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7 17:19
감염원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이야기
한인임(일과건강 사무처장)
코로나19가 맹렬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향이 대구인지라 삼촌이며 숙모들에게 연신 전화를 하고 있다. 마스크 꼭 쓰시라고, 당분간 어디 나가지 마시라고, 사람 접촉도 최소화하라고. 잘 알고 계셔 다행이다. 감염을 막는 시작은 ‘앎’으로부터 비롯된다. 누가 감염된 자인지만 알면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누군지 모른다면 접촉빈도를 낮추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 때문에, 정보를 알지 못해서, 감염에 노출되는 경우가 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뉴스를 장식했던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가 대표적 사례이다. 또 인터넷 선을 깔기 위해 가가호호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 설치기사들에게 업무지시를 하면서 해당 가구에 코로나 감염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일하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환기도 잘 되지 않는 환경에서 마스크나 손소독제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하루 종일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말감염 가능성도 높다. 특히 하루에 주어지는 ‘콜 수’ 목표량을 채우려면 화장실 갈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므로 줄 서서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구조가 못 된다. 결국 집단 감염은 업무 환경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콜센터는 작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모두 대기업의 하청이다. 은행이나 보험사 같은 금융권이나 LG, 삼성과 같은 통신 및 가전업체들이 원청이다. 종국에 원청이 이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마스크나 손소독제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 무리한 업무량을 부여하는 것, 벌집 같은 업무공간을 제공하는 것 모두 윤리적으로 문제가 크다.
가가호호 방문하는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택배기사는 그나마 낫다. 미리 연락하고 문 앞에 상품을 두고 가거나 고객과 짧은 대면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오랜 시간 통신설비를 설치하거나 대형 가전제품을 수리해야 하는 경우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 쉽지 않다. 좁은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힘을 써서 일해야 하는 경우 마스크는 거추장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이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결코 마스크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더해 고객은 자신의 집 안에서 절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감염자 경로를 알고 있는 업무 지시자가 설치 기사에게 사실을 숨기고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 위험으로부터 회피권을 박탈하는 냉혹한 현실이 찾아온다. 이유인즉, 고객의 감염사실을 안 설치기사가 업무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매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또 문제의 원인은 기업의 경영이념이다.
전 국민이 똘똘 뭉쳐 바이러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미 국민경제적 손실도 크다. 이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은 더 이상의 감염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 기업이 좀 더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노동자를 감염에 노출시키는 행위는 반국민적이고 반국가적인 선택이다. 노동자 한 명이 지역감염원이 되었을 경우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긴박하게 종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