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 ‘강태선의 살림살이’에서 퍼왔습니다. 글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기사 게재에 흔쾌히 동의하신 강태선 블로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퍼온 주소는 http://blog.ohmynews.com/hum21이며 실제 기사 작성일은 2009년 12월 2일 입니다.




지난주 관로를 땅에 묻는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토사에 매몰되어 사망하는 재해가 두 건이나 발생했다. 하나는 11월 23일(월) 오후 2시경 전북 완주 봉동에서 또 하나는 11월 29일(일) 오후 2시경 경기 연천군 연천읍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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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로 매설 중 토사붕괴에 의한 사망재해 그림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토사에 덮혀 사망한 두 노동자


“23일 오후 2시40분께 전북 완주군 봉동읍 구미리 봉동-삼례간 하수관 매설공사 현장에서 흙이 무너져 내려 인부 정모(51)씨가 흙더미에 깔려 숨지고 이모(55)씨가 부상했다. 이들은 깊이 2m, 폭 1.5m가량의 구덩이 형태의 바닥에서 하수관을 매설한 뒤 마무리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한쪽 흙벽이 무너져 변을 당했다. 경찰은 공사 관계자와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29일 오후 1시45분께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육군 모 부대에서 오수관 매설 작업을 하던 인부 강모(50) 씨가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 등 6명은 이날 군부대 오수관 매설을 위해 굴착기 1대를 동원해 깊이 2.3m, 폭 1.5m 구덩이를 파던 중이었으며 갑자기 한쪽 흙벽이 무너지면서 구덩이 안에 있던 강씨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공사 관계자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와 안전규정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이라 한창 올해 마무리할 공사들이 전국 곳곳에서 바삐 진행 중일 것이다. 이 중에는 하수관, 오수관 등 관로 매설공사가 많다. 관로 매설공사는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폭에 깊이는 거의 3m까지 파고 들어가 PVC배관 또는 콘크리트 흄관을 묻고 연결하는 작업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관로 매설작업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백호우(일명 포클레인)와 배관 파이프가 있고 파낸 흙을 모아 놓은 광경을 생각하면 된다.


머릿속에만 있는 매몰사고의 위험성


광경은 익숙하되 그 흙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현장의 흙은 토질에 따라 다르지만 함수*를 감안하면 통상 1.7~2.7 사이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1세제곱미터(㎥)당 1.7톤~2.7톤의 무게를 가진다. 이쯤이면 2m 내외의 관로를 묻다가 왜 사람이 죽는 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작업에는 사망재해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골절을 비롯하여 많은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건설업에서 붕괴·도괴로 발생한 2007년 산업재해는 319명이었고 이 중 45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의 태반이 흙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함수 : 흙은 건조·보통·포수(수분 함유 정도) 등의 상태에 따라 무게를 측정하는 함수율이 다르다.


왜 같은 재해가 반복될까? 현장 사업주와 노동자가 위험을 모르는 것일까? 관로매설업을 하는 사업주들은 이 일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매몰사고의 위험은 잘 안다. 문제는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고 대책에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자꾸 야마가 나길래 <중략> 얼른 하고 끝내려고 서두르던 참이었어요.”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현장에서 ‘야마 난다’고 표현한다. 어느 재해현장의 관계자 말이다. 모든 재해는 징조를 보인다. 구체적인 징조까지 보이는데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바로 돈 때문이다. 사업주는 작업을 빨리 해야 하고 노동자도 새벽부터 서둘러 나온 일당벌이 일터에서 한나절만 일하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험을 알면 일을 접는 것이 아니라 더 재촉하게 된다. 결국 더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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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동자가 관로 매설공사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진행하다가 흙이 무너져 내리면 그대로 매몰된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사업주는 위험은 잘 알지만 우리현장에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는다. 위험 인식이 깊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도는 사람들이다 보니 사업주 보다 훨씬 그 위험을 모른다. 그런데 위험을 잘 아는 사업주마저도 대책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기준에관한규칙에는 다음 같은 규정이 있다. 


제383조 (지반등의 굴착시 위험방지 <개정 1994.3.29>) ①사업주는 지반 등을 굴착하는 때에는 굴착면의 기울기를 별표 6의 기준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다만, 흙막이 등 기울기면의 붕괴방지를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별표 6. 굴착면의 기울기 기준(제383조 제1항 관련, 개정 2003. 8. 18)

구분

지반의 종류

기울기

보통흙

습지

1:1~1:1.5

건지

1:0.5~1:1

암반

풍화암

1:0.8

연암

1:0.5

경암

1:0.3




요컨대, 굴착면의 기울기를 충분히 두고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흙막이를 하라는 것이다. 관로 매설공사는 좁은 도로에서 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공간이 필요한 굴착면 기울기 조성은 거의 불가능하다. 흙막이를 해야 하는데 짧은 시간 굴착했다가 되묻는 일이므로 조립식 흙막이(일명 SK판넬)을 쓸 수 있다. 조립식 흙막이를 하면 작업이 더뎌진다. 돈은 한참 더 든다. 대책에 필요한 돈이 적지 않은데 비해 공사 발주시 이에 상응하는 비용은 공사내역에 반영되지 않는다.


건설과정의 안전도 품질로 취급하자


꼭 필요한 안전가시설물임에도 표준시방서에 없다. 우리나라 건축공사 시방서는 오로지 결과물의 품질만을 볼 뿐 과정상의 안전 같은 것은 품질로 취급하지 않는다. 과정은 그저 빠르면 장땡이다. 신공법도 아니고 뻔한 공사절차에 불 보듯 분명한 위험이 있는데 ‘운’에 맡겨두고 공사를 한다. 한 해 많게는 수십 명이 사망하는 재해라면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에 조립식 흙막이 정도는 필수로 들어가야 옳다. 이것은 지방노동관서 감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관로 매설공사의 주요 발주자인 지자체 등에서 표준시방서에 따라 안전대책에 소요되는 비용을 주고 감리를 통해 그렇게 시행하는 지 수시로 감시해야 한다.


이 글을 보는 분 주변에서 혹 관로 매설공사가 있다면 위의 굴착면 기울기를 준수하거나 혹은 조립식 흙막이를 하는지 보기 바란다. 물론 대부분 불법으로 할 터인데, 그렇다면 관로매설 구덩이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목숨은 그 주변의 ‘흙 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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