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18:01
2011년 2월 8일 내일신문에 기고된 가천의대 남동길병원 이상윤 산업의학과장의 글입니다. 기사 저작권은 내일신문에 있으며 무단전재, 배포, 복사를 금지합니다. 사진은 일과건강에서 덧붙였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25일 2010년 산업재해 현황 통계를 발표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업무상 사고 및 질병으로 산재보험을 적용받은 노동자는 98,620명이고 재해율은 0.69%이다. 이 통계에 근거하여 정부는 산업재해율이 IMF 경제위기 이후 12년간 0.7%대 정체상태에서 0.6%대로 진입하였다고 평가하며, 정부 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보기 힘들다. 그것은 현재의 산업재해 통계를 근거로 정부의 정책 효과를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산업재해 통계에는 직장에서 발생한 사고나 질병 중 산재보험 적용을 받은 사례만 잡힌다. 그러다보니 흔히 '산재 은폐'라 불리고, 정부는 '산재 미보고'라 부르는 사례가 빠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산재 은폐 사례가 산재 적용 사례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산재 은폐 사례는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주 입장에서 산재를 은폐하기 위한 동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규모가 너무 큰 것이 문제다. 일례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국제 비교를 위해 새롭게 산출하여 비교한 지표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노동자 십만명당 사고사망자는 2007년에 8.81명으로 EU15개국의 평균 사고사망 십만인율인 2.9명의 3배 수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고 손상률은 0.58%로 EU15개국의 평균 사고사망 십만인율인 2.9%의 5분의 1 수준이다. 유럽 국가에 비해 사고 손상은 적은데 사망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유독 사고에 비해 사고성 사망이 많다는 것은 많은 사고성 재해가 은폐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사진=jimkinmartin.com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과 함께 본인이 2007년에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 일하다 다친 업무 중 사고 사례는 108만 건으로 추정되었다. 실제로 2006년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은 사례인 8만 9천여 건에 비해 12배나 더 많았다. 이는 건강보험으로 사고 치료를 받은 이들에게 일하다 다쳤는지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고, 그들 중 자영업자, 산재보험 미적용 노동자 사례, 산재보험 미적용 사고 재해 등을 제외하여 상당히 보수적으로 추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산재 은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고 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
첫째는 경제적 부담이다. 산재로 처리해야 할 것을 건강보험으로 처리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사고 재해자의 치료 및 재활의 부담을 사회로 떠넘기는 것이 된다. 100% 기업이 부담하여야 할 치료비를 국민과 정부에게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당하게 쓰이는 치료비는 곧바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게 된다.
둘째는 산업재해 예방 정책 수립에 혼란을 준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예방 정책은 거의 현행 산업재해 통계에 근거하여 수립되고 추진된다. 그런데 이 통계가 실제 통계의 10분의 1만 잡힌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일단 산업재해에 대한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통계에 근거한 정책 자체가 사상누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산재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은폐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하면 정부의 지도, 감독이 늘어나고 산재보험료가 오를 것을 염려하여 산재 은폐에 대한 유인 동기가 형성된다. 노동자는 산재 신청하겠다고 하면 사업주에게 받을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워 산재 신청을 꺼리게 된다.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산재 은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큰 방향은 두 가지다. 일단 재해자 본인이나 사업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하다 다치면 무조건 산재로 적용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산재 보고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어겼을 때 강하게 처벌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산재 은폐 문제, 결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