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3 10:19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할 권리를! 가사노동자 고용개선법이 필요하다
한인임(일과건강 사무처장)
가사노동자?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가사노동자들은 이상한 노동집단이다. 자신들을 제발 노동자로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지위도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은 30만 명에서 60만 명이라는 압도적 규모로 추정되며 플랫폼 노동자로 불린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약 150개의 특수형태근로 직종1)이 존재하는데 이 중 산재보험 적용이 되는 직업의 종류는 고작 15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 가사노동자 또한 사용주를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없으니 노동자라 할 수 없고 따라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할 수 없고 산재보험 등 사회 안전망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일하다가 손목이 부러지거나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해도, 근골격계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본인 비용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치료 때문에 일하지 못하는 기간 소득도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못 구하면 실업수당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중장년 여성만의 리그
가사노동자들은 모두 중장년의 여성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하는 업무는 가사 일을 돕는 것이다. 베이비시터, 조리, 청소, 빨래, 간병 등이 이들의 일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노동시장에 남성은 없다는 것이다. 왜 여성들만 이 일을 할까?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가 필요해졌는데 이 여성들은 특별한 이력이나 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주부’로 해 왔던 일에 쉽게 접근하게 된다.2) 배우자와의 사별이나 이별, 주소득원의 소득 상실, 일부의 경우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서 일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가구 전체의 소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절박해서 일하러 나온 것이다. 우리 일하는 사람들 중 일자리를 통해 소득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잃었을 때 절박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들도 똑같은 노동자이다. 그런데 가장 절박한 노동자들이 제도 속에서 가장 하대를 받는 이유는 바로 무관심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이들 중장년 여성의 노동과 빈곤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여기에는 모든 돌봄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 서비스, 학교급식조리종사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일은 가정활동의 연장이다. 가정에서 여성들이 도맡는 가사노동의 연장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득도 낮고, 일자리도 불안정하고 사회적으로 전혀 지지도 받지 못하는 곳에 여성은 대규모로 몰려온다. 그러나 남성들은 굳이 이 일자리를 찾지 않는다. 아니 않아도 된다.
을 중의 을
어려운 조건일수록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해야 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다. 보편적 복지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삼성전자 이재용씨에게는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이 필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자들에게는 절박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이 가사노동자들이 사회안전망 어디에도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물론 어떤 노동자는 산재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어도 일자리에서 사망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에게는 그 흔한 산재보험조차 대상이 아니라는 건 심한 차별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사서비스 영역에 대거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국내 노동자는 대체적으로 중장년층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젊은 층이 많아 수요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갖는 편견과 혐오는 아직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점이다. 계약에도 없는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성폭력이 이루어지거나 최저임금이 제공되지 않거나 아예 돈을 주지 않거나 불러서 갔는데 취소하는 경우 등 수많은 횡포에 시달리고 ‘자녀가 창피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을 중의 을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열릴 계기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가사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가사노동자를 고용해 본 수요자들은 대부분 플랫폼을 통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지만 가사노동자에 대한 신원보증이 필요한 점(32.4%), 소개기관의 책임 있는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점(26.7%) 등을 지적하며 이 노동자들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당연한 말이다. 필자라도 그럴테니까.
가사노동자들은 정부가 인증하는 기관에서만 가사노동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인증기관은 수요자가 원하는 가사노동자 신원보증을 하고 4대 보험과 같은 사회 안전망에 편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수요자에게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직무훈련 담당 등의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너무 과도하게 일하거나 과소하게 일하는 구조에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최근 코로나로 일거리가 확연히 줄었지만 소득증빙을 할 수 없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던 문제 같은 것도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이는 대단히 획기적인 제안이다. 필수노동자 운운하면서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정부에게 오히려 뭔가 하게끔 한 발상이다. 물론 이 법은 과거 수차례 입법발의가 되었지만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폐기된 아픈 경험이 있다. 정부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 노동자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또한 저출산이라는 벼랑에 몰려있는 한국사회이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를 위한 가사노동자 지원 사업에 예산을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된다면 수요자나 공급자 모두가 만족하는 돌봄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새로운 시도가 향후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리운전 기사, 퀵서비스 기사, 재가 요양보호사, 라이더, 심지어 팻 시터까지 사업주 종속성이 낮은 노동자들은 국가가 이렇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1) 국가인권위원회, ‘민간부문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 -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중심으로’, 2015.
2) 국가인권위원회,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