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칼럼)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하는 원고입니다. 매일노동뉴스는 매주 수요일 노동안전·보건섹션을 선보입니다. 이 섹션 중 전문가 칼럼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각 분야 전문가의 칼럼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2009년 9월 2일자에 실린 것 입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필자는 여러 가지 일로 노조와 자주 만난다. 노조의 안전보건 활동가들은 내게 이런 질문을 참 많이 한다. “내가 일하는 사업장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진단하는 방법은 무엇이 좋을까요? 노동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재해발생 통계 보기이다.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공상까지 숨기지 않고 집계된다면, 이 자료는 매우 좋은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재해건수가 많은데도 산재가 줄지 않고 늘고 있다면 이 사업장은 아주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꾸준히 재해건수가 줄고 있다면, 사업장이 노력하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재해기록을 작성하여 유지해야 하므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를 통하여 자료를 받아서 분석해보면 될 일이다.


한편, 작업환경측정이나 건강검진 결과도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자료들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 직업병 중에서 특수검진을 통해서 발견되는 직업병은 그 숫자도 별로 안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측정결과가 기준미만이라고 되었거나 검진에서 아무런 유소견자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사업장이 안전하구나.”라는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참 속상한 일이다.


사업장 안전보건을 진단하는 방법


설문지나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는 방법도 많이 사용된다. 사고 경험이나 사고가 날 뻔한 경험, 일하면서 느끼는 위험의 종류와 심각성, 몸의 증상과 힘든 점 등을 노동자 설문을 통해 조사하는 것은 꽤 유용한 방법이다. 사업장의 전체 문제도 파악되고, 부서별 구체적인 문제까지 찾아낼 수 있어 안전보건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체크리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을 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안전보건조치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것도 사업장의 문제를 찾아내고, 안전수준을 진단하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다만, 설문조사나 안전점검은 한 번 하고 끝내기 보다는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과거에 발견된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남아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문지나 체크리스트를 구하기 어렵다면, 노동환경건강연구소로 연락주면 된다. 업종에 따라 원하는 내용을 함께 만들 수 있다. 물론, 분석도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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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장 점검하는 노동자. 이 사진은 2008년 금속노조 100인이하 사업장 노안활동가 양성 프로그램 과정 중 현장을 점검하는 노동자들 모습이다. ⓒ 교육센터




그런데, 필자는 이런 방법들보다 더 좋은 방법을 한 가지 알고 있다. 현장을 한 바퀴 돌면서도, 설문지로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저 노동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이 방법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이 앞으로 좋아질 것인지 아닌지를 예측하는 데 정말로 귀신같은 신통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안전보건 관련해서 참 좋은 말씀이구나’라고 기억나는 것이 있거든 얘기해주세요. 사장님이 직접 얘기한 것도 좋고, 사보를 통해서 글로 읽은 것도 좋고, 뭐든지 좋습니다.” 아주 큰 회사라면 공장장도 좋고, 부서에서는 부서장도 좋다. 회사 관리자들이 한 말 중에서 우리를 위해서 참 좋은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한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노동안전보건은 사업주 관심에서 시작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기업에서 노동자들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럴 때면, 노동자들은 씨익 웃으면서도 허탈한 속내를 차마 감추지 못한다.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휴게실마다 안전보건경영목표라는 것이 붙어 있는 대기업에서조차 노동자들은 사장에게서 들은 얘기가 없다고 말한다. 최고경영자부터 안전보건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중간관리자나 현장관리자가 안전보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안전보건에 대한 의지표명을 영어로는 커미트먼트(commitment)라고 한다. 이 커미트먼트라는 것이 없으면, 예산도 조직도 시간도 제대로 할당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안전과 보건은 뒤로 미뤄놓게 된다. 이런 기업은 사고나 질병이 날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위험한 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에게 제안한다. 현장을 순회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여쭤보라. 사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조합원들이 기억하는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없다면, 다음 번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 때에는 한마디 해도 좋지 않겠는가. “우리 기업 수준이 요 모양 요 꼴인 것은 사장님 책임입니다.”하면서 말이다.


참. 노조도 긴장해주기 바란다. 요새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물어보고 있으니까.


“노조 위원장께서 하신 말씀 중 안전보건 관련해서 기억나는 얘기가 있으면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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