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6 10:11
다른 차원의 ‘과로사방지법’이 필요하다
글 :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2014년 일본에서 제정된 ‘과로사방지법’에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무언가 큰 일을 한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다. 과로사 수준이 일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시도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일과건강은 과로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과로사예방센터 창립으로 나아갔다. 과로사예방센터는 일본의 과로사방지법과 같은 법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범국가적으로 과로 문제를 인식하고 교육하고 조사하고 매년 의회에 그 성과가 보고되고 피드백 되는 구조로 가야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과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똑같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입법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 주당 68시간 이상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무력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적용제외 되어 있던 수많은 서비스업종이 모두 규제대상으로 포함되었다. 2021년까지 사업장 규모별로 노동시간 규제, 즉 주 52시간 상한 규제를 받게 되었다.(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물론 여전히 제외되어 있는 업종과 직종이 존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제외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크게 한 발자국 디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모리오카 고지 간사이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은 그간 사실상 노동시간 규제가 없었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인 모리오카 고지는 최근의 저서 ‘죽도록 일하는 사회(2018, 지식여행)’에서 한국의 변화를 부러워했다. 일본의 노동기준법에는 1일 8시간, 1주 40시간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만 같은 법 36조에서는 노사가 합의를 하면 노동시간 상한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합의를 하더라도 1주 15시간, 1개월 45시간, 1년 360시간의 초과노동 제한이 있지만 벌칙이나 과태료 조항이 없어 어겨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일본 의회에서는 초과노동시간 제한 조항에 벌칙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개월 45시간, 1년 360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과 3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 것이다. 예외 규정이 너무 많아 생색내기식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고 초과노동시간 규제에 휴일 노동시간이 포함되지 않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또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1년의 절반인 6개월까지 추가적인 시간외근무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 경우 한 달에 100시간·월 평균 80시간(휴일 노동 포함), 1년에 720시간(휴일 노동 제외)으로 상한이 늘어날 수 있다.(연합뉴스, 2018년 6월 29일자)
유족모임과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고 전해진다. 과로사방지법이 제정된 지 4년이 경과하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의 과로사방지법이 어느 수준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더욱 꼼꼼히 살펴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닮고 싶었던 일본의 과로사방지법이 이렇게 기능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과로사방지법은 다른 차원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고 지켜야 할 과로사방지법은 우선 노동시간 단축 법안이 연착륙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시간 규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연착륙 방해요소란 사업주의 ‘꼼수’, 그리고 최저임금 문제다. 사업주들은 노동시간이 단축된 만큼 노동자를 더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하는 회사는 없다. 결국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노동강도를 높일 수 없다면 일거리를 집으로 싸가야 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에 노동자들이 모두 동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반기지 않는다. 심지어 적용제외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겠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너무 낮은 최저임금, 근속이 늘어도 임금이 증가하지 않는 구조에 빠져 있는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노동시간 규제를 받으려면 소사업장, 자영업자(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시간 문제도 풀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생활임금 확보전략에 대한 고민, 일 덜 하는 문화 만들기, 과도한 소비 욕구의 억제 등 새롭게 선보일 우리나라의 과로사방지법은 근로기준법을 넘어서는, 총체적이며 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