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23:59
이상윤/ 연구공동체<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원·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최근 병원에서 야간 당직 근무를 하던 간호사를 그에게 연정을 품은 퇴원 환자가 살해했다면, 그 간호사는 ‘업무상 재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살인이라는 형사사건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다른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병원 폭력’ 문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작업장의 폭력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작업장 폭력은 해당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폭력을 당한 개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2002년 보고서를 보면 이런 작업장 폭력 가운데 25% 가량이 병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병원 노동자의 40~50%가 일하면서 폭력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03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원진 노동안전보건 교육센터가 함께 한국의 병원 노동자 7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조롱이나 욕설, 폭력 등을 겪은 노동자의 비율이 39.5%에 이르렀다.
병원 폭력은 각 나라의 문화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적 요인으로는 직무 스트레스, 진료 대기 시간, 안전 요원 및 시설 존재 여부, 교대제, 이직률 등이 꼽힌다. 지역사회 요인으로는 범죄율, 빈곤 수준, 인구 밀도, 주거 문제, 사회경제적 수준 등이 관련돼 있다. 큰 관점에서 보면 경제 수준, 폭력에 대한 사회적 용인 정도, 노동의 다양성 증가 등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병원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환자나 보호자의 폭력도 있지만, 동료나 상사, 다른 직종에 의한 폭력도 적지 않다. 의사가 간호사에게 가하는 폭력과 희롱,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에게 가하는 폭력 등도 근절돼야 할 병원 폭력이다. 이런 폭력은 병원 노동자의 삶의 질과 건강도 위협하지만,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주므로 적지 않은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 폭력의 심각성에 사회적 관심을 쏟는 것과 더불어 병원 경영자의 관심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병원 폭력 실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이런 자료가 있어야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구조적 해결책으로는 충분한 병원 인력 확보, 민주적 의사 소통, 직무 스트레스 해결 등이 중요하다. 구체적 해결책으로는 폭력 상황이 발생할 조건을 미리 방지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진료 예약제 실시, 진료 대기 시간 최소화 등이 그런 조치다.
병원 환경 개선도 필수적이다. 안전요원 배치, 열린 공간 설계, 병원 노동자 공간에 대한 안전 설비 확충 등이 그것이다. 아픈 이들이 치료받는 공간에서 전근대적인 폭력이 나타나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