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이 남긴 것 - 3. 청년이 대한민국에 묻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산재사망 62일 만에 김용균은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꽃다운 24살의 청년은 청년이자 비정규직이었고 그것도 발전소라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다 스러졌다. 아름다워야 할 청년이어서 더욱 슬프고 비정규직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애달프고 탐욕스러운 기업주가 아니라 국가가 죽였기 때문에 더욱 비통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이번 호에서는 왜 청년 노동자로서 사망할 수밖에 없었나에 주목한다.
청년은 푸르지만 진청(眞靑)은 아니다. 사회 초년생으로 열정은 넘치지만 덤벙거리고 노숙하지 않다. 많이 배워야 할 때다. 그러나 이들에게 배움이 주어지지 않는다. 소모품처럼 청년을 사용하는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권리의식도 없다. 권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제 제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청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2016년 서울시 지하철 구의역에서 사고사망을 겪었던 ‘구의역 김 군’ 동료들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입사 후 승강장 안전문 정비기술 교육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가 40.8%, 지난 1년간 안전교육 3회 미만자의 비율이 47.9%’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준다. 위험한 작업에 직무교육이 없었다니 죽으라는 얘기이다. 안전교육은 매년 연간 24시간을 받아야 하고 첫 취업 후 특별 교육도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심각한 도덕적 해이이다. 뿐만 아니라 ‘인력 부족으로 스크린도어 유지점검을 제대로 못 하고도 한 것처럼 부정직한 보고를 한 경험자 비율이 58.3%,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나 이를 미준수하고도 한 것처럼 보고한 비율도 56.3%’인 것으로 나타난다.

발전소의 김용균과 동료들도 시설 개선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 왔지만 묵살되었고 2인 1조 작업은 문서에나 있는 언감생심 턱없는 요구였다. 결국 청년 노동자들은 스러져갔고 ‘불법 보고’의 장본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 한국 사회의 청년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안전에서 버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고 13%대를 기록했던 청년실업, 불안정 고용,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조건, 치열한 경쟁, 늘어난 수명, 불안한 미래... 현재 우리나라 청년의 고통지수는 OECD 5위 수준이란다. 고통지수는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을 합친 수치이다. 우리나라 앞줄에 있는 4개국은 주로 동유럽 국가들과 멕시코 정도이다. 세계 12위 수준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어쩌다 OECD 참가국이 된 것 같다. 국격이라는 게 있다면 정말 국격 때문에 땅을 파고 숨고 싶은 심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이 대한민국 차세대 주자라는 점이다. 출산율이 낮아서 고민이라는 대한민국에 묻는다. 청년을 다 죽이고, ‘헬조선’을 외치며 해외로 망명 취업하게 만들고, ‘삼포(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하게 종용하면서 출산율이 높아질 것을 기대하는가? 비옥하지 못한 악조건에서 탐스러운 과실이 열릴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미래의 대한민국을 꿈꾸고 기대하는 모든 국민들은 청년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하며 주변의 약자를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과 용기를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이 모든 변화는 의무교육과정에서 구현되어야 하고 사회보장제도로 구현되어야 하며 사업장 내에서 법을 지킴으로써 구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청년에겐 있는 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가장 시급하게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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