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노동자 건강을 위한 기업의 책임
글 : 임상혁(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일과건강운영위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삼성전자(반도체) 백혈병이 사회에 알려진지 벌써 7년. 삼성전자 등 반도체 사업장 노동자들이 반올림에 제보한 피해사례 규모는 300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삼성전자관련 협력업체의 피해사례가 240여건이고, 백혈병 등 혈액암이 90건 정도 된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숫자이다.
7년의 기간 동안 세계 초일류기업이라 지칭되는 삼성전자, 노동자 건강에 대하여 기업이 책임지는 모습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불승인된 재해자가 진행하는 행정소송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는 모습, 수백 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기초적인 관리조차 되지 않는 실태, 2013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대량의 불산을 누출시킨(1명 사망, 4명 부상) 사례 등이 이를 잘 설명한다.
특별근로감독 과정에서 약 2천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었는데 이는 전 세계 어느 반도체 사업장보다 안전하게 현장이 관리되고 있다는 삼성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또한 삼성이 노동자 안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제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서울대학교의 연구를 통해 감광제 내 벤젠 검출 사실이 알려지자 당사의 조사결과와 다르다며 벤젠검출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청한 점이다. 뿐만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역학조사에서 요구한 자료를 기업비밀로 거부하는 모습은 당국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이로써 반도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보다 오직 삼성의 이해에만 몰두하는 수준 낮은 기업으로 각인되었다.
여하튼 7년간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마침내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조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조정위원회는 직업병 문제가 개인적 사안이 아니라 사회적 사안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신속한 보상과 사과, 항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종합 대책 방안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객관적인 조정기구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국내 양대 반도체 사업자 중 하나인 SK하이닉스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8월 하이닉스에서의 노동자 사망·발병 실태가 삼성 못지않고, 작업환경과 취급 화학물질의 위험성도 삼성보다 열악하다는 한겨레신문의 보도가 나왔다. 2주 후 SK하이닉스 대표이사는 백혈병 등 산업재해 의혹이 있는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보상, 정밀한 실태조사, 작업환경 개선 등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실태조사를 위해 외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학계와 전문의 등을 포함한 자문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발병·사망자 지원과 관련해 ‘건강지킴이 콜센터’를 설치해 관련 질환 발병시 전문 의료기관을 통해 최선의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잠복기가 있는 질병을 고려해 퇴직 이후에도 상당 기간 발병자를 추적관리하며 경제적 지원도 할 계획이라 한다. 또한 업무 연관성이 있는 협력사 직원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지원·보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책 발표 직후 발 빠르게 이행계획의 일환인 반도체 사업장 작업환경 개선과 의료지원을 위한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외부전문가 7명과 노사대표 4명 등 총11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1년 동안 작업환경 실태조사와 직업병 의심사례, 보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산업보건진단에 나서게 된다.
SK하이닉스가 언론에서 지적한 문제를 이처럼 신속하게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삼성의 그것과 확실히 다르다. 특히 협력사까지 산업보건검증의 대상으로 포함시킨 점은 삼성과는 크게 대별되며 심지어 전향적이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산업 특성을 감안하여 여성노동 전문가의 참여, 이해당사자인 노사의 책임자가 위원회에 참여하는 점 등은 위원회 활동이 객관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의 활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삼성전자 조정위원회의 활동과 삼성전자의 태도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한마디로 삼성전자는 조정위원회라는 중립적 기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것이고, SK하이닉스는 산업보건검증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피해를 보상하고 현장을 개선하겠다는 것이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조정위원회,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작업장 문제를 적시하기 위해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사후약방문식의 조치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아직도 기업차원에서 피해자의 업무관련성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기업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또한 명백히 건강 피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역으로 노동자는 자신의 직업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할 권리를 갖는다.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근로계약이지 자신의 건강을 침해해도 된다는 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에서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의무 외에 안전배려의무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안전배려의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노동자가 자기 보호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해위험 정보를 제공하는 의무(알권리)이다.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을 쓰지 않을 수 없고, 누군가는 유해하고 위험한 화학물질을 취급해야만 한다면 안전하게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하게 쓰려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람에게 어떤 화학물질을 어떻게 쓰는지 당연히 알려주어야 한다. 기업에게는 개선의 의무(개선을 요구할 권리)도 있다. 위험물질을 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거나 유해 공정을 개선할 의무를 가진다. 더불어 유해 공정을 하도급하면 안 되며, 원청의 경우 하청 기업의 안전관리를 점검하고 지도, 지원할 의무가 있다.
기업은 노동자를 기업의 안전보건정책에 참여시키고 주요 정책을 공동결정할 의무가 있다(참여할 권리). 이러한 의무는 모두 법적으로 규정된 의무이다.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정위원회와 산업보건검증위원회 활동을 통해 이처럼 세세한 법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길 바란다. 더 작은 기업에서도 지키고 있는 법을 초대형 기업들이 외면한다는 것은 사회 윤리에 걸맞지 않는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외부 전문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상설 감시기관 운영을 요청한다. 즉, 현재의 조정위원회와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상설화하여 ‘기업은 사회적 자산’이라는 인식하에 기업 내부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의 환경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감독이 강화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