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이수정, 일과건강 2007년 10월호


1987년, 여성노동자에게 차별적인 노동시장의 고용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이하 “고평법″) 이 제정되었다. 고평법은 모집․채용 단계에서부터의 차별뿐 아니라 교육, 배치, 승진, 해고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하였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위한 규정, 동일가치 동일임금 원칙,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 지원을 위한 규정, 간접적인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고평법은 이제 ′배우자 출산 휴가 3일′, ′육아휴직 분할 사용′,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이하 ″단축시간제″) 등을 도입하여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 지원 목적을 강조하면서 법제명도 「남녀고용평등과 직장․가정생활의 양립 지원을 위한 법률」로 변경된다.

내년 7월부터는 여성노동자만 사용했던 법정 출산 휴가를 남성 노동자가 ′청구할 경우′ 3일의 휴가를 쓸 수 있게 된다. 자녀 출산 후 10일이 경과하면 신청할 수 없으며 유급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육아휴직은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기존에는 1자녀에 대하여 1회에 한하여 육아휴직이 가능했지만 개정 후, 1회에 한하여 분할사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육아휴직을 분할하여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마련된 제도는 단축시간제다. 해당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하는 대신 주 15시간에서 30시간 이내에서 신청하면 사업주는 ′해당 사업장의 인사․노무관리에 현저한 지장이 없는 한′ 허용해야 하고, 허용하지 않을 경우 서면으로 그 사유를 해당 노동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단축시간제를 시행하면 당사자 사이에 반드시 서면으로 노동조건을 정하도록 하였다.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정하는 조건 이외에는 이를 이유로 노동조건을 저하시켜서는 안 되고, 시간외노동을 할 경우 주 12시간 한도로 제한하도록 하였다. 또한, 단축시간제 동안의 기간은 평균임금 산정기간에서 제외하도록 하였다. 육아휴직과 단축시간제는 생후 3년 미만의 영유아에 대하여 총 2회로 제한되며, 육아휴직과 근로시간 단축 기간을 합쳐서 1년을 초과할 수 없다.

 

이 외에도 해당 노동자가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의 자녀 양육 또는 질병․사고․노령 등으로 가족 수발 등이 필요할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업․종업시각의 조정′, ′연장근로 제한′, ′가족 간호 휴직′ 등의 조치를 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하였다.

여성노동자에게 차별적인 요소들을 금지하기 위해 제정되었던 법률들은 이제 성별에 관계없이 한 쪽 성에 비해 다른 한 쪽 성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가족 친화적(?)′인 법․제도 마련으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법․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다른 법․제도와 사회 전반적인 인식도 함께 진화하고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현재 50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다. 그러나 법정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354시간으로 세계 1위였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서도 주당 54시간이상 노동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35%, 45~53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27%로 전체 노동자 60%이상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맞벌이부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이 하루 3시간 28분, 남성이 32분이었으며, 임금노동시간은 여성이 5시간 14분, 남성이 6시간 34분이었다. 가사노동시간과 임금노동시간을 합하면 여성이 8시간 42분, 남성이 7시간 6분이었으며 미취학 자녀가 있는 맞벌이 여성은 하루 노동시간이 9시간 50분이었다.

 

자녀 양육문제로 직장을 그만 둔 한 여성은 ″월차나 병가를 내면 팀 전체 점수가 깎이게 되어″ 직장을 12년 다니는 동안에도 당당히 휴가를 쓴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여성은 ″1주일만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장문화였다면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애가 크면 파트타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과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해야 하는 직장문화에서 ′해당 사업장의 인사․노무관리에 현저한 지장이 없는 한′ 단축시간제를 ′성별에 관계없이′ 활용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또한, 개정된 법에 따라 단축시간제를 활용한다 해도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개정법에는 12시간 한도로 시간외노동이 가능하도록 규정되었다. 따라서 주 15시간~30시간 이내에 단축시간제를 선택할 경우 주 27시간~42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되어 단축 의미가 무색해진다. 즉, 눈치 보면서 법에 보장된 단축시간제를 쓰게 되더라도 실제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크지 않고 그것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직장과 가정 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관련법․제도는 실은 성평등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과 노동시간의 단축, 실질적인 휴가일수의 산정․부여와 급여 보장, ′정상′가족만을 지원하는 체계의 수정, 출산․양육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없이는 ′성별에 관계없이′ 관련 법․제도를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제도적으로 마련된 권리를 당당히 누리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기업의 광고처럼 ′쑈(SHOW)′를 하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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