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3 14:52
지속되는 노동자 자살, 해법은 있나?
글 : 한인임(일과건강 사무처장)
태국 장난감 공장 노동자 188명이 화재 참사를 당한지 25년, 한국에서는 노동자 자살이 줄 이어 발생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가늠도 안 된다. 국민자살률은 십년 가까이 OECD 1위라는데 노동자의 업무관련 자살은 산재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지 몇 년 안 됐다. 최근 급격히 늘어 연간 10여 명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은 10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일본보다 덜 일해서? 덜 괴롭힘을 겪어서?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자살한 사람 중 경찰이 초동수사를 통해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규모는 연간 560명 가까이에 이른다.
아산병원 간호사 자살, 유명 온라인 강의업체 웹디자이너 자살, 게임개발 노동자 자살, 기관사 자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들의 궤적을 살펴보면 자살하지 않았더라도 돌연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과로사’의 피해자다.
하루 16시간씩 업무 또는 관련 일을 해야 했던 간호사는 갓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지만 중환자를 봐야하는 업무에 배치되었다. 임상경험이라곤 거의 없는데도 병원에서는 무리한 업무를 지시한 것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하루 12시간씩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도맡으면서 일해야 했던 웹디자이너는 상사의 괴롭힘에 끊임없이 노출됐다. 게다가 건강한 상태도 아니었다. 퇴근하지 못하면서 마감을 지켜야 했던 게임 개발 노동자들도 수 없이 죽어나가고 있다. 연이은 기관사자살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교번제라는 매우 불안정한 근무 체계 하에서 상급자들의 억압적 노무관리를 받으며 일해야 했다. 휴가도 못 쓰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아야 했다.
중요한 것은 이 노동자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분명히 업무 때문이고 노무관리 때문인데 그 누구도 이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의 경영시스템에 대해 어떤 문제제기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합법적으로 죽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인이 합법이다.
경영진 쪽에서 항변을 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과로 권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고 간호사, 웹디자이너, 게임개발자와 같은 업무는 노동시간 규제 대상 업종도 아니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았다고. 억압적 노무관리와 괴롭힘에 대한 법적 구속력도 없다고.
바로 이런 문제들이 문제다. 우리에겐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법이 있어야만 지키는 척이라도 한다. 법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따르는 사회규범 중 가장 협소한 기준이다. 따라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도다. 아주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를 모두 법으로 만들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사회라면 너무 후진적인 사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라는 법조문을 가지게 됐다.
이제 우리는 모든 장시간 노동과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과 억압, 압박에 대한 규제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합법적으로 죽도록 일해야 하는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노동시간 규제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에 ‘폭행 금지’조항이 있듯이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반인권적 괴롭힘, 억압, 압박에 대한 금지조항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미 몇몇 문제인식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입법발의를 한 상태이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일련의 죽음의 행렬 앞에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