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산업안전보건법’ 재개정이 필요한 현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엊그제 다녀왔던 금천구청역 부근에서 선로 주변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지나치는 고속열차 소리에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또렷했기 때문이다. 연이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건물공사를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삼성은 사고 후 1시간이 지나서야, 그것도 사망한 이후에나 사실을 알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또 법을 안 지켰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전동)열차가 달리는 선로 주변에서 노동자가 일을 할 때는 항상 열차감시업무만을 전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원청은 이 정보를 주변에 알려야 한다. 역에도 알리고 진입하는 열차에도 알려야 한다. 이 전방위적인 규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고가 일어났을까. 2.5m 사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한 노동자의 경우 2인1조 작업(1인은 작업자, 1인은 안전감시자), 최상부 및 그 하단의 디딤대에서 작업 금지 규제를 지켰을까. 감전위험이 있었다면 정보를 받았을까. 게다가 삼성은 소방기본법까지 어겼다. 빨리 병원에 도착했으면 생존했을 수도 있다.

이들 사고는 지난 연말 발전소 고(故) 김용균의 처절한 사망사고를 접한 후 또 지속되는 산재사고이다. 그렇지만 사실이 아니다. 최근 연거푸 사망 소식이 알려진 노동자들은 2019년 8개월 동안 산재사고로 스러져간 수백 명 중 일부일 뿐이다.

이들은 언론에 보도도 되지 않고, 보도되더라도 ㄱ씨, A씨로 불린 우리 주변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가족, 친구, 지인들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총 2142명이 산재로 사망했다(산재보험 처리한 경우만 그렇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보험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 중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971명이었고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171명이었다. 다행히 사고사망만인율은 전년 대비 0.01%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 낮은 감소율임에 틀림없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최고 수준의 산재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매일 2.7명이 업무상 사고로 사망하고 있고 매일 5.9명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약 3명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사망할 것이다. 떨어지고 절단되고 협착되고….

정부에서는 2018년 초 노동자의 사고사망률 50% 감소를 2021년까지 실현하겠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어렵게 2018년 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 개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노동안전보건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법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 불렀다. 개정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지적되었던 문제는 하청 노동자만 사망하는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 보호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 변화는 있었다. 원청의 책임이 하청의 책임 수준으로 올라갔고 원청이 지정하는 외부장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까지를 원청이 일정한 안전보건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이라는 게 고작 몇백만 원 수준의 벌금에 그치는 정도이다. 특히 최고경영자는 벌칙의 대상에서 거의 빠져나가고 현장 책임자가 모든 문책을 받는 구조이다. 이런 수준이면 원청이고 하청이고 그냥 벌금 내고 말겠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몸통이 다치지 않고 깃털이 책임지는 구조이니 의사결정을 하는 몸통이 돈 드는 경영방침을 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벌칙을 강화해 경영책임자에게 하한형을 둘 것이 요구되었고 위험한 업무(고 김용균이 했던 업무와 같은, 특히 사망재해가 발생했던 업무와 같은)의 경우 아예 하청을 줄 때부터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하는 절차를 두거나 도급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결국 모두 빠진 채 서둘러 개정이 이루어졌다.

하루가 저물어 간다.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참혹한 사고로 사망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2020년에 가서야 발효되는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재개정을 생각해야만 하는 현실 또한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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