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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7,8월 합본호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샤츠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혹, 이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 계시는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사계’라는 노래를. 한 때 모 방송국 퀴즈프로그램이 끝날 때 배경음악으로 깔려 귀에 익은, 미싱공의 하루와 사계절을 부른 노래이다. 미싱공 하면 떠오르는 것은 70년대, 그리고 자신의 차비를 털어 어린 여공에게 밀가루 풀빵을 사 먹인 전태일 열사. 그들은 지금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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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에 앞서 강사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봉제장인들.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미싱을 돌리고 있다. 봉제사란 이름으로. 
2006년 초여름 창신4동에 들어서는 초입에는 ‘모든 봉제장인들의 꿈을 일구어 갈 ‘수다공방’이 문을 엽니다’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봉제장인들의 꿈이라…. 
이들이 만들어 갈 꿈은 안정적으로 8시간 일하고 또 그렇게 일해도 먹고는 살 수 있고, 자신들이 가진 기술이 ‘장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미싱으로 2~30년을 일했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팍팍해졌다는 아주머니들을 ‘수다공방’에서 만났다. 
“처음 일을 배울 때는 희망이 있었어. 미싱해서 동생들 먹이고 학교 보내고 말이야. 90년대에도 자신 있었지. 내가 제품을 하다 망해도 다른 것을 해서 벌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희망이 없어. 옷은 정부 산업에서 사라졌고 노동자 임금을 적게 해서 이윤을 챙긴 사업체들은 자기 사업만 불렸지 의류산업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수다공방에서 팀장을 맡아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김한영씨는 낮은 임금으로도 다량으로 생산이 가능한 중국으로 의류생산 중심이 이동하면서부터 일감도 줄고 공임도 줄었다며 기술이 좋아도 전수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더 한탄하고 있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 때문에 더 이상 신규인력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2만 원 짜리 바지 한 장 만드는데 공임이 3천 원 정도는 했는데 지금은 천오백 원~이천 원사이야. 게다가 장수가 절반으로 줄었으니 공임이 두세 배로 깎인 셈이지.”
여기도 비수기, 성수기가 있어 휴가철인 7, 8월과 겨울은 비수기여서 실제 일 할 수 있는 것은 1년 열두 달에서 적어도 넉 달 정도가 빠진다. 이는 고스란히 생계비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감 있을 때 되도록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몇 시까지’ 맞춰야 한다면 밤을 세서라도 마감을 맞춰야 해 한 번 일하면 점심밥 먹는 30분을 제외하면 하루 온종일을 미싱 앞에서 보내야 한다. 일감에 따라 생활이 불규칙하고 한번하면 장시간 노동이다 보니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속병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수다공방이 위치한 창신4동 일대는 겉으로 보면 연립주택 같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봉제공장이다. 그리고 벽에는 객공이나 하청을 구한다는 광고가 붙어있다. 객공은 봉제사들만의 독특한 고용형태이다. 개당으로 공임을 받으며 일감 하청을 받는 것은 원청과의 관계가 성립하는데, 그렇다고 원청으로부터 무조건 일감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즉, 객공은 일감을 안 받을 수도 있다. 반은 노동자 반은 자영업 성격을 갖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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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4동 시장 입구에 걸린 ‘봉제장인의 꿈’을 일구어가자는 수다공방 플랭카드.



수다공방은 고생은 많이 했는데 알아주지도 않고 하소연할 곳 없는 이 봉제장인들에게 같이 꿈을 만들어가자고 사단법인 참여성복지터가 기획하고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옷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해도 희망을 찾을 수 없던 2~30년 숙련기능공들에게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는 희망을 가져보기 위한 시작이다. 수다공방은 이분들이 가진 기술을 정리하고 표준화하고 세밀화해서 12월에는 패션쇼도 열 계획이다. 이때는 잘 만들어진 한 벌의 옷을 떠나 우리나라 ‘봉제기술’을 뛰어남을 알리고 ‘여기에 이런 기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패션쇼이다. 
손 수(手), 많을 다(多). 
힘든 일 있으면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하고 미싱하는 손이 많다는 두 개의 뜻을 가진 수다공방에 그렇게 한국사회 관심 밖에서 벗어난 봉제장인들의 꿈이 일구어지기 시작했다. 의류산업 호황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몸으로 겪으신 이 분들, 나이로 재는 청춘은 저물었지만 봉제장인 기술로 다시 한 번 인정받아 보겠다는 또 다른 청춘의 꿈을 안고 창신동 수다공방에서 미싱을 힘차게 돌리고 있다.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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