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1 15:08
화학사고 지역대비체계 구축이 해답이다
글 :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
지난 2015년 5월 인천시에서 ‘화학물질 안전관리 알권리 조례 (이하 알권리 조례)’를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6월 30일 현재 광역 10개, 기초 27개 등 총 37개(군/구 조례 5개 포함) 지자체에서 ‘알권리 조례’를 제정했다. 하지만 수원시와 양산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조례가 사고 이후 여론 무마용으로 제정되거나, 준비과정이 부족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화학사고 대응 매뉴얼이 부재한 상황이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두건의 화학사고 대응과정에서 똑같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난 4월 이레화학공장에서 대규모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초기 환경부와 인천시는 일반화재사고로 대응해 비판을 받았다. 화학물질 관리법 2조에 따르면 화학사고에 대해 ‘시설의 교체 등 작업 시 작업자의 과실, 시설 결함·노후화, 자연재해, 운송사고 등으로 인하여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누출되어 발생하는 일체의 상황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유기용제 제조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 사고는 화학사고임이 분명했다. 결국 주변공장 10여 곳은 지속적으로 유독가스에 노출되었지만, 화학사고 대비명령이나 보호구 지급 등의 조치는 받지 못했다. 현장 주변 차랑 수십 대가 기름띠 얼룩에 뒤덮였지만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 2일 새벽 2시쯤 인천시 서구 석남동 한 화학 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폐염산 15톤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 서부소방서 제공(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02/2018060200899.html )
이어 6월 피에스케미칼에서 폐염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폐기도니 설비에 대한 부실관리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 공장은 이전에도 수차례 폐황산과 폐염산 등의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사고 발생 이전에 인천시와 해당 구청으로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되었지만, 이는 무시당했다. 특히 해당 업체는 2년 전부터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내부에는 10여 개의 탱크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그 내부에는 유해화학물질이 저장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누구의 관리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가동이 중단된 설비와 폐업한 사업장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난해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 34조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영업자가 그 영업을 폐업하거나 휴업하려는 경우 및 취급시설을 가동중단 할 경우 환경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조치란 외부인 출입통제 방안, 환경으로 배출되지 않도록 취급시설 밀폐 및 주기적인 자체 점검 계획 수립, 저온 동파로 인한 화학사고 예방을 위한 보완대책 마련, 취급 중단기간 60일 초과 시 잔여 유해화학물질 처분 등이다. 따라서 인천광역시는 조속히 화학안전관리위원회를 통해 관내 폐・휴업, 가동 중단된 탱크 등 설비 내 화학물질 종류와 양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법적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도감독에 나서야 한다.
화학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들 사례를 보면,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전제된 지역관리 체계 및 대비체계 구축만이 화학사고를 막고 사후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직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하루빨리 제정절차에 나서야 한다. 2017년 3월 환경부까지 나서 전국 지자체에 ‘조례표준안’을 배포하는 등 조례제정을 권고했다. 이미 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는 화학물질관리위원회 구성, 안전관리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사업장 위해관리계획서를 포함한 사업장 화학물질 배출량과 취급량을 주민에게 알기 쉽게 고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화학물질관리법과 알권리 조례는 수많은 화학사고 피해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법과 조례가 사문화되지 않기 위한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