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폭발사고 문제점과 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방향 토론회 개최
▲ 여수폭발사고 문제점과 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방향 토론회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 현재순
5월 14일은 17명의 인명피해를 가져온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사고가 난 지 2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다음날인 15일, 여수시청에서는 2달이 지난 시점에서 3월 14일 그날의 사고원인과 문제점을 재조명하고, 사고 직후부터 진행된 각계 각층의 대책 활동 공유와 의견을 듣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30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대회의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지역 사회에서 큰 관심을 보인 이날 토론회는 사고 직후 구성된 여수대림산업 폭발사고 책임자처벌과 근본적 대안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전남도의회 진상조사특별위원회, 노동환경포럼, 진보의정 등이 공동주최하였다.
이날 천중근 전남도 의원의 '여수대림산업 폭발사고 문제점과 개선방향'과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의 '화학물질관리체계의 문제점과 지역주민의 알권리'가 발표되었고 노사민정의 각 주체들이 토론자로 참여하여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 토론을 벌였다.
지역이 달라졌을 뿐 또다시 발생한 화학물질 산재사망사고
이날 토론에서는 폭발의 주된 원인이었던 탱크(사일로) 안쪽을 완전히 비우는 퍼지(물세척) 작업을 하지 않은 이유를 다시 한번 짚었다. 대정비작업시간(공사기간)을 단축하려 했던 원청인 대림산업의 무리한 작업 지시가 부른, 막을 수 있었던 대형 참사임이 강조되었다. 당시 현장 증언을 통해 밝혀진 공기단축 이유는 노동자의 안전,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기업인식 때문이었다.
"정비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에 따른 손실이 막대하다보니 보수 일정을 최대한 짧게 잡거나 기존에 잡은 일정을 앞당겨 가동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안전은 뒷전이고 형식에 그치는게 현실이다."
당시 원청노동자의 증언은 우리나라 현장실태를 보여주었다.
"안전관리자 한 명이 십여 장의 작업허가서를 들고 안전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대정비 작업의 현실,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빨리빨리' 끝내기 위해 공사기간 내에 여러 하도급건설업체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작업을 하게 되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원청인 대림산업 측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제대로 안전이 담보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무리한 공기단축을 통한 공사강행,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는 공사현장, 무시되는 안전조치 속에 목숨을 담보로 아슬아슬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재조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대책이 토론되었다.여수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채 두 달이 못 된 지난 5월 10일, 앞서 언급한 구조적 문제점이 그대로 투영된 사고가 지역만 여수에서 당진으로, 기업이름만 대림산업에서 현대제철로 바뀐 채 반복, 발생하였다.
사고가 있은 후 각 언론과 관련 단체의 기사와 성명이 이어졌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용광로 3기 작업 중 아르곤 가스 누출에 의한 5명의 노동자가 질식사한 이번 사고는 법적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의 명백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한 것이 일관된 내용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0장 밀폐공간 작업으로 인한 건강장해의 예방
제619조(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 수립·시행 등) 사업주는 근로자가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다음 각 호의 내용이 포함된 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1. 작업 시작 전 공기 상태가 적정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측정·평가
2. 응급조치 등 안전보건 교육 및 훈련
3. 공기호흡기나 송기마스크 등(이하 이 장에서 "송기마스크등"이라 한다)의 착용과 관리
4. 그 밖에 밀폐공간 작업근로자의 건강장해 예방에 관한 사항
작업시작 전 가스배관 차단과 산소농도 측정은 물론이고 가스배관은 전로내의 조작이나 사고로 열리지 못하도록 메인밸브를 잠궈 놓았어야 한다. 산소농도체크 설비도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 이러한 안전조치가 완비되었을 때 용광로에 투입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현대제철 관리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용광로 안에서 진행되는 내화벽돌 작업이 끝나기 전에 배관을 통해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는 절차를 진행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상시 그렇게 했고 아무런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위험 인식이 없었다고 밝혔다.
두 달 전 여수와 너무나 닮은 현대제철 질식사고
공기 단축을 위해 안전작업절차가 있음에도 폭발위험이 있는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완전하게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탱크(사일로) 작업에 투입시켜 6명을 사지로 내 몬 대림산업과 용광로 3기 완공시한을 맞추기 위해 안전작업절차를 무시하고 아르곤가스가 자욱한 죽음의 용광로에 5명의 노동자를 투입시킨 현대제철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동기'는 같았던 것이다.
특히나 현대제철은 지난해 9월부터 12명의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안전조치 무시된 채 죽어갔던 현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평상시도 그렇게 했다는 관리자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총 매출이 무려 14조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윤만을 생각하는 기업의식이 살인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고 직후 현장증언에 의하면 수십 개의 공정이 혼합되어 작업을 하므로 하도급을 받은 업체들끼리 업무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현대제철은 오직 '빨리빨리'만을 지시했다고 한다. 여수 사고 때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가장 기본은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기업인식'
작년 구미불산누출사고 이후 잇따른 화학물질 산재사고를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사고대비물질로 정해져 있는 69종의 화학물질 취급과 관련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산재사망에 대한 사업주의 처벌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살인법이라 불리우는 '사업주처벌강화 특별법'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위험작업을 도급업체에 떠넘기고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청 책임성 강화 산업안전보건법 29조' 개정안도 준비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알권리법을 제정하여 주민들의 힘으로 기업을 강제하고 안전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운동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반짝 여론을 피해가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서는 안될 일이다. 기업과 정치권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 가장 먼저 이윤보다는 안전과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 의식이 이번 계기를 통해 생겨나고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번 여수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작은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전남도의회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와 민간단체로 구성된 대책위가 제안한 대림산업 현장방문과 간담회를 받아들이고 각종자료를 제공하면서 자체 '노사간 재발방지 위원회' 구성과 대책활동계획서를 발표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림산업 측의 지속적인 노력을 바라면서 닮은 꼴인 현대제철과 화성불산 누출사고 이후 보여준 초인류 기업이라는 삼성의 대오 각성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