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4일 노컷뉴스 최인수 기자의 기사 입니다. 기사는 최인수 기자의 동의아래 전재됐습니다. 기사와 사진 저작권은 노컷뉴스에 있으며 무단전재, 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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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한중환 씨가 혜화동 언덕길 어귀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한재호 기자, 노컷뉴스 ⓒ 한재호 기자, 노컷뉴스

 

 

거리 환경의 '파수꾼'인 환경미화원들은 도시가 잠든 사이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는 이방인이다. 외딴섬 같은 컨테이너 휴게실에는 수도꼭지 하나 없고, 이제는 그 둥지마저 빼앗겨야할 신세에 내몰렸다. CBS노컷뉴스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환경미화원들의 인권과 작업환경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편집자 주]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이 미로처럼 좁은 서울 혜화동 골목길 바닥을 쉴 새 없이 헤집고 다녔다. 대문 틈 사이에서, 전봇대 밑에서 쓰레기봉투가 마구 끌려나왔다.

왼손에는 두꺼운 고무줄로 매단 이삿짐용 플라스틱 바구니가 질질 끌려 다니며 쓰레기봉투를 담아냈다. 100리터가 넘는 쓰레기는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간혹 봉투가 터져버리면 쓰레기를 양팔로 끌어안기도 했다.

환경미화원 한중환(50)씨가 한참이나 뛰어다니고서야 골목 입구에 세워둔 리어카에 쓰레기 더미가 가득 쌓였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희미한 가로등은 자꾸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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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환경미화원 한중환 씨가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끌고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쓰레기 봉투 수거에 나섰다. ⓒ 한재호 기자, 노컷뉴스

 

서울시가 밤 9시 이후에만 쓰레기를 수거하게 한 뒤부터 한 씨의 일과는 새벽 4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한 씨의 얼굴과 옷에는 시꺼먼 얼룩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휴게실 컨테이너에는 손 씻을 수도꼭지는커녕 마실 물조차 없었다.

환경미화원들이 위험하다. 그들의 작업복은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고속터미널 화장실 변기보다 미생물에 오염돼있다.

산업재해율은 평균에 비해 24배가 높다. 하지만 씻을 공간도 없고, 제대로 된 산재처리도 받기 어렵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해 환경미화원 48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환경미화원들 작업복 소매에는 1㎠를 기준으로 133만3,000여개의 박테리아가 득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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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종로 일대의 쓰레기 수거를 마치고 돌아온 환경미화원들은 인근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이렇게라도 씻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 한재호 기자, 노컷뉴스

 

 

환경미화원들의 얼굴에는 평균 7,200여개, 최대 29만개의 박테리아가 작업 후 남아 사무직 평균 29개와 큰 대조를 이뤘다. 지하철 손잡이에는 860개, 터미널 화장실 변기에는 3만8,000개의 박테리아가 산다.

매일 트럭 50여대가 쓰레기를 쏟아내는 경기도의 한 재활용품 선별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엔 그야말로 '쓰레기산'이 솟아있었다.

2층에서는 컨베이어벨트로 옮겨진 쓰레기에서 우유팩이나 유리병 등 재활용품을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기계가 멈추질 않으니 20여명의 근로자들도 쉴 틈이 없었다.

깨진 맥주병, 기름 범벅이 된 식용유통, 날카로운 못, 공사장에서 쓰이는 철골도 기계 속도에 맞춰 골라내다보니 손을 베이거나 파상풍에 걸리는 일이 잦다고 했다. 보호장구라고는 면장갑이 고작이었다.

선별장은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먼지가 날린 탓에 환풍기는 작동을 멈췄다. 자기 돈으로 마스크를 사 착용한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선별장 근로자는 분진과 호흡기 질환 유발물질에 특히 취약했다. 분진의 경우 평균 선별장은 4~5mg/㎥ 수준으로 평균의 10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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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재활용품 선별장에 분류를 앞둔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 한재호 기자, 노컷뉴스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엔도톡신은 환경미화원의 36.2%가 위험수위에 노출됐고, 선별장 근로자는 6명 가운데 5명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실제 환경미화원들은 눈이 따갑거나 가렵다거나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며 각종 질환을 호소했다.

산업재해율과 산재사고의 처리 방식도 환경미화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재해율은 0.7%지만 민간위탁 사업장의 경우 환경미화원의 재해율은 16.8%로 24배에 이르고, 지자체 직영사업장 재해율도 6.9%로 조사됐다.

종로구 민간위탁사업장에서 쓰레기 수거를 하는 한 환경미화원은 근무 도중 손을 베 12바늘을 꿰맸다. 하지만 회사는 "월급을 줄 테니 치료는 알아서 하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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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호 기자, 노컷뉴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환경미화원들의 피부와 작업복에 뭍은 미생물이 결국 호흡기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면서 천식이나 만성 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을 발생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김 실장은 또 "손이나 다리가 날카로운 오물에 베 파상풍이 걸리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