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오전 11시. 전국민주화학섬유연맹 광주전남지부(준) 산하의 여수산단 대표자들은 여수시청 1청사 앞에 모였다. 이들은 여수산단에서 공동투쟁본부를 만들고, 2004년 투쟁을 힘있게 벌여나가는 중이다. 지난 3월과 4월 지속적인 공동투쟁본부 대표자 회의 속에서 여수산단의 노동조합들은 공동투쟁 요구안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화학섬유연맹에 교섭권을 위임하기로 결의하였으며, 각 사업장별로 대의원대회를 통하여 교섭권 위임안을 처리하는 중이다.
1. 5월 10일 여수시청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여수산단 대표자들과 화학섬유연맹이 함께 한 시청앞 기자회견 자리는 여수권 공동투쟁본부의 공동요구안을 대외적으로 밝히기 위한 것이다. 특히, 공동요구안 중에서 첫 번째 내용인 지역발전기금 마련에 대해 여수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이 자리가 마련되었다.
공동투쟁요구 |
1. 지역사회발전기금 조성
2.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
3. 주5일제 실시를 통한 일자리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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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지역발전기금의 경우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1) 지역환경 및 질병 예방과 개선을 위한 사업
- 파괴된 지역 환경 복구와 환경, 오염실태 조사연구 기금
- 각종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서비스 강화 등
2)고용의 질 향상을 통한 일자리 창출
- 직업훈련기금
3)지역사회 소외층을 위한 지원사업
- 지역 복지센터 설립
- 독거노인 의료지원
- 소년소녀가장 지원 및 빈민층을 위한 지원사업 등
2. 여수지역의 상황... 여수시민은 노동조합을 미워한다.
여수지역은 맑은 바다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여수산단이 마련되고 화학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은 점차 파괴되기에 이르렀으며, 지역주민들은 공장주변에 살면서 각종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에 시달리다가 얼마 전부터 타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수산단에서 가끔 발생하는 각종 폭발 및 화재사고는 여수시민들을 항상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각종 유독물질이 들어있는 탱크가 폭발할 경우 그 영향은 반경 수 킬로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호남석유화학의 폭발사고 때도 여수산단 주변의 시민들은 체육관으로 대피한 적 있다. 여수시민들은 산단이 들어서면 일거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현실은 여수시민들이 기대한 것과 달랐다. 결국 여수시민들은 여수산단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만은 여수산단의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수산단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향하기 일쑤였다. 정부에서는 여수산단의 노동자들을 귀족노동자로 몰아가고 있었으며, 여수시민들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떠한 위험에 처해있는지 알지 못한 채 귀족노동자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여수지역 노동자들은 파업 시에도 시민들의 냉대를 받아야 했으며, 외로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여수지역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시민과의 연대사업을 고민해 오고 있었다. 화학섬유연맹은 2000년 통합연맹을 건설하면서부터 여수지역에서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여수지역의 공단에 의한 환경파괴, 시민에 대한 피해를 조사하여 시민과 연대하는 환경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개혁 투쟁의 일환으로 준비되었다. 하지만, 여수지역 노동조합 운동의 상황이 이 내용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고, 화학섬유연맹에서도 이 사업을 뚜렷한 상을 가지고 추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워크샵을 두 번 개최하는 것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한편, 여수지역의 노동조합들은 공동투쟁본부를 건설하였고, 작년에도 지역발전기금을 단사별로 교섭을 통해 확보하여 지역과의 연대를 추진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공동투쟁이 힘있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지역발전기금을 확보하는 것까지 가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 필요성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며, 2004년 공동투쟁본부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지역발전기금은 다시 중요하게 등장하게 된다. 최근 자동차 완성사에서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기로 하였는데, 여수산단의 노동조합에서는 이보다 앞서서 지역발전기금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수권 공동투쟁본부에서는 기금의 운영을 이렇게 가져가고자 한다.
