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9 21:39
이 글은 일과건강 2008년 11월호 기획특집 <현대자동차 주간연속2교대가 희망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원고 중 하나 입니다. 원고 필자는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연구원 한인임 님이며 저작권은 일과건강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와 필자 이름을 명기해주십시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이루어진 현대자동차 등의 주간연속2교대제가 현재대로라면 내년 9월 전면 시행될 전망이다. 시차를 두고 다른 완성차 업체와 부품분야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이루어질 것이다. 앞서 많은 글에서 지적되듯이 이번 주간연속2교대제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고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한 획을 그을 만큼의 중요한 시도였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쉬움과 한계, 그리고 상처를 남기고 있음 또한 두말할 여지가 없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결정 못 믿는다?
최근까지의 합의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시행시기가 늦춰지고(물론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좀 늦추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여전히 노동밀도(UPH, 편성효율 등)와 인력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사실상 1년 연기된 일정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유감스럽게도 항간에서는 2009년도에 정말 합의안대로의 주간연속2교대가 시행될 것인지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듯 노동자가 노동자의 결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주체가 신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를 기정사실화할 수 있는 큰 문제이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현재의 합의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향후 무엇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이 달랑 합의문 한 장으로 남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한 과제를 해결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2無 무력화할 전략 만들어야
첫 번째, 2009년 9월 시행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매우 바빠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강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노동조합 안을 만들고 이를 가지고 사측과 협상해야 한다. 특히 2013년까지 ‘8+8’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이참에 고려 대상에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8+8+1’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2005년 합의 이후 만 3년이 지나는 동안 고작해야 노사는 ‘주간연속2교대 전문위원회’를 약 1년간 운영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고 노동조합의 확고한 전략도 없었다. 이 전반의 과정이 올 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똑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총 노동시간의 실질 단축을 위한 노동시간 상한제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8+8+1’ 이외의 노동시간 규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도 일상으로 존재하는 주말 휴일 특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사실상 무조건 열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시간 규제는 노동자 개인의 ‘도덕적 재무장’으로 요구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월급제 도입과 수당체계 조정(과도하게 높아 초과노동 유인되는)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주간연속2교대 시행 합의과정은 쉽지 않았다. 10+10 물량유지 반대와 완전월급제 쟁취를 요구하면 현대자동차지부
대의원이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하였다. ⓒ 울산노동뉴스
세 번째, 이러한 작업장 제도와 생산 변화와 관련하여 조합원을 설득하고 지도하는 과정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조합의 전략이 있어야 한다. ‘3무(無)’ 임금저하, 노동강도 강화, 연장근로를 없애야 한다는 현장조직들의 원칙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힘 관계 속에서 전략 부재는 치명적이었다. 조합원과 제현장조직의 눈치를 보았을 뿐 전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원칙만을 되풀이 했으며 결과적으로 앙상한 전술만이 남았다. 이에 대하여 현장의 제조직은 물론 조합원들은 매우 분노하였다. 구체적인 합의가 있기 전 이미 ‘2無(인력충원과 설비투자 없음)’를 합의하는 엄청난 일을 하고도 조합원들과 소통하지 못하였다. 그 이후 구체적인 합의 과정 과정에서 역시 공개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초기 협상안을 부결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본다.
조합원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자신의 의지가 빠져있는 협상안을 받을 수 있는 조합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1백만 원 임금인상으로 협상이 가결되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조합원들은 ‘소통하지 못하는 지도부, 전략이 없는 지도부’에 낙심을 표현한 것일 게다. 이러한 실책이 향후에도 지속된다면 조합원들은 더 큰 불신의 나락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학습비용은 한 번의 지출로 족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바탕은 사회개혁
네 번째, 주간연속2교대 도입의 대전제(2無)를 무력화시킨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에 걸맞는 요구를 준비해야 한다. 올 해 합의는 내년에 변화될 수 있다. 누가 얼마나 센 싸움을 조직하느냐에 따라 사측의 개악안이 관철될 수도 노조의 개선안이 관철될 수도 있다. 인력충원과 설비투자 없이 20시간 가동체계를 17시간 가동체계로 변화시킨다면 라인 속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기술적 문제로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올 해 합의에 천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세부적인 노동조합 안을 만들다보면 2무의 전제는 필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섯 번째, 노조운동진영 전체의 과제로 사회개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주간연속2교대 확보 투쟁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지부)만의 문제로 지켜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산별노조라는 명색으로도 더 이상 두고 볼 일은 아닌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주간연속 2교대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연대투쟁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사회개혁 투쟁을 벌여내는 것이다.
생산영역에서 몸을 망쳐가며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주간연속2교대가 희망이 될 수 있을 지 아닐지는 남은 과제를 얼마나
잘 마련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 교육센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어디 있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교육과 주택에 쏟아 부어야 할 비용과 실업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너무나 큰 의제라서 쉽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구호로만 남겨둘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교육비는 줄어들 생각을 않고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는 등 따습게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본주의 하에서 실업을 회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면 고작해야 수개월 정도의 임금 보전 이후엔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사회개혁은 노동시간 단축, 주간연속2교대제의 실질적 정착이 가능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네 노동자들도 변화해야 산다. 작업장 안에서는 ‘평등세상’을 외치면서 바깥 소비영역으로 나가면 ‘경쟁 교육’에 함몰되고 ‘집 넓히기’에 갇혀 만신창이가 된 채로 다시 생산영역으로 돌아와 열심히 몸을 망치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에겐 달콤한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