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2 21:47
작업환경 측정 하시죠? 맨날 기준 미만이라고 하죠? 그러면 정말로 안전한가요? 먼지의 기준이 10 mg/m3입니다. 만약 9.8 mg/m3이 나왔으면, 그래도 안전한가요? "감으로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십니까? 안전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봅시다.
1. 우리의 상황
조합원들이 자꾸 냄새가 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작업환경 측정에 반영했다. 뭔가 측정을 하긴 했는데 기준 미만이라고 하면서 끝났다. 현장에서 두통을 일으키는 원인은 찾지 못한 채.
기준 미만이면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2. 노출기준은 언제부터, 왜 만들게 되었을까?
미국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에서 처음 기준을 만들었는데, 이 때가 1942년이다. ACGIH에서 만든 기준은 TLVs라고 부르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46년 당시, ACGIH에서는 148종의 물질에 대해 기준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642종의 화학물질과 물리적 요인, 그리고 38종의 생물학적 요인에 대해 기준이 만들어져 있다.
ACGIH에서 노출기준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작업환경 중의 여러 가지 유해물질에 대한 측정 기술이 점차 발전하게 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유해물질을 측정할 수 있게되고, 농도를 알게 되면서, 현장의 상황에 대해서 단순히 '매우 높은'이라든지, '위험한'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좀 더 기준을 가진 과학적 표현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한 산업위생을 전공한 전문가들은 현장의 유해물질들을 어느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통일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ACGIH의 TLVs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ACGIH에서는 이 문제가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들어진 기준에 대해서 기업주나 노동자 단체들이 반발할 수도 있고,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노출기준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CGIH는 TLVs를 만든 초기부터 이렇게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명심할 것은, 우리가 만든 기준들이 지금 현재의 지식에 근거한 것이며, 매년 검토하고 개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준값을 법적인 기준으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단지 작업환경에 대해 다소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가이드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유해물질에 의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주 정확한 기준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나, 그 기준 밑의 농도에서는 완전히 안전하다거나, 기준을 넘으면 반드시 무슨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는 얘기입니다."
ACGIH에서 만든 TLVs는 현재에도 권고기준이나 법적 기준은 아니다. 법적인 기준이 만들어진 것은 미국에서 1970년 산업안전보건청이 만들어진 이후이다. 그리고 ACGIH는 2004년 현재에도 위의 얘기와 비슷한 경고를 하고 있다. 특히 TLVs를 안전한 상황과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1970년 미국에서 산업안전보건청(OSHA)가 만들어지면서 정부의 법적인 기준인 PEL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것을 어기면 사업주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처벌되게 된다.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이라고 부르며, 노동부 고시 제 2002-8호로 공표되어 있다. 최초로 제정된 때는 1986년 12월 22일 노동부 고시 제86-45호였고, 지금까지 총 5번의 개정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준은 줄여서 노출기준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총칙 제2조(정의)에서는 "노출기준이라 함은 근로자가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경우 노출기준 이하 수준에서는 거의 모든 근로자에게 건강상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기준을 말하며"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이 아니라 '거의 모든'이라고 표현된 것은 ACGIH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의 기준도 모든 노동자들을 안전하게 보고할 수 있는 것으로 경직되게 사고하면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3. 법적인 노출기준은 경계선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법이라는 것은 지키느냐, 어기느냐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경직된 시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1970년도에 산업안전보건청(OSHA)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기준을 받아들여 법적인 노출기준을 제정하게 된다. 그리고 ACGIH의 TLVs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OSHA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건강이나 신체기능에 손상을 주지않는 기준"을 제정할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즉, 일부 노동자는 보호할 수 없는 기준으로부터 모든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기준으로 바뀌게 된다.
같은 값으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은 노사 양측으로부터 문제제기를 받는다. 사측에서는 ACGIH의 TLVs가 너무 강한 기준이라고 주장했으며, 노측에서는 너무 약한 기준이라서 모든 노동자들의 보호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먼지의 노출기준이 10 mg/m3이다. 그래서 작업환경측정 결과 9.5 mg/m3의 먼지가 나왔다면 노출기준 미만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고 개선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이것이 옳은 것인가?
OSHA에서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답을 할 필요를 느꼈으며, 결국 통계적 기법을 도입하여 노출기준보다 강력한 수준에서 관리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것이 바로 관리농도(Action level)이다.
보통 관리농도의 값은 기준치의 1/2에 해당하는데, 작업환경 측정을 해서 유해물질이 기준치의 1/2을 넘으면, 그보다 낮게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측정을 해서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건강검진도 실시한다.
조금 어렵지만, 통계적인 이유에서 관리농도를 도입한 배경을 살펴보자.
작업물량이 다르거나, 기계의 상태가 다르거나, 다양한 이유로 인해 매일 매일의 유해물질 농도는 변하게 된다. 변화가 얼마나 큰지 나타내주는 통계적 지표가 표준편차이다. 작업장의 유해물질 농도는 기하표준편차(GSD)를 사용한다.
