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7 14:40
공허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우리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 국무총리실 산하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 부쳐
글 : 한인임(일과건강 사무처장)
세월호 1년, 악몽 같았던 상황이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있다. 지난 1년간 거리에서 울부짖었던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 입법예고된 바로 직후 다시 삭발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세월호의 사고 진상을 파악하려는 당연한 권리를 정부는 집요하게 막아서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만들어진 국무총리실 산하 중앙안전관리위원회에서는 최근 제54차 회의를 열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이하 계획)을 심의·확정하였다. ‘강한 현장, 지자체 안전자치 지원, 안전취약계층 안전복지강화, 민간참여형 자율·사전 예방체계 구축, 향후 5년간 30조원 투자’라는 핵심 슬로건으로 이루어진 이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래 가지고는 안전사회 되기 어렵다는 걱정이 앞선다.
첫째, 마스터 플랜에 마스터 플랜이 없다.
표준화 틀, 매뉴얼 개발 계획만 있을 뿐 실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없다. 거대 재앙이 닥친 1년 후에도 만들어지지 않는 ‘한국형 재난관리 표준체계’라는 것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만약 이 구상이 세월호 진상 조사 결과를 반영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으로는 진상규명이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마스터 플랜이라는 것이 실효성 있게 수립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안전취약계층을 어린이, 여성, 노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안전취약 상황에 있는지조차 분석하고 있지 못하다. 대형 사고의 경우 안전 취약계층에게만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특징을 고려하고, 이에 따라 유동성, 집단성, 위험성 등의 요소가 전반적으로 고려된다면, 안전취약계층, 부문별 안전위험대상의 예상되는 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재난 발생 초기, 초동대응기관(소방, 해경)이 골든 타임 내 현장에 도착하여 초동대응을 하면 지자체(통합지원본부)는 소방·해경의 활동을 지원한다. 반면 수습단계가 되면 지자체(통합지원본부)가 수습을 총괄하고 소방·해경이 지원하게 된다.’ 이를 위해 지자체에 재난안전 전담조직(실·국·본부)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예산도 세금을 더 걷어 보전하겠단다. 그렇다면 국민안전처와 국무총리는 무엇을 하는가?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 역시 비어 있다.
다시 세월호를 들여다 보자. 지자체에서 초동대응을 못해서 세월호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인가? 이미 붕괴, 화재, 누출 및 폭발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소방조직이 가장 먼저 초동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의 경우나 구미 불산누출 사고를 봐도 상황은 유사한데, 당시 어느 누구도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결국 중앙정부를 책임단위로 하느냐, 아니면 지자체를 책임단위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컨트롤타워 역할을 실효성있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에 재발방지 관련 제도개선의 성패가 달려 있다.
셋째,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대책이 없다.
현재 일과건강 등의 안전보건단체들이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국민의 알권리 법’ 제(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화학물질 누출·폭발 사고 발생시 주민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있도록 알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재난 예방을 못한 상황이라면 피해라도 최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작업장 안에, 우리 동네에, 우리 아이가 가는 학교 주변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아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주들과 정부의 저항에 부딪쳤다. 기업이 가진 위험성 정보를 기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아무리 교육(도대체 정보가 없는데 무슨 내용의 교육을 시킨다는 것인지 궁금하다)을 시킨다하더라도 위험을 제대로 회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넷째, 각 부처의 대응 계획도 안일하다.
중앙정부의 마스터 플랜이 나왔는데 각 부처별 마스터 플랜은 없다. 각 부처별 마스터 플랜이 우선 만들어지고 이를 중심으로 중앙의 마스터 플랜이 만들어지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각 부처에서는 아직 계획이 제출되지 않은 곳도 많다.
한편, 비교적 촘촘하게 제출된 노동자 안전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의 종합대책을 들여다보자.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 중 혁신전략과제에서는 ‘사업주 책임강화’, ‘안전보건 관리체제 확충’, ‘근로자 참여제도 확대’, ‘정부정책 효과성 제고’ 등 굵직한 개선 과제가 제시되고 있다. 각 영역에 대해서는 거의 수십 가지에 이르는 세부 내용이 제출되었다.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개선계획이 제시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하고 있던 업무들을 나열한 수준에 불과하다. 잘 되지 않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그냥’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 세부 계획의 내용들이다.
물론 몇몇 사항은 핵심 쟁점에 접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법 적용대상을 모든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직업안전보건법으로 개편하는 방안 마련’과 같은 계획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이 또한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안전보건영역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의 요구였다. 하지만 이 내용이 진짜 실효성 있는 내용으로 채워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에도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도록 되어 있으나, 예외 업종과 예외 조항이 너무 많아 실질적인 보호법으로 기능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사업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사내하청업체 위험작업에 공동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확대’, ‘유해위험작업 도급 시 도급인가제도 강화’와 같은 사례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미 너무 많은 위험작업이 도급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도급을 규제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 그러나 기왕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수준에서의 도급 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제조업에서의 광범위한 불법파견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규제하지 못하는 고용노동부가 얼마나 실효성 있는 선택을 하게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말만 번드르한 이른바 ‘립서비스’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지 우려스럽다.
오랜 기간 노동자의 사망재해율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요 요구가 존재해 왔다. 우리나라 기업의 규제 순응도는 매우 낮은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안전보건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특성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어겨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솜방망이 처벌로 그쳐, 기업주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상태로 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 사업주(장) 가중처벌’이 필요하다.
또한 갈수록 복잡해지는 형태로 현행 노동관련법을 피해가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 안전보건 문제 역시 심각한 실정이어서 이 측면에서도 ‘원청 책임성 강화’ 또한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장의 문제를 현장에서 책임지자는 노동자 참여의 요구 또한 거세게 제기되고 있었다.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에 손을 대지 않으면 노동부는 향후 5년 동안 내용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세월호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자. 그래야 진정한 안전혁신 마스터 플랜이 나올 수 있다. 현재까지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내용을 묶어보면 최상위부터 최하위까지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매듭을 제대로 풀어내는 것이 진정으로 마스터 플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