이며, 진정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설정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4. 우리나라에서 허용기준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우선 허용기준이 진정 허용할 만한 기준인지에 대한 합의 구도를 가져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 허용기준 설정은 정부당국의 결정 속에 현장 사업주와 노동자는 보고 이용할 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제가 없어왔다. 즉, 말이 허용기준이지 실제로 산업안전보건의 직접적인 관계자인 사업주와 노동자는 어떠한 합의를 한 적이 없는 것이다. 영국은 허용기준 설정을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 당사자인 기업, 노동자, 정부 3자의 참여를 통한 협상구도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 ACGIH-TLV의 경우 제․개정시 2년의 개정공고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허용기준 설정시 산업보건 당사자인 기업주와 노동자들의 참여 구도를 갖춰야 한다.

 

허용기준 설정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유해물질이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허용기준이 기준을 위해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용기준 설정은 우리나라 사업장의 위해도 평가와 함께 고민되어져야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허용기준의 90 % 이상이 ACGIH TLV 임을 고려 할 때, 과연 ACGIH-TLV를 어떻게 우리나라 실정에 적용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하나의 과제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유해물질이 무엇이며 중점 관리대상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여 각 대상 물질에 대한 연구팀을 꾸려 장,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위해도 평가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5년 7월, 노동부에서는 현재 노동부 고시로 정해져있는 국내 노출기준과 미국 ACGIH-TLV 기준과의 차이가 큰 물질 84종을 대상으로 약 25억의 연구비를 투자하여 허용기준 개정을 위한 타당성 검토 및 산업보건편람 작성 용역을 발주하였다. 여기에는 국내 산업보건 관련 연구진들이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 노출기준 설정과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이며 허용기준이 없는 물질에 대한 확대가 아닌 기존 물질 기준 개정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도 사업주와 노동자의 참여는 매우 작거나 초기부터 배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최소 1~2년의 장기적인 검토와 공청회 등을 통해 기준 제정을 시행하는 선진국의 기준설정 과정을 고려할 때 금번 프로젝트 기간은 단 6개월(2005년 12월까지)에 불과하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현재 노동부에서는 8월 말에 프로젝트 진행상황에 대한 중간발표회를 갖고, 12월에 최종 결과 공개 설명회를 가질 계획에 있다. 허용기준은 단지 정해진 숫자가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왜 정해졌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올바르게 적용될 수 있다.

 

허용기준 설정과 관련하여 제도적 시스템이 부족한 국내 상황에서 올해 추진하고 있는 노동부의 노출기준 개정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일회적인 행사로 끝날 것인가, 향후 국내 허용기준 설정과 관리를 좀 더 체계적이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적 틀로 바꾸어 낼 것인가의 문제는 학계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사업주와 현장 노동자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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