아래의 그림은 GSD를 이용하여, 왜 관리농도가 노출기준의 1/2 선에서 만들어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통계와 관련된 그림이기 때문에 그냥 보아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다. 좀 더 쉽게 생각해보자. 만약 어느 날 어떤 작업의 유해물질 측정치가 노출기준의 1/2이었고, 그 작업의 GSD가 1.22보다 작다면 매일 매일 농도가 달라지더라도 1년 중 5 % 동안 노출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유해물질의 측정치는 1.22보다 큰 변이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의 측정결과가 노출기준의 1/2이었다고 하더라도 GSD에 따라서는 노출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매일 매일의 변이(GSD) |
1년 중 5 % 정도는 노출기준을 초과할 가능성 |
1.3 |
17 |
1.5 |
47 |
2.0 |
72 |
3.0 |
83 |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 노동부는 관리농도를 제시한다. 최소한 노출기준의 1/2 미만으로 작업장 환경을 관리하자는 것이 관리농도의 취지이다. 이것조차 완벽한 대안은 아니지만, 무작위적으로 측정이 이루어지는데 노출기준의 1/2 미만이라면 그래도 노출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심각하게 많지는 않다고 본다(아래 그림).
만약 어느 날 측정치가 관리농도를 넘게 되면, 미국의 사업주는 환경을 관리하고 계속 측정을 해서 관리농도보다 낮게 측정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의무적으로 노동부에 보고해야만 한다. 그리고 건강검진을 해서 노동자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관리농도라는 개념은 없고, 오직 노출기준만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사업주는 노출기준이 10mg/m3일 때 9.8mg/m3이 나오더라도 아무런 할 일이 없다. 측정기관에서는 기준 미만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노동부에서도 노출기준보다 얼마나 낮은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노동부는 미국과 달리 법적인 노출기준이 '모든' 노동자가 아니라 '거의 모든' 노동자를 위한 기준이라고 표현을 했다. 하지만, 이것만 할 뿐, 관리농도라는 실질적인 도구를 만들어놓지 않음으로써, 현장에서는 노출기준에 대한 맹목적 적용, 기준 미만이면 아무 조치 안 해도 된다는 미신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4. '노출기준 미만', 과연 안전한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준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노동자들이 보호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법적으로 1년에 두 번 측정하도록 되어 있는 나라에서 측정 당일 날의 측정치가 기준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날에는 기준치를 초과할 수도 있는 상황은 통계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보았다.
우리는 측정결과 '노출기준 미만'이라고 되어 있더라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만약 기준치의 1/2을 넘는 수준으로 측정결과가 나왔다면 안전하기는커녕, 환경을 개선해야 할 상황이라고 본다.
많은 사업장에서 작업환경 측정 결과 중에 노출기준보다 1/2은 넘지만, 기준 미만이라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제부터 우리 노동자들은 "이것은 안전한 것이 아니오"라고 주장해야 한다. 적어도 측정기관의 사람들은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것이다. 만약 회사의 보건관리자가 무슨 얘기인지 못 알아듣거든, 이 자료를 보여주기 바란다.
번호 | 제목 | 날짜 |
---|---|---|
19 |
석면 피해자 투쟁의 영웅 故 "버니 밴튼"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 | 2012.03.03 |
18 |
산재 통계, 사업장 표본조사 방식으로 전환
![]() | 2012.03.02 |
17 |
노동자가 충분히 이해하였는가?
![]() | 2012.03.02 |
16 |
출퇴근 재해인정, 어느 천 년에?
![]() | 2012.03.02 |
15 |
2006년 한 해도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 | 2012.03.02 |
14 |
안전모는 돈벌이가 아닙니다!
![]() | 2012.03.02 |
13 |
산재통계를 정상화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우자
![]() | 2012.03.02 |
12 |
"산재요양 환자에 대한 적정 요양기간 연구"를 읽고
[1] ![]() | 2012.03.02 |
11 |
산재통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 | 2012.03.02 |
10 |
백혈병 유발물질, 전국 50개 산업단지 중에서 여수산단이 가장 많이 배출
![]() | 2012.03.02 |
9 |
산재보험 개혁을 위한 기획연재를 준비하며
![]() | 2012.03.02 |
8 |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입법안을 지지한다
![]() | 2012.03.02 |
7 |
이제는 양질의 고용, 안전한 노동을 말하자
![]() | 2012.03.02 |
6 |
학습지노동자의 건강이 위협받는 이유와 대책에 대하여
![]() | 2012.03.02 |
» |
작업환경측정 노출기준 미만이면 안전한가?
[1] ![]() | 2012.03.02 |
4 |
서울시 암반지도로보는 라돈
[1] ![]() | 2012.03.02 |
3 |
라돈을 아십니까?
[1] ![]() | 2012.03.02 |
2 |
2004년 1/4분기 산재통계 이해되나요?
![]() | 2012.03.02 |
1 |
노사는 한배를 탄다?
![]() | 2012.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