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노조 철도본부 신동호, 일과건강 2007년 3월호
유목민 시대를 넘어서기 위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는 유목민의 시대다. 자유무역협정 등 세계무역장벽을 없애면서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시대이고, 말을 타고 달리는 유목민처럼 발전한 교통망과 인터넷을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체제를 통해 전 세계를 빠르게 이동한다. 금융자본은 초국적 투기자본으로서 이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넘나들며, 산업자본 또한 글로벌 경영을 외치며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이처럼 싼 임금, 풍부한 시장을 찾아 움직이는 자본은 푸른 초원을 찾아다니는 유목민처럼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목민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유목민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것만을 취하고, 그 외의 것은 자연과 또 다른 자들을 위해 남겨 놓았다면 자본이라는 유목민은 쓸고 간 자리의 모든 것을 황폐화시킨다.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은 어디에 속할까?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인 요금과 세금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임금과 고용을 보장받는 농경민이다. 그리고 정규직 대공장의 노동자들 또한 대량생산체제가 만든 비옥한 농토인 큰 공장에서 기업의 지불능력에 의존하면서 정착해 있는 농경민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임시직, 계약직과 같은 하층 노동자와 비정규직은 대부분 노동유목민이다.
유목민은 발 빠른 기동력으로 정착민의 성곽만 남기고 모든 벌판을 장악하여 성을 고립시킨다.(노조의 사회적 고립화) 유목민은 농경민의 성과 성 사이를 갈라 쳐 소통을 막고 고립시킨다.(분할전략) 유목민에 둘러싸인 농경민은 늘 불안하다. 공공적 가치를 버리고 모두 돈벌이에 나서며(공기업 민영화․상업화) 해외로 공장이 빠져나가고(산업공동화) 해외공장에서 생산된 상품이 다시 들어올 것을 걱정하며(역수입) 농경민은 삶의 터전인 성은 늘 불안하다.(상시적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농경민은 아직 유목민에 맞설 무기가 없다. 오직 자기성의 성곽만 높이 쌓으려 한다.(노사 담합주의) 고립된 성안에서 유목민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생존하고자 한다.(실리주의) 언제 성이 무너져 유랑민으로 떠돌지 모르기 때문에 유랑생활을 준비한다.(있을 때 벌자) 위기에 쌓인 성안의 민심은 흉흉해 진다.(공동체의 붕괴) 흉흉한 민심 속에서 유랑민인 비정규직이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계급연대의 파괴)
이러한 “유목민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은 철도․지하철 안전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를 만들고자하는 고민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꿈꾸기가 가능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사회양극화의 심화, 빈곤의 증대, 사회적 공공성 후퇴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회성원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한 전쟁에 돌입한지 오래다. 공동체는 붕괴되었고, 모두가 적인 사회에서 소위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처럼 모두가 각자 알아서 부자가 되기 위한 온갖 일들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를 넘어서 함께하기를 위한 노력들 또한 쉼 없이 진행되어 왔다. 철도와 지하철 노동자들도 그 중 하나이다.
철도와 지하철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의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1인 승무 및 인력감축과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하였으며, 2001년 장애인의 오이도역 추락참사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시민안전과 교통약자의 이동권, 저소득층과 노약자 및 청소년 요금문제, 민자역사의 무차별한 영업행위 등의 문제를 사회화 시키고, 철도․지하철의 안전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싸움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은 단지 철도․지하철 노동자만이 아니라 사회각층의 단체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싸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전투에서 우리는 단 한번도 온전히 승리하지 못했으며, 노동자들의 사회와의 연대도 언제나 일회적 내지는 이벤트 행위로 그치고 말았다. 앞서 말한 대로 유목민 시대에 성 쌓기 방식과 성을 넘어서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농경민들의 번번한 패배였다. 이러한 패배와 가혹한 현실에서 우리는 새로운 꿈꾸기를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빠른 기동력과 강력한 무장력을 지니고 이동하는 자본을 무너뜨리려면 자기 성 안에서 담만 높이 쌓는다고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농경민의 성곽을 허물고, 유목민의 광활한 벌판으로 나가자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농경민의 성곽은 다른 가치로 견고해 져야 하며, 이를 통해 좀 더 농성을 할 것인지 아니면 준비된 무사들과 유목민이 이동하는 길목을 차단하고 선점하며, 다른 성곽과 성곽을 연결하여 진정한 정복 전쟁을 벌일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고, 조직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농경민 성곽의 가치인 계급내부 연대, 사회적 연대,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꿈꾸는 모습이다.
어떤 네트워크를 꿈꾸고 있는가?
우리가 꿈꾸는 네트워크는 단지 관계들의 총합이 아니다. 그리고 일방적, 일회적 관계도 아니다. 네트워크 안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사업을 만들며, 서로의 생각을 소통하는, 자유롭지만 자신의 구체적 실천이 드러나고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꿈꾼다.
기존의 연대운동은 특정한 시기에 단체들의 총합으로서 기자회견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로 알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그런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네트워크는 구체적 사업으로 실천하는 단위들의 모임이며, 누구나 사업을 만들 수 있는 모임이며, 누구나 조직할 수 있는 모임이면서, 언제나 외부를 향해서 확장하고자하며, 연대하고자 하는 모임으로서의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소속단위 담당자들의 모임이 아닌 노동조합은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단체의 성원들과 소통하며, 실천하는 모임이어야 하며, 이것은 내부만이 아닌 시민사회로 향하는 외부를 지향하는 모임인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는 지역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사회적 의제라는 이유로 명확한 단위와 지역이 없이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것이 아닌 각 지역에서 지역 문제와 결합하면서 지역 내에서 움직이고, 자리 잡고, 이러한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모임이어야 한다.
네트워크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서는 행위의 한 부분을 만드는데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