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2일 오마이뉴스 블로거 강태선 님의 글입니다. 기사 저작권은 강태선 님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사진 일부는 '일과건강'에서 덧붙였습니다.
“사고다운 사고는 몇 건 없고, 대부분 본인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나 익사사고 등” <오마이뉴스 2011. 4.21>
어제(21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국토해양부 장관의 말씀이다. 나는 이 말이 '실수'가 아니라 '소신'의 발현이었다고 본다. 장관 개인의 소신이라기보다는 이 나라 건설당국을 대표로 시작해 업계 전반에 내린 뿌리 깊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현장에서 이것을 확인할 기회가 많았다. 현장소장을 비롯한 일선 관리감독자들 입에 거의 붙다시피 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락 사망을 말할 때도 소위 ‘사고다운 사고’임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표현만 쓰지 않았지 거의 ‘자살’로 묘사하는 일이 많았다.
‘교통사고나 익사사고’는 사실 결과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왜 교통사고가 발생했으며 익사에 이르렀느냐이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와 익사사고는 여느 장소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봐야 한다. 위험수준이 다르고 법적 책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사현장에서의 교통사고 양상은 도로와는 전혀 다르다. 먼저 공사현장은 일반 도로에 비해 매우 위험한 곳이다. 공사현장은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심한 요철과 경사는 물론 때에 따라 지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 또 공사 차량은 대부분 크기가 큰 건설기계로 차량 후미는 물론 전방에도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게다가 현장은 대부분 소음이 심해 위험상황에서 경적을 울려도 보행자가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의 건설현장 덤프트럭 사각지대(Blind Area) 표시도. 연구원은 건설현장 안에서 차량으로 발생하는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건설기계에 맞는 사각지대(Blind Area) 도면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현장 작업자들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통로 설치를 비롯하여 덤프트럭 등 차량계 하역운반기계와 백호우 등 차량계 건설기계로 인한 접촉사고 방지를 위해 유도자를 배치하고 지반의 부동침하로 일어날 수 있는 재해를 방지하는 안전조치를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실련이 발표한 ‘4대강 공사 중 사망사고’ 일지에 있는 트럭과 관련된 5건의 사망재해는 단순히 교통사고가 아니다. 위에서 열거한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 익사사고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건설기계 기사가 지반붕괴로 익사한 2건의 사례는 명백한 사업주의 법 위반 결과이다. 공사현장의 지반붕괴는 지진과는 분명하게 그 책임이 다른 것이다.
21일 장관의 발언이 문제되자 국토해양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4대강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 대부분이 건설현장 내 교통사고나 실족사고 위주로 발생되고 있으며, 이러한 원인을 해소하기 위하여 공사 현장에서의 안전의식 제고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임”이라고 해명했다. 아직도 애매하게 ‘안전의식’ 운운하며 남의 탓을 하고 있으니 4대강에서의 노동재해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국토해양부가 먼저 안전의식을 제고하겠다고 실토했어야 했다.
▲ 건설노조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4대강 공사현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 문제를 제기했다. ⓒ 정기훈 기자, 매일노동뉴스
건설현장의 안전관리는 사실상 발주자의 안전의식에 달렸다는 것이 일선 관리감독자들의 중론이다. “건설안전은 발주자로부터 시작하여 기획·설계자, 인허가기관, 시공자, 감리자, 근로자, 자재생산자 등을 포함한 건설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는 모두의 공동책임이 되어야 하며, 그 책임 한계가 명확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건설안전 시스템은 지나칠 정도로 공사 중의 시공사에 그 책임이 집중되어 있어, 종합적 안전관리가 근본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는 대우건설기술연구원의 진단은 일정부분 면피용일망정 매우 설득력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 관계법은 설계와 감리의 안전에 미치는 중요성과 영향력을 반영해 발주자 의무를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CDM법(Construction Design Management Regulation)을 들 수 있다. 이제 해외 유수의 건설 발주자들은 법 이전에 알아서 노동재해예방시스템을 철저히 갖추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특별히 인권의식이 월등해서라기보다는 ‘총체적 안전관리(Total Safety Management)’ 즉 ‘시공상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완전한 완성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4대강 공사과정에서 이미 많은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완성된 모습’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히 "4대강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시는 분도 많지만은 아마 금년 가을에 4대강이 완성된 모습을 보게 되면 모두가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 4.17 경향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