1) 여수산단 지역 차원의 노사공동으로 구성되는 지역사회발전기금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
2) 필요할 경우 재단법인을 설립운영 할수 있으며 기금운영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위해
지역시민단체관계자등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를 구성할수 있다
기금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지역시민단체 관계자의 참여를 기획하고 있다.
3. 이러한 요구를 가진다는 것이 현실적인가?
- 미국 OCAW의 노동자-이웃연대(Labor Neighbor Program)를 보며
이것은 시민들을 향한 여수산단 노동자들의 짝사랑일까?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수산단 노동자들은 이미 국외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어떠한 성과를 가져왔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센터는 지난 1월 꿈틀 좌담회를 통해 미국 석유화학원자력노련의 지역연대사업(노동자-이웃연대)을 소개한 바 있다. 화학섬유연맹은 물론, 여수산단에서도 이 내용은 이제 잘 아는 내용이다.
미국 석유화학원자력노련(OCAW)은 1970년 미국의 산업안전보건법(OSHAct)이 통과되고 나서 안전보건과 관련한 큰 투쟁을 치룬다. 대형 석유화학회사인 쉘오일(Shell Oil)에서 산안법 내용을 단협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한 때문이다. 결국 3년간의 투쟁을 통해 OCAW는 승리를 거두는데, 이 때의 성공은 백혈병 등 환자들의 조직적 결합이 큰 원인이었다. OCAW는 이 투쟁을 계기로 안전보건 문제를 조합의 핵심적 사항으로 다루게 된다.
미국의 경우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조정은 일찍 찾아왔다. 오일 쇼크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석유화학회사들은 자동화의 진전에 힘입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직장폐쇄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노동조합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집중하게 되었으며, 환경문제란 사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OCAW는 루이지에나에 있던 독일계회사인 바스프(BASF)의 공장폐쇄에 5년간 투쟁을 지원하면서 오히려 환경운동 단체들과 긴밀한 연계를 하게 되었다. 미국 뿐 아니라 독일의 녹색당과의 협력도 추진하였다. 결국 1989년 OCAW는 다시 한 번 승리를 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사업장별 안전보건환경의 문제는 노동조합의 생존,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확대된다. 기존에 BASF 내에 있던 환경, 안전, 보건의 문제들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면서 공장폐쇄를 단행한 사업주의 부도덕성을 끌어내었으며, 지역주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후 OCAW는 지역주민과의 연대가 노동조합에게 매우 중요한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노동자-이웃연대』를 추진하게 된다. 이를 통해 사업장별 안전보건환경의 문제들에 대한 공동대응을 하며, 노동자들의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며, 석유화학사업장이 있는 지역의 경우 투자가 적게되면서 발전이 더디다는 것에 착안하여, 지역내의 일거리창출 문제(실업대응), 지역발전을 위한 운동 등에 노동조합이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OCAW의 노동자-이웃연대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환경청은 지역의 환경감시나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을 하려고 할 때, 노동자-이웃연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도움을 요청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감시가 가능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 까지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환경운동이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환경운동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인식은 이를테면 무연휘발유를 쓰자는 환경운동론자들에게 정유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반대하고 유연휘발유 생산공정을 지키기 위한 대응을 전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몇 개의 사업장에서는 공정을 없애는 상황이 발생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공정의 도입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일거리를 위협하지는 않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현재 노동조합들은 자신의 생존, 산업의 운명과 관련하여 환경운동, 지역운동이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주변의 운동세력에 의해 노동조합이 따라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것이 더욱 내용적으로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4.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으로, 지역연대사업의 모범으로 서게 되기를
여수산단의 노동조합들은 공동요구안의 관철을 위해 몸을 풀고 있다. 대의원 대회를 통해 공동요구안을 결의하고, 이것을 연맹에게 교섭권 위임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까지 결의하는 중이다. 금호타이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하였듯이, 이제는 지역연대사업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내기를 여수산단 노동조합들과 화학섬유연맹에게 기대한다.