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A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가 업무시간에 후진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재해가 발생했다.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모두 산업재해로 처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판단하고, 교통보험으로 처리하기를 원했다. 얼마 전 방문했던 B제철은 근골결격계질환에 대해 사업주 날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대부분 사고성 재해 사건에 대해서는 휴업과 급여지급 등을 공상으로 처리해 왔다. 이런 경우 산업재해 발생신고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해 6월12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요양급여신청 등으로 산업재해 발생보고를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이 폐지됐다. 즉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2항 단서조항이 삭제됐다.
이로 인해 올해 3월12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조가 개정돼 7월1일부터 시행됐다. 핵심적인 내용은 기존에 요양급여 또는 유족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사업주가 산업재해 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개정 시행규칙에는 산업재해 발생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보고대상을 ‘사망자 또는 4일 이상의 요양’에서 ‘사망자 또는 3일 이상의 휴업재해’로 변경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발생보고제도가 요양급여신청을 대신함으로 인해 산업재해 발생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등 제도의 본래 취지가 몰각되는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시행규칙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재해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요양의 경우 통원치료 및 약물치료도 포함하고 있어 산재은폐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시행규칙의 개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및 시행규칙의 내용보다 일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내용과 노동부의 ‘해석지침’을 보면 여전히 산업재해 발생보고제도의 문제점이 존재한다.
노동부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행규칙 개정에서 누락된 가장 큰 문제는 보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은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보고 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2009년 2월6일 법률 개정 당시(법률 제9434호, 2009. 2. 6 일부개정) 변경됐다. 이전에는 벌칙 제69조제1호 위반으로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했다. 형벌과 달리 질서벌인 과태료는 제재수단일 뿐이다. 위반행위에 대해 즉시 부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3자에 의한 고발조치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사업주가 이행해야 할 부담이 적다.
기존 산업안전근로감독관 업무편람을 보면 보고하지 않는 경우 일단 시정조치를 하고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또한 ‘최근 1년간 요양 4일 이상 28일 미만 재해는 3회 이상 보고하지 않는 경우’ 등 과태료 처분 대상도 상당히 좁게 운영했다.
노동부는 해석지침에서 "휴업일수에 재해 발생일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불연속적으로 휴업한 경우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3일 이상 휴업한 재해가 보고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재해발생일에 휴업을 하더라도 3일의 개념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며, 간헐적으로 휴업한 경우에 3일을 넘더라도 연속하지 않는다면 보고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부가 개정이유서에서 밝힌 ‘입법효과로서 발생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능한 시초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휴업한 일수가 재해로 인한 것이라면 이를 포함해 보고하게 하는 것이 정확한 산업재해 통계를 내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노동부는 해석지침에서 "산업재해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따른다"고 했다. 즉 "근골격계질환으로 사내 물리치료실을 이용해 30일을 경과하더라도 보고대상인 산업재해로 보지 않는다"는 기존 행정해석(안정 68320-72, 2003. 1. 30) 등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에도 단체협약으로 근로자를 공상 처리해 치료를 받게 하거나 여러 프로그램을 들어 휴업을 시키더라도 보고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사업주가 ‘업무관련성 질환’으로 인정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일단 ‘재해 발생보고’를 하도록 해야 산재은폐를 줄일 수 있다.
노동부는 건설공사 등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할 경우 원도급사업주가 아니라 하도급 사업주가 산업재해 발생보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안정 68320-84, 2000.1. 27).
하도급 사업주도 원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떤 하청노동자가 산재신청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산재은폐의 가장 큰 사업이 건설·조선소 등 원청의 지배력이 큰 사업장임을 감안할 때, 원청의 산재책임과 신고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글 :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