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2012.03.04 16:29

조회 수:5816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매일노동뉴스 노동안전보건섹션에 매주 전문가 칼럼을 제공합니다. 본 칼럼은 2010년 4월 5일(월)에 게재된 것입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상업용으로 쓸 때는 반드시 사전협의를 거치셔야 합니다. 사진은 일과건강에서 덧붙였습니다.



쓰레기라는 말이 없는 종족이 있다고 한다.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고쳐 쓰고 아껴 쓰면 쓸모란 또 생겨나게 마련이다. 우리도 과거에 양말을 기워 신고, 부러진 학용품이나 장난감은 본드로 붙여 사용했다. 튼튼한 포장박스가 있으면 물건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무언가 못쓰게 돼 버릴라치면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해진 양말은 그냥 버리며, 웬만한 제품은 모두 번지르르하게 플라스틱과 종이 포장이 돼 있다. 포장은 쓸모가 없으니 쓰레기통으로 곧장 들어간다. 재활용쓰레기 내놓는 날에는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쓰레기를 없애는 방법은 매각이나 소각이 있다. 하지만 매립지는 한정돼 있고, 소각은 대기오염을 발생시킨다. 게다가 플라스틱이나 종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원은 무제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모든 자원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원의 무분별한 채굴과 가공·폐기 과정이야말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그래서 '자원순환'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쓰레기를 매립이나 소각하지 말고 다시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생종이는 나무를 덜 베도록 할 것이며, 음료수 캔의 재활용은 금속의 채굴을 덜 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쓰레기를 줄여 나가는 정책과 함께, 재사용·재활용을 늘려 나가는 것은 시대적인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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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homepage.mac.com 갈무리





그런데 자원순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거리에서, 상점이나 회사에서 생산된 다양한 쓰레기를 모아 분류하기 위해서는 환경미화원의 손길을 거칠 수밖에 없다.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를 자원으로 바꾸는 핵심적인 연결고리인 것이다. 그러나 환경미화원은 이러한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던 쓰레기수거·분류업무를 민간위탁한다며 환경미화원들을 비정규직화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환경미화원들은 고용이 불안해지고 저임금에 열악한 작업조건 속에 놓이게 됐다.


환경미화원은 전 세계적으로 위험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환경미화원의 산재사망률은 일반 직업의 10배에 해당하며, 소방관이나 경찰관보다 많이 죽는다고 한다. 근골격계질환도 많다. 쓰레기 미생물로부터 호흡기 질환·안구질환·감염성질환 등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기관지천식이나 기관지염를 앓는 환경미화원들이 적지 않다. 자원고갈과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대안으로서 자원순환 업무를 수행하는 환경미화원에게 교통사고나 근골격계질환·감염질환은 예상되는 위험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환경미화원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사례로 덴마크를 꼽을 수 있다. 덴마크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쓰레기 재활용 강화정책을 취했다. 이때 쓰레기를 수거·분류할 환경미화원의 인력충원을 필요로 하게 됐고, 환경부와 노동부가 손을 잡고 대책을 마련했다. 환경미화원 인력과 업무가 늘어나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쓰레기를 분류하는 선별장에 환기장치가 강화돼야 한다거나, 더러워진 작업복과 깨끗한 일상복을 나눠 보관하는 사물함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거나, 파상풍 등 예방주사를 적극 놓는 등의 정책이 개발됐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 특히 환경미화원들이 씻지도 못하고 집에 가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오염된 작업복은 집에 가져가지 않고 세탁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복과 일상복을 따로 걸어놓을 수 있는 사물함 설치는 필수적이다. 민간위탁회사에서 이것을 해 줄 리 만무하다. 능력도 없다. 결국 지자체가 지역의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환경미화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민간위탁회사에 맡겼으니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지자체의 태도를 심판할 수 있는 지역운동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이달부터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캠페인을 시작한다. 민주노총 환경미화원들만의 캠페인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운동이 될 수 있도록 진보정당들과 지역사회단체의 적극적 연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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