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16:12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매일노동뉴스 노동안전보건섹션에 매주 전문가 칼럼을 제공합니다. 본 칼럼은 2009년 12월 14일(월)에 게재된 것입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특히 상업용으로 이용하실 때는 반드시 사전협의를 거치셔야 합니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우리나라의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큰 범주의 이유로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작은 범주로 노동부의 안전보건정책이나 사업은 어떠한가. 이 역시도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물론 정부의 안전보건사업이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소규모 영세사업장을 대상으로 국고지원사업인 ‘클린3D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많은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고 있으며, 사업장에서는 작업환경이 측정되고 있다. 노사 동수의 안전보건위원회가 구성돼 사업장 내 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업은 산재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면 노동부의 안전보건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어 산재를 예방하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에서 그간의 산업보건사업의 집행은 서비스 수요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 중심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와 같은 산업보건관리체계에서는 정부·서비스기관(전문가)·사업주 그리고 노조로 대표되는 노동자가 4개 주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주체를 들라면 노동자·사업주·정부 그리고 서비스기관 순으로 들 수 있다(선진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업주는 일정부분 마지못해 참여하고 있는 서비스 소비자로 참여했으며, 노조 내지는 노동자의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미미하다.
이와 같은 공급자 위주의 접근 방법은 한국에서 몇 가지 이유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서비스공급을 할 수 있는 인력의 절대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교육이나 직종훈련을 통한 인력의 개발에 많은 시간이 걸리며, 경제발전에 역점을 두다 보니 노조의 서비스 소비자로서의 입장강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소위 산업보건전문가들이 서비스 제공자로 참여하고 있어 그들의 의견이 소비자들의 의견보다 더 존중될 가치가 있다는 평가도 반영됐다. 서비스 제공자 중심으로 접근한 결과 행정부처의 조직 또한 선진국과 같은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근거하는 대신, 산업안전·산업보건·산업위생과 같이 개별적 서비스 제공자들의 직종구분에 근거해 편성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이러한 제공자 중심의 산업안전보건정책의 집행을 도모하는 데 관료들과 함께 서비스 제공자(전문가)들이 주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소비자들에 대한 파악은 무시되고, 단지 당시 전문가들이 주로 훈련을 받았던 일본의 체제를 거의 베끼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사업은 일본과 같이 서비스기관에 의해 운영됐으며, 건강진단과 작업환경 측정이 가장 대표되는 국가의 안전보건사업이 됐다.
주요한 유해요인의 통제기전은 문제를 안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사람을 바꾸는 것이 됐고, 산재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하는 것에 치중했다. 예컨대 산재 요양을 신청하면 재해조사를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위험한 공정의 개선이 아니라 산재 신청이 타당한지만을 조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안전보건사업은 검진과 측정비용으로 상당한 재정을 투여하지만 효율과 효과적인 측면에서 성과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업주도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도가 매우 떨어진다. 그에 대한 요구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각종 의무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고, 단지 정부의 규제가 있으면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수준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보건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요구도 거의 없다. 안전보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인력·조직도 거의 없다.
정부와 서비스기관만이 주도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며, 안전보건정책을 실천한다. 그러나 안전보건정책의 실천을 수행하면서 정부나 서비스기관 모두 현장의 요구를 받아 협의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는 과정을 밟지는 않는다. 서비스기관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으며, 정부는 평가를 하고 있으나 문제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
안전보건정책과 사업은 사업장에서 자력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인식을 갖추도록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지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노동자와 사업주의 상황은 기본적 문제인식과 요구가 없는 상황에 계속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일방적이게 되며, 사업장 차원의 안전보건 정착·지속적 개선이라는 목표의 달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안전보건정책은 규제와 지원의 효과적 접목에 의한 성공적 개선이라는 측면과 함께, 노동자·관리자·사업주의 문제인식을 심화하고 안전보건 요구를 증대하는 측면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