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6:44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이 수 정, 일과건강 2007년 9월호
고령의 여성노동자 7명이 죽고 2명이 크게 다친 화재가 있었다. 화재가 난 사업장은 경기도 의왕의 화장품 용기 제조 공장이었다. 작업을 위해 다루는 것들은 유독성 물질과 인화성 물질이 대다수였지만 산업안전관리는 전무했다. 화재가 난 늦은 밤,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연장․야간노동(잔업)을 하고 있었다. 화재가 났지만 비상구도 소화기도 없는 작업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1970년 11월 3일, 전태일이 온 몸을 불살라 이루고자했던 것은 ″근로기준법 준수!″였다. 우리 사회가 법정 최저기준인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 ″준수″되는 사회라면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아침 8시 반부터 밤 10시 이후까지 계속되는 13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했을 리 없다. 주휴일도 없이 주 44시간(2007.07.01. 현재 법정노동시간 주 40시간제는 50명 이상 사업장 적용)의 2배가 되는 8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서 최저임금도 못 받았을 리 없다.
해당 사업장은 상시노동자 11명이 넘는 근기법 ‘적용’ 사업장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적용범위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장은 근기법 ‘준수’ 사업장은 아니었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적용범위】①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②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알아둘 것은 아무리 사용 노동자수가 5명 이상이라 하더라도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사용인’에 대하여는 근기법 적용이 제외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친족을 포함하여 5명 이상이라면 당연적용 사업장이다. 4명 이하인 경우에는 근기법 [별표1]에 열거된 규정만이 적용된다.
예를 들면, ‘퇴직급여’ 규정, ‘근로시간’ 규정,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 규정, ‘연차 유급 휴가’ 규정, ‘생리휴가’ 규정 등은 적용 제외다. 이 중 퇴직급여 규정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부칙 규정에 따라 ″2008년 이후 2010년을 넘지 않는 기간 이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적용 제외되는 규정들은 오히려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규정들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기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이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받기 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은 강행법규인 근기법의 ‘적용’과 ‘준수’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근기법은 최저의 기준을 정한 법이다. 근기법을 상회하는 조건은 유효하지만 근기법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조건은 근기법을 적용하고 해당 조건은 무효가 된다. 근기법을 기준으로 기존의 노동조건을 낮추는 것 또한 금지된다. 근기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해당 규정별로 최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부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등의 벌칙이 적용된다.
「근로기준법」 제3조 【근로조건의 기준】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 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법과 동떨어져 있다.
경인지방노동청의 조사결과를 보면, 2007년 1월부터 5개월간 근기법 위반에 대한 민원이 총 4천453건이 접수되어 전년도 같은 기간의 4천172건에 비해 6.1%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에 노동부가 청소년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사용한 사업장 671곳을 점검한 결과에서도 점검대상 사업장의 68.7%인 461곳에서 896건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르바이트 학생노동자들 경우에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거나 최저임금 위반, 시간외노동에 대한 수당 미지급 등으로 발생하는 임금체불, 주휴일 미부여, 폭언․폭행 등이 대부분이다.
광주지방노동청에서 지난 4월 광주와 인근 6개 시‧군 병역특례업체 89개사를 대상으로 근로조건 준수실태를 점검한 결과에서는 87개사 354건의 법규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주요 위반사항은 △퇴직금 미지급 60건 △근로조건 명시소홀 56건 △취업규칙 미작성 51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31건 △연차휴가 미부여(수당 미지급 포함) 26건 △노사협의회 미설치 26건 △임금 미지급 19건 등의 순이다.(이코노미 21, 2007.8.13.)
사고를 당한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일하던 사업장에는 위와 같은 점검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점검을 하여 근기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었다 하더라도 연례행사 같은 적발과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는 현실에서는 고령의 여성노동자들 노동조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은 찌든 유독성 물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재해로 죽어갔지만 해당 사업장은 다시 작업장을 가동할 것이다.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이 폭염 속에 싸우고 있는 이랜드 사업장은 근기법 1,000여건을 위반한 사업장임에도 건재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