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부족한 산재 발생보고 제도

2014.10.06 14:40

조회 수:11871

며칠 전 A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가 업무시간에 후진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재해가 발생했다.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모두 산업재해로 처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판단하고, 교통보험으로 처리하기를 원했다. 얼마 전 방문했던 B제철은 근골결격계질환에 대해 사업주 날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대부분 사고성 재해 사건에 대해서는 휴업과 급여지급 등을 공상으로 처리해 왔다. 이런 경우 산업재해 발생신고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해 6월12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요양급여신청 등으로 산업재해 발생보고를 대신할 수 있는 내용이 폐지됐다. 즉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2항 단서조항이 삭제됐다. 

이로 인해 올해 3월12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조가 개정돼 7월1일부터 시행됐다. 핵심적인 내용은 기존에 요양급여 또는 유족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사업주가 산업재해 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개정 시행규칙에는 산업재해 발생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보고대상을 ‘사망자 또는 4일 이상의 요양’에서 ‘사망자 또는 3일 이상의 휴업재해’로 변경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 발생보고제도가 요양급여신청을 대신함으로 인해 산업재해 발생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등 제도의 본래 취지가 몰각되는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시행규칙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재해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요양의 경우 통원치료 및 약물치료도 포함하고 있어 산재은폐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시행규칙의 개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및 시행규칙의 내용보다 일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내용과 노동부의 ‘해석지침’을 보면 여전히 산업재해 발생보고제도의 문제점이 존재한다.

노동부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행규칙 개정에서 누락된 가장 큰 문제는 보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은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보고 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2009년 2월6일 법률 개정 당시(법률 제9434호, 2009. 2. 6 일부개정) 변경됐다. 이전에는 벌칙 제69조제1호 위반으로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했다. 형벌과 달리 질서벌인 과태료는 제재수단일 뿐이다. 위반행위에 대해 즉시 부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3자에 의한 고발조치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사업주가 이행해야 할 부담이 적다. 

기존 산업안전근로감독관 업무편람을 보면 보고하지 않는 경우 일단 시정조치를 하고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또한 ‘최근 1년간 요양 4일 이상 28일 미만 재해는 3회 이상 보고하지 않는 경우’ 등 과태료 처분 대상도 상당히 좁게 운영했다.

노동부는 해석지침에서 "휴업일수에 재해 발생일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불연속적으로 휴업한 경우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3일 이상 휴업한 재해가 보고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재해발생일에 휴업을 하더라도 3일의 개념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며, 간헐적으로 휴업한 경우에 3일을 넘더라도 연속하지 않는다면 보고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부가 개정이유서에서 밝힌 ‘입법효과로서 발생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능한 시초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휴업한 일수가 재해로 인한 것이라면 이를 포함해 보고하게 하는 것이 정확한 산업재해 통계를 내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노동부는 해석지침에서 "산업재해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따른다"고 했다. 즉 "근골격계질환으로 사내 물리치료실을 이용해 30일을 경과하더라도 보고대상인 산업재해로 보지 않는다"는 기존 행정해석(안정 68320-72, 2003. 1. 30) 등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에도 단체협약으로 근로자를 공상 처리해 치료를 받게 하거나 여러 프로그램을 들어 휴업을 시키더라도 보고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사업주가 ‘업무관련성 질환’으로 인정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일단 ‘재해 발생보고’를 하도록 해야 산재은폐를 줄일 수 있다.

노동부는 건설공사 등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할 경우 원도급사업주가 아니라 하도급 사업주가 산업재해 발생보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안정 68320-84, 2000.1. 27).

하도급 사업주도 원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떤 하청노동자가 산재신청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산재은폐의 가장 큰 사업이 건설·조선소 등 원청의 지배력이 큰 사업장임을 감안할 때, 원청의 산재책임과 신고의무를 규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글 :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번호 제목 날짜
648 구의역 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file 2016.09.02
647 여기서 멈춰 서야 한다. - 계속되는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 하청 노동자 사망에 대하여 - file 2016.06.01
646 올바른 유해요인조사를 위한 노안활동가의 개입지점 file 2016.04.05
645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대로 하기 ②] 우리가 차린 밥상인데...이제는 식은 밥? file 2016.03.22
644 대기업의 전사적 산재은폐가 국민부담을 가중시킨다. file 2015.11.03
643 천만 서울시민의 발, 서울시 지하철 안전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file 2015.09.16
642 어린이가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학교가 되기 위하여 file 2015.09.03
641 삼성 권고안,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야 file 2015.08.21
640 메르스 이후, 병원 내 비정규직 고용 관행은 꼭 개선되어야 한다 file 2015.07.21
639 미약하기만 한 발주자의 안전보건 책임 file 2015.06.26
638 필요성 증가하는 하도급 노동자 보호 정책, 오히려 후퇴?! file 2015.06.09
637 하도급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부의 정책 변화 file 2015.06.09
636 ‘안전 우선’ 가치를 바꾸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된다 file 2015.06.09
635 제주의료원 간호사 태아 건강 문제 산재 인정 판결의 의미 file 2015.06.01
634 [칼럼] 기본이 무시된 대기업 현장, 죽어가는 하청노동자! file 2015.05.05
633 ‘그 쇳물 쓰지 마라’ 초일류 기업에서도 노동자 사망이 줄줄이… 70년대 판 경제신화? file 2015.04.27
632 공허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우리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1] file 2015.04.27
631 인격의 살인 “직장 내 괴롭힘” file 2015.02.13
630 다중이용 시설 재해만이라도 잡아보자 file 2015.02.09
629 조선업이 제조업? 아니 아니죠, 건설업 아닌가요? [1] file 2015.01.27
628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노동자 건강을 위한 기업의 책임 file 2014.12.22
627 국내 원전 주변 토양과 수산물의 방사능오염 실태 조사 결과 file 2014.12.08
626 산업단지 노후설비 개선과 안전한 사회 file 2014.12.08
625 보팔 참사 30년을 다시 돌아보며 file 2014.11.27
624 국내 TCE(trichloroethylene)의 광범위 사용과 그로 인해 발생한 신장암 file 2014.11.24
» 여전히 부족한 산재 발생보고 제도 file 2014.10.06
622 환경호르몬과 건강영향 file 2014.09.23
621 물티슈에 사용되는 세트리모늄브로마이드(Cetrimonium Bromide)의 유해성 논란에 대한 file 2014.09.19
620 세트리모늄브로마이드(Cetrimonium Bromide)의 유해성 논란 file 2014.09.17
619 한국군, 미군의 ‘고강도 안전’도 배워라~ file 2014.09.17
Name
E-mail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