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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산재사목 장영순(로사), 일과건강 2007년 2월호




얼마 전 정○○ 씨가 진폐9급을 받고 기뻐하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로 말하자면 진폐상태가 나빠져서 슬퍼해야하는 일인데 정○○ 씨는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듯 들렸다. 11급에서 9급이 되니 보상금이 천만원정도 더 생겨 전세방을 구할 수 있다는 기쁨이 그분에게는 몸의 건강보다 훨씬 더 큰 듯했다. 사실 이이야기는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도 그분은 경비일 을 하시기에 하루에 한 번 쉬고 쉬는 날은 침을 맞으러 다닌다고 하셨다.


40년 전 독일 광산에서 일 할 때 목을 다쳤는데 그 때 다친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 수술을 하셨고 그리고 침을 맞으러 다니셨다. 그때 정밀검진 후 일주일간의 휴업급여가 나와야 하는데 휴업급여도 늦게 나오고 이분은 한 급수를 더 올려 받아 방을 지금의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는 것이 꿈이었다. 평생을 광업소에서 일했지만 젊은 시절 가정파탄으로 70이 넘은 지금까지 홀로 살고 계신다. 당신이 진폐환우이지만 아무도 그분에게 도움을 주는 이 없고 아들은 집을 나간지도 오래되어서 자녀도 호적상에만 기록 되어있을 뿐이다. 그래도 지금 형편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에게 불행 중 다행이다.


그리고 또 한분 조○○씨 댁을 신부님과 함께 방문했다. 그분은 수녀님께 자신의 집을 방문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마침 수녀님께서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신부님과 내가 함께 방문했는데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자주 뵙던 분이었다. 병원에서 환우들을 만날 때는 그분들의 집이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 잘 분간하기 어렵다. 그분들이 병원에 약을 타러 오실 때는 옷을 깔끔하게 입고 오시기 때문이다.


조○○ 씨도 평소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셔서 집이 여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댁을 방문하니 집은 추운 냉골이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2층집이지만 집구조상 지하 같은 느낌이 들었고 집은 싸늘했다. 전에는 막내아들 부부와 같이 살아 집은 넓었지만 이제 막내아들 내외를 분가시키고 나니 넓은 집에 연료 때기가 아까워 잠시 필요한 때만 가스를 돌린다고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전기담요위에 앉게 하셨다. 바닥은 차서 그냥 앉기에 힘들었다. 그분은 애원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은 다섯인데 모두 생활이 어려워 부모를 도울 수 있는 형편도 안 되고 게다가 빚까지 져서 당신이 진폐 13급으로 받은 보상금을 자녀에게 모두 주었다고 하셨다.


처음 13급 받았을 때는 노동부직원이 조○○ 씨께 이 보상금은 자녀에게 주지 말고 조 선생님 건강을 위해 고기나 영양가 있는 음식 사 드시라고 말씀하셨단다. 그러나 막상 자녀가 빚을 지고 있는 것을 보니 부모심정으로 마음이 안타까워 보상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아주머니는 빌딩청소부로 새벽 4시30분까지 출근해서 4시에 퇴근 하신다. 그러나 이 노부부가 저녁에 잠을 잘 땐 조○○ 씨의 기침소리에 거의 잠을 설치셨고, 옆에 방이 있지만 가스비, 전기세 때문에 사용을 안 하셨다. 조○○ 씨의 희망은 단 하나, 요양을 받아서 죽을 때만이라도 편안하게 죽고 싶다고 하셨다. 휴업급여고 보상금이고 다 소용없고 어디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치료받고 죽고 싶다고 하셨다. 당신은 18살에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가 싸웠고 하사로 군 생활을 5년 하셨고 광산에서 10년을 일했는데 정부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안 해준다고 서운해 하셨다.


정부로부터 요양이 안 되면 생활급여라도 받아 아주머니 일이라도 안 내보내고 싶은데 지금 사는 것도 힘들고, 술, 담배를 안 하니 친구들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늘 외롭게 지낸다고 하셨다. 신부님과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으로도 안됐고 안타깝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로는 우리 사목이 아무 힘도 되어 드릴 수 없어 그냥 말씀만 들어 드렸다. 

재가환우 분들의 형편이 이렇게 안 좋은데도 노동부나 경총은 그분들께 아무것도 해드릴 것 없고 이미 나라에서 다 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 해 줄 것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전 지금의 ILO총재를 맡고 계시는 전 노동부 장관께서 우리 사목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아직도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냐며 다 내 불찰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있는 동안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 말씀에 우리는 위로를 받았다.


평생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온 두 분과 다른 모든 진폐환우와 산재환우들에게 좋은 세상이 열리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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