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0 13:46
이 기사는 일과건강 2009년 1월호로 기획되었던 내용입니다. 뒤늦은 '1월호부터 휴간 결정'으로 종이매체로 발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중한 기사를 주신 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본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이 기사 필자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심규범 박사 입니다.
2008년 1월 이천 산재화재참사 원인과 문제점 해결책을 논의한 4월 토론회. 건설노동자의
산업재해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였다. 그러나 1년도 안돼 비슷한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다. ⓒ 이현정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
2008년 1월에 발생한 이천 산재 참사로 40명의 생명을 앗아간 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인 같은 해 12월에 유사한 화재 참사로 또 다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때 늦은 헛수고를 의미하겠으나, 또 다시 소를 잃지 않으려거든 늦었어도 서둘러 고쳐야만 한다. 문제는 한 번 잃고서도 계속 고치지 않으면서 유사한 잘못을 반복한다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천 산재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반성과 개선을 촉구했던 2008년 4월 국회세미나에서 제기되었던 노력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2008년 1월의 이천 산재 참사로 기술적 결함 또는 안전관리책임자 신고 등의 문제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기초적인 산업안전관리 상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첫째, 근로자들이 안전교육을 받지 못해 작업의 위해성 여부조차 몰랐을 가능성이었다. 둘째,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나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의 신원조차 즉시 파악되지 않아 후속처리가 늦어졌다. 셋째, 건설현장의 관행처럼 굳어진 무리한 공기단축 강행으로 산업안전 관련 규정이 무시되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점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고의 경우 대개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개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이러한 참사가 재발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작년 1월 화재로 사망한 40명과, 다수 부상자 명단을 적어놓았던 현황판. 비용이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 이현정
여전한 중소규모 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건설현장의 산업안전 책임자인 사업주와 근로자간의 고용관계를 명확히 하려면 하도급구조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건설업자와 팀?반장간의 도급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다단계 하도급구조를 온존시키는 제도로 악용되었던 ‘시공참여자 제도’가 2008년 1월부터 폐지되었다.
동 제도의 폐지로 제도적 여건은 조성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모습이 표출되고 있다. 즉, 80%대 이상으로 낙찰률이 높은 대규모 민간 건설현장에서는 제도의 취지대로 고용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를 보이고 있으나, 낙찰률이 낮은 공공현장(대체로 최저가낙찰률 현장의 낙찰률은 60%대) 및 중소규모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업주들은 과도한 덤핑수주가 지속되는 한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다. 결국 산재에 취약한 중소규모 이하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작업의 기초적인 위해성을 모르거나 신원조차 파악이 안 된 근로자들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낙찰률 낮은 공사현장은 전자카드 꺼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건설현장의 산업안전 책임자인 사업주와 근로자간의 고용관계를 명확히 하려면 근로자의 근로경력관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노동부는 건설현장에 실질적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2008년부터 전국의 100억 원 이상 건설현장에 건설고용보험카드를 보급하고 있다.
2004년 이래 시범사업을 통해 전자카드의 효율성은 입증되었으나 활용 정도는 현장별로 차이를 보인다. 즉, 위에서와 같이 낙찰률이 높은 대규모 민간 건설현장에서는 전자카드가 정착되는 양상을 보이나, 낙찰률이 낮은 공공현장 및 중소규모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자카드 도입을 꺼리거나 피보험자 신고를 기피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과도한 저가수주로 부족해진 노무비를 만회하기 위해 투입되는 다수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는 전자카드 발급과 정상적인 임금지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규모 이하의 현장에서는 신원조차 파악되지 않은 근로자가 투입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림 1>건설산업 차원의 기초안전요소 공급방안 : 산업안전보건관리비 활용 예시 ⓒ 심규범
검토 수준에 있는 기초 안전교육 이수제도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근로자도 산업안전에 일정한 지식과 대처 능력을 보유하고, 자신이 피해야 할 직무와 물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관련된 보호구를 착용하여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고 이동이 잦으므로 개별 사업주들에게 모든 안전요소의 공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건설근로자의 잦은 이동을 감안하여 상대적으로 현장별 특수성이 낮은 기초안전교육, 정기건강검진, 공통적인 보호구 등에 산업차원에서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전자카드를 활용한 산업차원의 접근이 건설근로자에 대한 산업안전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개선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2009년부터 시작되는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2차 기본계획에 ‘기초안전교육 이수제도 도입’이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일정 시점 이후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현장에 호주의 그린카드처럼 건설고용보험카드를 소지한 근로자만 현장출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는 정도이다. 결국 아직은, 특히 중소규모 이하의 현장에는 작업의 위해성을 모르고 관련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투입되는 근로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적정공기·비용 확보로 저가 낙찰 피해야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적정한 공기와 적정한 비용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부족해진 공사비에 맞추어 시공하기 위해 과도한 공기 단축을 시도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신속한 시공을 위해 산업안전 시설이나 보호구 착용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근로자에게는 위험한 작업을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친 저가발주를 막을 수 있는 발주자 스스로가 자제할 수 있는 기제의 마련이나 최저가낙찰제의 재검토 등을 제안하였다.
<그림 2>최저낙찰제 공사의 낙찰률 하락 및 연쇄적 하락 메커니즘 ⓒ 심규범
하지만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낙찰률은 연쇄적으로 더욱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행 제도에 의하면 최저가낙찰제의 확대, 실적공사비 적용 확대, 품셈 하락 등이 연쇄적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안전에 대한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더 공허해질 가능성이 높다.
개선 노력 미흡으로 참사 반복 우려 여전
요컨대, 만연되는 다단계 하도급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시공참여자 제도가 2008년부터 폐지되기는 하였으나 지나친 저가발주가 오히려 확산되면서 현장에서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상태이다. 나아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중소규모 현장의 사업주는 아예 산업안전의 끈을 놓아버리려 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현장에서 또 다른 이천 화재 참사가 야기될 것만 같은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잡지로 발행된 일과건강에서 제공했던 내용은 관점있는 노동안전보건 인터넷 뉴스 '일과건강'에서 계속 제공합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의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