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0 09:48
지난 14일 아침에 일어난 온수역 철도공사 하청노동자의 사망은 지금까지 철도공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고 중 철도안전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사례였다. 첫째, 법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둘째, 내부 운영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셋째, 지난 8월에 제출된 안전진단결과도 수용하지 않았다. 넷째, 항상 그렇듯이 사고 이후 반성이 없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도급을 주는 원청사업주의 의무조항이 존재한다. 법률에서는 ‘안전·보건에 관한 협의체의 구성 및 운영’, ‘작업장의 순회점검 등 안전·보건관리’, ‘수급인이 근로자에게 하는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도와 지원’, ‘산업재해 발생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안전·보건시설의 설치’를 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칙에서는 ‘사업주는 열차가 운행하는 궤도(인접궤도를 포함한다)상에서 궤도와 그 밖의 관련 설비의 보수·점검작업 등을 하는 중 위험이 발생할 때에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열차통행의 시간간격을 충분히 하고,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을 확인한 후에 작업에 종사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법은 본 사고에서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온수역 구간은 지난 노량진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가 명령한 작업금지 구간이었으나 이 또한 가뿐하게 무시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일상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업무규정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열차운행선로지장작업 업무세칙’에 따르면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세세한 작업 방식이 제시되어 있다. 그 순서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철도운행안전관리자는 당일 선로작업을 시작하기 전 해당 역장과 철도운행안전협의를 시행’ → ‘철도운행안전관리자와 역장은 협의서를 공동작성, 다양한 안전상의 사항을 협의’ → ‘역장은 협의사항을 관제에 송부, 작업책임자에게도 송부’ → ‘역장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인접역장에게 통보’ → ‘관제는 기관사에게 해당 작업구간 서행 요청’. 그러나 이러한 제반 과정이 생략되어 버린 것이다.
올 해 6월 노량진역에서 선로유지보수를 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어 사망한 후 고용노동부에서는 철도공사에 안전진단을 명령했다. 9월에 제출된 진단보고서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선로작업을 주간에 시행하지 말고 열차가 드문, 전동차가 멈춘 야간 작업에 배치하라는 것이다. 이 주문은 필자도 그간 철도사고를 지켜보면서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였기 때문에 진단결과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실행되지 않았다. 주간 선로작업은 해당 선로에서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인접선로 진입 열차로 사고가 날 수 있고 작업 중 계속 열차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도 성과를 크게 보지 못한다. 이미 지하철에서는 열차운행 중 선로작업을 금지한 지 3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철도에서는 아직도 이 위험 작업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올 해에만 광운대역 입환사고, 오봉역 입환사고, 노량진역 선로사고, 안산한양대역 선로사고, 충북선 선로사고 등이 줄줄이 발생하여 애꿎은 노동자 목숨을 앗아갔는데 철도공사는 반성이 없다. 그래서 결국 또 온수역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철도공사는 온수역 사고가 선로유지보수를 하다가 생긴 게 아니라 선로주변에서 일을 하다가 생겼기 때문에 법이나 사내규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망한 작업자는 선로작업을 하기 위한 이동통로를 만들다가 사망했다. 그렇다면 이 이동통로는 왜 만들었는가? 선로를 걷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작업공간이 바로 선로 옆에 붙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를 선로작업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작업 현장을 아예 모르거나 또 같은 사고가 났을 때 또 우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쯤 되면 철도공사 경영진의 무능 또는 직무유기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와 해당 감독기관(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으로부터의 질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연거푸 발생하고 있는 노동자의 죽음에 기업과 정부는 이리도 무심할 수 있는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 과정에 또 애타는 소식이 전해진다. 철도에도 광역철도 구간 일부에 지하구간이 있다. 지하철처럼. 여기에는 집수정(지하구간에 유입되는 지하수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모아 놓는 시설)이 있는데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넘치게 되면 큰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분야로 인력을 빼가면서 해당업무자의 수가 크게 줄었다. 결국 교대조 운영이 안 돼 주간에 선로를 타고 들어가 집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어떤 부음이 이 곳에서 들릴지 애만 태울 뿐이다.
반성할 줄 모르면 나아갈 수 없다. 철도의 줄 이은 사고는 이 때문이다. 120년의 한국철도, 이제는 이 적폐를 청산할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