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왜 일요일이 최선일까
의무휴업일 변경 시도하는 대구시, 윤 대통령 시그널에 총대 매나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365일, 24시간 영업이 가능했던 대형마트에 의무휴업일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11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서였다. 이후 의무휴업일은 한 달에 이틀까지 늘어났다. 의무휴업일은 공휴일 지정이 기본이지만,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치면 공휴일이 아닌 날도 지정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영업시간 제한은 오전 0시~10시까지 확대됐다.
국회에서 이렇게 지속적인 법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골목상권 보호의 필요성,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의 질 향상 요구 때문이었다. 지난 십수 년 간 한국 각 일터의 작업장에서는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이 이뤄졌고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되었다. 이러한 제반 변화는 ‘OECD 국가들 중 최장시간 노동’이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상한 일들이 모색·시도 됐다. 지난해 7월 ‘국민제안 TOP 10 투표’ 안건에 ‘마트 의무휴업일 폐지’ 안건이 올라갔는데, 어뷰징(abusing) 문제가 나타나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국무조정실에서 주관하는 규제심판회의를 통해, 마트 의무휴업일 폐지에 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집요하게 의무휴업일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시민사회의 문제제기가 강력해지자, 같은 해 8월 말 대통령 입에선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한 반응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각개격파를 위한 시도로 읽힌다. 지난해 12월, 대구광역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구시는 갑자기 보도자료를 내 행정예고를 하며 2023년 2월부터 대구광역시 마트 전체의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의무휴업 요일을 바꾸는 것은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해야 하는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 수렴은 쏙 빠진 상태였다.
의무휴업일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나, 이는 법 개정 사항이라 쉽지 않으니 ‘일요일에 쉬는 것이라도 뺏자’는 의도가 읽힌다. 대통령의 시그널을 받아 대구시장이 행동대장이 된 셈이다.
이러한 행위는 많은 법적 문제를 낳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은 유통산업발전법 위반이다. 또 근로조건이 후퇴하는데 당사자와 합의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다. 이에 더해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것은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달에 고작 이틀이지만 일요일 휴무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의무휴업일이 사라질 것이라는 신호탄이다. 노동시간 단축, 삶의 질 개선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역행하는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현 정부는 노동시간 상한을 늘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를 획기적으로 늘려 과로사 노출을 극대화하자는 의미의 권고를 한 바 있다.
‘일요일 말고 다른 날에 쉬자’는 게 왜 문제일까. 이는 ‘제대로 쉴 수 없다’가 정답이다.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쉬는 일요일에 쉬면, 연락 올 곳도 없고 모두 같이 쉬므로 본인이 하던 일 때문에 걱정할 거리가 없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다른 날에 쉬는 사업장인 경우, 일 때문에 연락 올 곳이 많아진다. 그 쉬는 날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싸우는 것이다. 평일 휴게는 제대로 된 휴게로 보장되기 어렵다. 주말엔 손님이 몰리므로 휴가를 쓴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다. 일요일에 쉬게 되면, 집안 행사도 참여하고 모임도 나갈 수 있다. 가족과 손잡고 뭔가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간 ‘소비자의 권리를 위해’ 의무휴업일이 없어져야 한다고 대형유통업체들의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물론 소비자들이 의무휴업일로 불편해할 수 있다. 그러나 2주에 한 번이다. 그날 필요한 소비를 위해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나 많다. 당장 필요하면 재래시장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미리 온라인으로 신청해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내가 필요한 날, 필요한 순간엔 어떤 상황이라도 소비할 수 있게 대형마트가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일 수 있다. 소비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제대로 쉴 하루가 절실한 마트 노동자들의 고충을 잘 모른다.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의무휴업제도 시행 초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고, 명절에는 과태료를 물면서까지 의무휴업일을 어긴 적도 있다. 또 지방정부에 로비해 조례 개정을 통해 평일 휴무가 되도록 변경을 시도해 왔다. 현 정부와 대구시의 시도는 이러한 대형유통업체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다.
‘삶의 질 개선’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르려면, 마트 뿐 아니라 백화점·면세점·복합쇼핑몰에도 의무휴업일이 추가 도입되어야 한다. 또 유통업 노동자들이 토, 일요일을 모두 쉴 수 있는 노동자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질 수 있게, 한 달에 4일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휴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는 물론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의 상인들도 크게 환영할 것이다. 최근 조치는 오로지 대형유통업체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